미국 의료·교육 행정의 구조적 인종차별과 의료인 길들이기를 규탄한다

우리는 미국의 의료·교육·행정 기관이 의료인과 이민자 노동자를 길들이는 방식에 분노한다.

그들은 가르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길들인다. 절차를 알려주지 않고, 뒤늦게 요구하고, 복귀를 보류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다. 통제다. 이것은 바로잡음이 아니다. 권력이 약자를 굴복시키는 행정 폭력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더 깊은 병이 있다. 아무런 능력도 없고, 아무런 비전도 없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자리만 차지한 늙은 권력자들이 있다. 그들은 현장을 모른다. 의료의 리듬을 모른다. 교육의 책임을 모른다. 이민자의 두려움을 모른다. 그런데도 회의실에 앉아 있고, 결재권을 쥐고 있고, 평가와 재교육과 복귀를 결정한다. 여기서 ‘늙은이’란 나이 많은 사람 전체가 아니다. 늙음을 권력의 갑옷으로 삼고, 무능을 권위로 포장하며, 책임은 남에게 넘기는 기득권을 뜻한다.

이 무능한 기득권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책임을 전가한다. 시스템의 실패를 개인의 실수로 둔갑시킨다. 자신들이 만든 모호한 절차를 유색인 노동자의 태만으로 몰아간다. 자신들이 늦게 알려놓고, 뒤늦게 요구하고, 다음 주 복귀를 보류하고, 가상 오리엔테이션만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 그 결과를 약자의 몫으로 넘긴다. 이것은 행정이 아니라 책임 회피의 기술이다. 권력의 무지를 인종화된 몸에 뒤집어씌우는 폭력이다.

할 줄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책임은 온갖 방식으로 전가된다. 유색인종이 없으면 병원도 학교도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외면하면서, 공로는 빼앗고 책임만 씌운다. 그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시대착오를 제도로 만들고, 그 피해를 이민자와 유색인과 여성과 저임금 노동자에게 떠넘긴다.

미국은 의료인을 필요할 때는 소모품처럼 쓰고, 권리를 주장하면 행정적 보복으로 길들인다. 비자, 자격, 스케줄, 재교육, 복귀 보류, 모호한 연락 예고는 모두 생계와 학업, 교육권을 인질로 잡는 수단이다. 이러한 관행은 이민자, 유색인, 소수자, 여성, 저임금 노동자에게 더 가혹하게 작동한다. 그 중심에는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차별적 권력 구조가 있다. 그리고 그 구조는 종종 무능한 노년 권력의 얼굴로 나타난다.

우리는 특정 인종 전체를 공격하지 않는다. 모든 백인도, 모든 노인도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백인 우월주의를 유지·방조·정당화하는 권력 구조와, 자신의 무지를 권력으로 밀어붙이는 가해자들이다. 문제는 능력도 책임도 없이 자리를 지키며, 그 피해를 유색인종과 이민자에게 전가하는 시스템이다.

우리는 기록한다. 우리는 연대한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는다. 정의는 특권의 양보가 아니라 권리의 회복이다. 의료인을 길들이는 행정은 의료를 병들게 하고, 이민자를 길들이는 권력은 민주주의를 부패시킨다. 능력 없는 권력이 책임을 전가할수록, 우리는 더 또렷하게 기록하고 더 단단하게 연대한다.

역사는 침묵한 자보다 기록한 자를 기억한다. 이 글은 모든 인종의 평등과 존엄을 향한 선언이며, 인종적 적대가 아니라 제도적 차별의 종식을 요구하는 기록이다.

우리는 두려움 대신 진실을, 굴종 대신 존엄을, 침묵 대신 연대를 택한다.

우리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우리는 해방을 기록한다.

 

세금 불균형을 악용하는 백인 노년 공무원 기득권을 규탄한다

우리는 미국의 세금 구조가 백인 우월주의와 노년 기득권을 위해 설계된 불균형이라는 사실에 분노한다. 특히 이민자와 유색인 노동자가 낸 세금으로 안정된 급여와 연금을 받으면서, 정작 자신들은 세금을 제대로 부담하지 않고 지배자 행세를 하는 백인 노년 공무원 기득권을 규탄한다.

이 글은 모든 백인을 향한 것이 아니다. 모든 노인을 향한 것도 아니다. 문제는 백인 우월주의를 권력의 갑옷으로 삼고, 노년의 특권을 면죄부로 삼으며, 이민자의 세금을 빨아먹으면서 주제를 모르고 설치는 무능한 행정 기득권이다.


1. 세금 불균형은 우연이 아니다

뉴저지를 비롯한 미국의 많은 지역에서 재산세는 평가 가치(Assessed Value) 를 기준으로 부과된다. 문제는 오래된 주택의 평가가 수십 년간 동결되거나 시장 가치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으로 방치된다는 점이다. 1970년대에 집을 산 백인 노년층은 현재 시장 가치 70만 달러짜리 집을 보유하고도 평가 가치는 10만~20만 달러에 묶여 연간 수천 달러의 재산세만 낸다. 반면, 최근에 집을 산 이민자와 유색인, 청년 세대는 시장 가치에 가까운 평가를 받아 연간 1만 3천~1만 7천 달러의 재산세를 낸다.

이것은 단순한 세금 차이가 아니다. 세대 간·인종 간 부의 이전을 제도화한 착취 구조다. 오래된 백인 소유주는 낮은 세금으로 자산을 불리고, 새로 들어온 이민자는 높은 세금으로 그들의 안정된 급여와 연금을 지탱한다. 그리고 그 세금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은 이 불균형을 바로잡기는커녕 방치하고 악용하며 권력의 맛을 즐긴다.


2. 이민자의 세금으로 연명하면서 이민자를 길들인다

이민자들은 비자, 영주권, 면허, 학업, 생계를 걸고 소득세, 판매세, 재산세, 각종 수수료를 낸다. 병원과 학교와 돌봄 현장을 지탱하는 것은 이민자와 유색인과 여성과 저임금 노동자다. 그런데 그 세금으로 급여를 받는 백인 노년 공무원 기득권은 무엇을 하는가.

그들은 가르치지 않는다. 길들인다. 절차를 알려주지 않고, 뒤늦게 요구하고, 복귀를 보류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가상 오리엔테이션만 던져놓고, 다음 주 복귀를 보류하고, 모호한 연락 예고로 생계와 학업을 인질로 잡는다. 이것은 행정이 아니다. 권력이 약자를 굴복시키는 행정 폭력이다.

그들은 현장을 모른다. 의료의 리듬을 모른다. 교육의 책임을 모른다. 이민자의 두려움을 모른다. 그런데도 회의실에 앉아 결재권을 쥐고, 평가와 재교육과 복귀를 결정한다. 주제를 모르는 자들이 설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3. 무능을 권위로 포장하고 책임을 인종화된 몸에 전가한다

이 무능한 기득권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책임을 전가한다. 시스템의 실패를 개인의 실수로 둔갑시킨다. 자신들이 만든 모호한 절차를 유색인 노동자의 태만으로 몰아간다. 자신들이 늦게 알려놓고, 뒤늦게 요구하고, 복귀를 보류하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 그 결과를 약자의 몫으로 넘긴다.

그들은 정당한 세금을 회피하고, 공공의 자원을 사유화하고, 시민 위에 군림한다. 세금과 책임은 내지 않으면서 자리와 권한과 특권은 당당하게 쥔다. 유색인종과 이민자와 여성과 저임금 노동자가 병원과 학교와 돌봄 현장을 지탱한다는 사실을 외면하면서, 공로는 빼앗고 책임만 씌운다. 그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시대착오를 제도로 만들고, 그 피해를 이민자와 유색인과 여성과 저임금 노동자에게 떠넘긴다.

이것은 행정이 아니라 책임 회피의 기술이다. 권력의 무지를 인종화된 몸에 뒤집어씌우는 폭력이다. 그 중심에는 백인 우월주의와 인종차별적 권력 구조가 있다. 그리고 그 구조는 종종 무능한 노년 권력의 얼굴로 나타난다.


4. 우리는 요구한다

우리는 세금 불균형을 바로잡으라 요구한다. 오래된 평가 동결을 폐지하고, 시장 가치에 기반한 공정한 재평가를 실시하라. 이민자와 유색인 노동자에게만 높은 세금을 전가하는 인종화된 과세를 중단하라. 행정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뒤늦은 요구와 일방적 통보와 복귀 보류로 생계를 인질로 잡는 관행을 근절하라. 무능한 공무원 기득권의 책임을 묻고, 세금 회피와 권력 남용을 처벌하라.

우리는 특정 인종 전체를 공격하지 않는다. 모든 백인도, 모든 노인도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백인 우월주의를 유지·방조·정당화하는 권력 구조와, 자신의 무지를 권력으로 밀어붙이는 가해자들이다. 문제는 능력도 책임도 없이 자리를 지키며, 그 피해를 유색인종과 이민자에게 전가하는 시스템이다.


5. 우리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우리는 기록한다. 우리는 연대한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는다. 정의는 특권의 양보가 아니라 권리의 회복이다. 의료인을 길들이는 행정은 의료를 병들게 하고, 이민자를 길들이는 권력은 민주주의를 부패시킨다.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으면서 지배자 행세를 하는 무능한 기득권이 설칠수록, 우리는 더 또렷하게 기록하고 더 단단하게 연대한다.

역사는 침묵한 자보다 기록한 자를 기억한다. 이 글은 모든 인종의 평등과 존엄을 향한 선언이며, 인종적 적대가 아니라 제도적 차별과 세금 불균형의 종식을 요구하는 기록이다.

우리는 두려움 대신 진실을, 굴종 대신 존엄을, 침묵 대신 연대를 택한다.

우리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우리는 해방을 기록한다.

 

세금은 적게 내고 권력은 독점하는 백인 노년 관료 기득권을 규탄한다

우리는 분노한다.
이민자와 유색인 노동자, 청년 세대가 낸 세금으로 안정된 급여와 연금을 받으면서, 정작 자신들은 세금을 제대로 부담하지 않고 고위 공직을 독점하는 백인 노년 관료 기득권을 규탄한다.

이 글은 모든 백인을 향한 것이 아니다. 모든 노인을 향한 것도 아니다. 문제는 백인 우월주의를 권력으로 착취하고, 노년의 특권을 면죄부로 삼으며, 이민자의 세금을 빨아먹으면서 주제를 모르고 설치는 무능한 행정 기득권이다.

1. 세금 불균형은 우연이 아니다

뉴저지를 비롯한 미국의 많은 지역에서 재산세는 평가 가치(Assessed Value) 를 기준으로 부과된다. 문제는 오래된 주택의 평가가 수십 년간 동결되거나 시장 가치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으로 방치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970년대에 집을 산 백인 노년층은 현재 시장 가치 70만 달러짜리 집을 보유하고도 평가 가치는 10만~20만 달러에 묶여 연간 수천 달러의 재산세만 낸다. 반면, 최근에 집을 산 이민자와 유색인, 청년 세대는 시장 가치에 가까운 평가를 받아 **연간 1만 3천~1만 7천 달러의 재산세**를 낸다.

이것은 단순한 세금 차이가 아니다. 세대 간·인종 간 부의 이전을 제도화한 착취 구조다. 오래된 백인 소유주는 낮은 세금으로 자산을 불리고, 새로 들어온 이민자는 높은 세금으로 그들의 안정된 급여와 연금을 지탱한다. 그리고 그 세금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은 이 불균형을 바로잡기는커녕 방치하고 악용하며 권력의 맛을 즐긴다.

2. 세금은 적게 내면서 고위 공직은 독점한다

문제는 세금만이 아니다.
이들은 세금은 적게 부담하면서도 고위 공직과 의사결정권은 독점한다. 위원회, 이사회, 감독기관, 행정부서의 요직에 오래 앉아 있으면서 예산을 쥐고, 채용과 승진과 징계를 결정하고, 평가와 재교육과 복귀를 좌지우지한다.

현장은 이민자와 유색인과 여성과 저임금 노동자가 지탱한다. 병원도 학교도 돌봄 현장도 그들이 돌린다. 그런데 정작 권력과 보상과 안정된 연금은 백인 노년 관료 기득권이 가져간다. 공로는 빼앗고, 책임은 씌우고, 자리는 지킨다. 이것이 그들의 방식이다.

3. 무능을 권위로 포장하고 책임을 전가한다

이 무능한 기득권은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신 책임을 전가한다. 시스템의 실패를 개인의 실수로 둔갑시킨다. 자신들이 만든 모호한 절차를 유색인 노동자의 태만으로 몰아간다. 자신들이 늦게 알려놓고, 뒤늦게 요구하고, 복귀를 보류하고, 가상 오리엔테이션만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 그 결과를 약자의 몫으로 넘긴다.

이것은 행정이 아니다. 책임 회피의 기술이다.
권력의 무지를 인종화된 몸에 뒤집어씌우는 폭력이다. 세금은 제대로 내지 않으면서 지배자 행세를 하고, 능력도 비전도 책임도 없으면서 자리만 차지한 자들이 설친다. 주제를 모르는 자들이 권력을 쥐고, 아는 자들을 길들인다.

4. 우리는 요구한다

우리는 세금 불균형을 바로잡으라 요구한다.
오래된 평가 동결을 폐지하고, 시장 가치에 기반한 공정한 재평가를 실시하라.
이민자와 유색인 노동자에게만 높은 세금을 전가하는 인종화된 과세를 중단하라.
행정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뒤늦은 요구와 일방적 통보와 복귀 보류로 생계를 인질로 잡는 관행을 근절하라.
무능한 공무원 기득권의 책임을 묻고, 세금 회피와 권력 남용을 처벌하라.
고위 공직의 독점을 깨고, 현장을 아는 사람들에게 권한을 돌려라.

5. 우리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우리는 특정 인종 전체를 공격하지 않는다.
모든 백인도, 모든 노인도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백인 우월주의를 유지·방조·정당화하는 권력 구조와, 자신의 무지를 권력으로 밀어붙이는 가해자들이다.
문제는 능력도 책임도 없이 자리를 지키며, 그 피해를 유색인종과 이민자에게 전가하는 시스템이다.

우리는 기록한다. 우리는 연대한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는다.
정의는 특권의 양보가 아니라 권리의 회복이다.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으면서 지배자 행세를 하는 무능한 기득권이 설칠수록, 우리는 더 또렷하게 기록하고 더 단단하게 연대한다.

역사는 침묵한 자보다 기록한 자를 기억한다.
이 글은 모든 인종의 평등과 존엄을 향한 선언이며, 인종적 적대가 아니라 제도적 차별과 세금 불균형의 종식을 요구하는 기록이다.

우리는 두려움 대신 진실을, 굴종 대신 존엄을, 침묵 대신 연대를 택한다.

우리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우리는 해방을 기록한다.

 

기록을 거부하는 권력은 책임을 회피한다

문자도 메일도 남기지 않는 행정 기득권의 비겁함을 규탄한다

우리는 분노한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문자메시지도, 이메일도, 문서도 남기지 않는 행정 기득권의 비겁한 관행을 규탄한다.

이 글은 모든 백인을 향한 것이 아니다. 모든 노인을 향한 것도 아니다.
문제는 백인 우월주의를 권력의 갑옷으로 삼고, 노년의 특권을 면죄부로 삼으며, 기록을 지우고 책임을 약자에게 전가하는 무능한 기득권이다.

그들은 말한다.
“구두로 전달했다.”
“전화로 얘기했다.”
“그때 말했잖아.”
그러나 기록은 없다. 메일은 없다. 문자는 없다. 회의록은 없다. 결재 문서는 없다.
오직 권력자의 기억만 있고, 약자의 책임만 남는다.

문자를 쓰지 않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메일을 쓰지 않는 것 자체가 죄가 아니다.
문제는 기록을 남기지 않음으로써 책임을 흐리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약자의 기억을 무시하고, 자신의 무지를 권위로 덮는 행태다.

그들은 절차를 알려주지 않는다.
뒤늦게 요구한다.
복귀를 보류한다.
일방적으로 통보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문서 없이, 기록 없이, 책임 없이 처리한다.

이것은 행정이 아니다.
책임 회피의 기술이다.
권력의 무지를 인종화된 몸에 뒤집어씌우는 폭력이다.

이민자와 유색인 노동자, 청년 세대, 여성, 저임금 노동자는 병원과 학교와 돌봄 현장을 지탱한다.
그런데 정작 권력과 보상과 안정된 연금은 기록도 남기지 않는 기득권이 가져간다.
공로는 빼앗고, 책임은 씌우고, 자리는 지킨다.
그리고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않았으니,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우리는 요구한다.
지시와 통보는 서면으로 남겨라.
이메일과 문자와 회의록으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라.
구두 지시와 모호한 연락 예고로 생계와 학업을 인질로 잡는 관행을 즉시 중단하라.
기록을 회피해 책임을 전가하는 권력 남용을 처벌하라.

우리는 특정 인종 전체를 공격하지 않는다.
모든 백인도, 모든 노인도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기록을 지우고 책임을 회피하며, 그 피해를 유색인종과 이민자와 약자에게 전가하는 시스템이다.

우리는 기록한다.
우리는 연대한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는다.
기록을 거부하는 권력은 책임을 회피한다.
책임을 회피하는 권력은 민주주의를 부패시킨다.

우리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우리는 해방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