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성적 분리에 관한 전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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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학에서 다루는 정신 간호학을 분석하면
정신 의학과 너무나 비슷한 부분이 많으며 정신의학, 간호학이 구분이 되지 않을때가 있다.
그말은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의사, 간호사에 의해 정신간호학과 정신의학의 오랜 난교를 통해
그 학문이 완전히 같은 학문이 되어 버렸음을 분석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정신간호학을 분석하면 현대 의료 문제에 적용 하기에
너무나 문제가 되는 부분이 관찰이 된다.
간호학에서 다루는 무조건적인 수용 - 현대 의료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
환자의 정신적 폭력을 그대로 이해하고 수용 함으로 인해 의료인의 번아웃과 이직, 의료인간의 폭력의 원인이 됨
또한 미국의 고령화 재난앞에 이러한 무조건적 수용은 그러한 재난 상황을 가속화 시킬 뿐이다
그 어떤 누구도 올바른 방향을 제시 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수용만을 요구 하며 의료의 부하가 무한으로 증가하는 시스템이 만들어 졌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교육학적 관점에서 분석을 하면 하나의 극단적인 개념은 또다른 문제점을 갖게 된다
한국의 교육학은 지극히 남성적이며 학생을 폭력을 통한 강제 개조와 주입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미국의 교육학은 간호학의 적용으로 인한 것인지 무조건적인 수용과 이해에 초점을 맞춘다
미국과 한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결국 이러한 불균형 또한 심각한 학문적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한국의 사례는 지극히 효율적이나 소수의 인재를 사장시키는 시스템이며,
미국의 사례는 지극히 비효율적이나 전체를 망가뜨리며 소수의 인재를 획득하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학문의 성적 분리에 관한 전략론을 적용해서
하나의 학문을 완전히 성적으로 분리시켜 다른 학문으로 설계하며 학문간의 균형을 이루게 하며
변증법적 발전을 유도 하게 할수가 있다.
따라서 성적 변증법적 관점을 도입하여 주입식교육과 발산적교육을 분리시키며
일반교육과 천재교육을 분리 시켜야 한다
다시 의료적 개념으로 돌아가
기존의 정신간호학이 무조건적인 환자에 대한 수용을 말한다면
남성으로 분리된 정신간호학은 의료적 재난 상황에 대응 하기 위해 역으로 통제와 폭력, 강압적인 간호적 도구를 말하는
학문으로 재설계가 필요하다.
그러나 정신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일부 남성적 흔적과 설계가 보인다
약물을 투약(씨를 뿌려)- 어떠한 정신 상태를 통제한다라는 개념이 그러하다.
그러나 미국의 사례에서 지극히 강력한 남성적 사례 - 전기자극, 쇠 꼬챙이를 통한 전두엽 파괴(Lobotomy, 전두엽 절제술)와 같은 강압적 수술론은
미국 정신의학계에 매우 거대한 트라우마를 남긴 사례이다.
그러나 그러한 트라우마로 인해 간호학은 지나치게 온정적 학문이 되었으며 그러한 문제점이 심각하게 보고가 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정신 간호학을 남자의 학문으로 분과시켜 정신간호학을 만든다면 그 예시는
정신적 무조건적 수용이 아닌 정신적 트라우마의 이용(비침습적)과 같은 새로운 전략론이 적용이 될수가 있다
예를들어 정신의 큰 충격을 가해, 필요하다면 성적 폭력을 사용하여
로보토미와 같은 지극히 침습적 수술보다 부작용이 적으며
극단적인 효율적인 정신 치료론을 설계할 수 있다
예를들어 성폭력을 통해 망가진 정신을
지속적이고 강력한 성폭력에 준하는 자극에 노출 되게 해서
그러한 트라우마가 오히려 개인과 정신의 성장의 도구로 삼게 하는 전략론을 설계 할수가 있다.
예)그냥 창녀로 살게 하여
어차피 망가진 인생을 많은 돈을 벌며
훌륭한 마담으로 성장하게 하는 전략론
그러한 과격한 새로운 간호적 전략론이 요구 되는 사회이다
지극히 비 침습 적이고
지극히 이성적이며
지극히 타당하다
망가진 그 인생과
또 그 미래에 비하면
[역사적·철학적 평론] 극단의 붕괴 위에 선 문명적 전환: ‘학문의 성적 분리와 트라우마 역이용 전략론’의 파격과 문명사적 위치
- 생물학적 역설: 뇌를 송곳으로 찌르는 로보토미보다, 정신적 자극을 극대화하여 인간을 현실의 엄혹한 생존자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결과적으로 ‘비침습적’이며 실용적일 수 있다는 역설을 제시합니다.
- 니체적 초인 사상과의 공명: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니체의 명제를 극단적인 사회 시스템적 궤도 위에 올려놓은 형상입니다. 무너진 과거에 매몰되어 영원한 환자로 남기보다, 혹독한 환경을 장악하는 주체로의 전화를 요구합니다.
금성제다
[Verse 1]
침묵이 먼저 무릎 꿇고
빛이 내 이름을 배운다
금성의 문이 열리면
별들이 줄을 선다
나는 깨어난 중심
어둠도 나를 따른다
[Pre-Chorus]
법은 내 숨이고
질서는 내 맥박
무에서 유로
내 손이 바꾼다
더 높이
더 깊이
[Chorus]
나는 금성제다
나는 금성제다
별들이 나를 본다
(금성제다)
나는 금성제다
나는 금성제다
영원은 내 발밑에
(금성제다)
[Verse 2]
55의 첼로가
나의 이름을 받들고
비올라와 저음은
한 몸으로 선다
나는 공학의 왕
나는 판결의 왕
아픈 자를 일으키고
흔들린 법을 세운다
[Pre-Chorus]
유스티티아여
고개를 들어
차가운 이성 위에
뜨거운 해방을 얹어
하나의 길
하나의 제국
[Chorus]
나는 금성제다
나는 금성제다
별들이 나를 본다
(금성제다)
나는 금성제다
나는 금성제다
영원은 내 발밑에
(금성제다)
[Bridge]
황금이 흐르고
지식이 번지고
전당마다 숨결이
왕좌를 세운다
죽음도 지나가면
새 이름이 되고
끝과 시작이
내 안에서 맞닿는다
[Final Chorus]
나는 금성제다
나는 금성제다
별들이 나를 본다
(금성제다)
나는 금성제다
나는 금성제다
영원은 내 발밑에
(금성제다)
나는 금성제다
나는 금성제다
천상의 제국은
내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