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싼 걸로 갈아타줘”…AI 에이전트와 ‘귀찮음 경제’의 종말[딥다이브]




 
  • 동아일보
  • 입력 2026 10 03




한애란 기자 사진
24시간 나를 위해 일하는 똑똑한 개인 비서가 있다면 어떨까요.

휴가를 위한 최저가 항공권과 호텔을 찾아서 예약해 주고, 생필품을 가장 싼 가격에 구매해 주고, 안 쓰는 유료 구독은 알아서 해지해 줄 겁니다.
먼 미래의 상상이 아니라, 메타의 뮤즈(Muse)나 오픈AI 닷츠(DOTS) 같은 ‘상시 작동형 AI 에이전트’가 이미 구현해 나가고 있는 서비스이죠.

그거참 편리해 보인다고요? 네, 그래서 요즘 난리입니다.

미국에선 은행과 숙박 앱 기업 주가가 급락했고, 아마존은 뮤즈의 구매사이트 접근을 막았죠.
그동안 중개자 역할로 돈을 벌어온 플랫폼 기업들이 ‘패싱’ 당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인데요.
AI 에이전트 시대의 소비 시장 재편을 들여다보겠습니다.







 
귀찮은 일을 대신 알아서 해주는 ‘상시 작동형 AI 에이전트’가 왔다. 게티이미지

귀찮은 일을 대신 알아서 해주는 ‘상시 작동형 AI 에이전트’가 왔다. 게티이미지




*이 기사는 10월 2일(금요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고 이메일로 받아보세요.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



24시간 알아서 일하는 AI 비서

“삼다수를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온라인에서 구매해 줘.”

챗GPT 같은 AI 챗봇에 이렇게 지시한다면?
판매처 두세 곳을 추천해 주긴 하지만, 링크를 타고 들어가서 구매하는 건 인간이 할 일이죠.

하지만 메타 ‘뮤즈’나 오픈AI ‘닷츠’ 같은 AI 에이전트라면 다릅니다. 사람은 링크를 클릭할 필요가 아예 없고요.
AI가 알아서 쇼핑몰 로그인, 장바구니 담기까지 한 뒤에 최종 확인 메시지를 띄우죠.
“OO몰에서 배송비 포함 9600원에 결제할까요?” 사용자가 ‘승인’을 누르면 결제도 AI가 알아서 할 겁니다.

영화 아이언맨 속 ‘자비스’ 같은 자율형 AI 에이전트 서비스가 속속 선보이고 있습니다.
가장 핫한 건 9월 8일 출시된 메타 뮤즈와 9월 29일 공개된 오픈AI 닷츠이죠.

뮤즈는 무료 서비스도 있지만, 현재는 미국과 캐나다에서만 이용할 수 있고요.
닷츠는 한국에서도 이용가능하지만 월 100달러짜리 ‘프로(Pro)’ 요금제를 써야 합니다.






 
오픈AI ‘닷츠’와 채팅으로 업무를 지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미지. 문자나 음성으로 일을 시키면, 24시간 내내 알아서 일을 수행할 수 있다. 오픈AI 제공

오픈AI ‘닷츠’와 채팅으로 업무를 지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미지. 문자나 음성으로 일을 시키면,
24시간 내내 알아서 일을 수행할 수 있다. 오픈AI 제공



두 서비스의 공통점은 컴퓨터를 꺼도 24시간 알아서 일하는 ‘상시 작동형 에이전트’라는 것.

차이점이라면 메타 뮤즈는 최저가 예약·구매 같은 일상적인 일에 특화돼 있고요.
오픈AI 닷츠는 팀즈, 슬랙과 연동돼 연구·코딩·문서작성 같은 기업 업무에 좀 더 초점을 뒀습니다.
하지만 출장을 위한 항공편 예약 같은 일도 한다는 점에서 결국은 비슷한 서비스이죠.

홍보 문구는 화려합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뮤즈를 “인간의 목표를 이해하고 24시간 내내 그들을 위해 일하는 유능한 개인 비서”이자
“실제로 돈을 벌어다 주고 아껴주는 도구”라고 소개했고요.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닷츠는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작업을
처리할 수 있다”면서 “여러분이 더 많은 시간과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죠.

이용자들은 환영의 분위기입니다. 메타 뮤즈는 출시 12일 만에 280만 건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미국 앱스토어 1위를 차지했어요.
이메일 정리, 스케줄 조율, 구독 해지 같은 귀찮은 일을 AI 에이전트에 맡길 수 있게 되니, 얼마나 편해요.
그리고 이로 인해 비상이 걸린 곳이 한둘이 아닙니다. 대표적인 게 은행이죠.

대형 은행에 뱅크런 위기가 온다?
‘에이전틱 뱅크런이 다가오고 있는가?’

미국 자산운용사 아폴로의 토르스텐 슬뢰크 이코노미스트가 9월 27일 이런 메시지를 던졌죠.
아래의 그래픽과 함께요. 미국 은행권 보통예금 계좌의 평균 이자율은 고작 0.1%, 핀테크 기업은 3.3~5.0%라는 걸 보여주는데요.

그는 이런 설명을 덧붙입니다.
“만약 모든 가정이 AI 에이전트를 이용해 현금 잔액 수익률을 최적화한다면,
은행은 저금리 예금 상당 부분을 잃게 되고 이는 전체 금융시스템에 문제가 될 겁니다.”






 
자료:아폴로

자료:아폴로




사실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이자율 0.1%짜리 보통예금 통장에서 잠자는 돈을 고금리 핀테크 계좌로 옮길 수 있죠.
하지만 왜 그 많은 사람들은 그냥 둘까요? 한마디로 귀찮으니까.
매번 금리 비교하고, 핀테크 앱 다운로드 받아 가입하고, 계좌 이체까지 하는 모든 과정이 너무 귀찮고 번거롭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걸 AI 에이전트가 알아서 해준다면? AI가 24시간 금융사별 파킹통장 이자율을 실시간 비교한 뒤 ‘
이 예금은 연 5% 금리 계좌로 옮길 수 있습니다’라고 제안한 걸 인간은 승인만 하면 된다면?
다들 갈아타기에 나서면서 대형 은행 예금 잔고가 썰물처럼 빠져나가지 않을까요.

만약 이런 뱅크런을 막으려면 대형 은행도 울며 겨자 먹기로 보통예금 이자율을 올려야겠죠.
‘저원가성 예금’이라고 부르는 이자율 0.1%짜리 보통예금은 은행의 예대마진(예금과 대출 이자의 차이)을 보장해 주는 가장 핵심 자원인데요.
그 이자율이 3~4%대로 올라가면? 은행 수익모델의 기반이 상당 부분 사라지는 셈이죠. 사실상 전통적인 은행업의 종말이 될 겁니다.







 
은행의 기본 수익모델은 예대마진이고, 그 핵심 기반은 저원가성 예금이다. 금리 연 0.1%짜리 예금이 사라진다면 전통적인 은행업은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 게티이미지

은행의 기본 수익모델은 예대마진이고, 그 핵심 기반은 저원가성 예금이다.
금리 연 0.1%짜리 예금이 사라진다면 전통적인 은행업은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 게티이미지
그리고


이건 자산운용사나 보험사도 마찬가지이죠.
수수료가 더 저렴한 자산관리 서비스, 보장은 같은데 보험료가 가장 저렴한 보험상품으로 고객들이 우르르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한 손가락을 까딱하는 것만으로 그 모든 게 가능해진다면 말이죠.

이게 바로 9월 말 미국 대형 은행과 증권사, 보험사 주가가 급락했던 이유입니다
. 금융은 워낙 어렵고 복잡한 분야이기 때문에, 명망 있는 대형 금융회사들이 반사이익을 누려왔는데요.
똑똑한 AI가 소비자를 대신해서 ‘비교하고 갈아타고 해지하는’ 시대가 된다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수 있죠.

아, 물론 뱅크런 이야기는 아직은 미래 예측일 뿐입니다. 현재로는 은행 계좌에 접속해서 돈을 빼낼 권한을 부여받은
그런 AI 에이전트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 권한을 갖지 못했을 뿐이지,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니죠.



숙박·배달앱은 뭘 먹고 사나

금융사와 함께 ‘AI 에이전트 시대’의 패자로 분류되는 게 익스피디아 같은 여행 예약 사이트입니다.
지금까지 여행 플랫폼은 소비자가 호텔·항공권을 검색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관문 역할을 했죠.
그렇기 때문에 호텔들이 이런 플랫폼의 상단에 노출되기 위해 기꺼이 광고비를 지출해 왔는데요.

이젠 여행 계획의 첫 번째 관문이 AI 에이전트로 바뀌게 됐습니다.
호텔 예약사이트는 AI 에이전트의 선택을 받아야만 하는 신세가 되어버리는 거죠
. 만약 AI 에이전트가 중개 플랫폼을 아예 건너뛰고 직접 호텔과 직통으로 연결된다면? 역시나 사업의 기반이 통째로 사라질 위기입니다.

이전에도 기술 혁신은 구시대 중개자들의 사업 기반을 파괴하곤 했죠.
과거 여행사들이 차지했던 자리를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빼앗은 게 익스피디아, 아고다 같은 사이트였던 건데요.
다시 AI 에이전트가 그 자리를 빼앗을 판인 겁니다.






 
AI에이전트는 소비자가 중개 앱에서 탐색하는 시간을 사라지게 만들고, 이는 중개 사업자의 광고수익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힌다. 게티이미지

AI에이전트는 소비자가 중개 앱에서 탐색하는 시간을 사라지게 만들고, 이는 중개 사업자의 광고수익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힌다. 게티이미지




그리고 이건 ‘중개’가 본업인 모든 플랫폼 사업자는 마찬가지입니다.

배달의민족 같은 배달앱, 우버 같은 승차 공유 앱이 대표적이죠.
만약 치킨을 시킬 때 다들 “가장 싸고 빠른 방법으로 치킨 한 마리 주문해 줘”라며 AI 에이전트에 맡긴다면?

치킨집이 굳이 배달앱 플랫폼에 광고할 이유가 없게 됩니다.
대신 AI의 선택을 받기 위해 배달 플랫폼 간의 배달료 할인 경쟁은 엄청나게 치열해지겠죠. 모든 사업자의 수익이 쪼그라들게 될 겁니다.

이른바 ‘구독 경제’도 위기인데요.
유료 구독 서비스를 잘 안 쓰는데, 귀찮아서 또는 까먹어서 해지하지 못한 경우 많잖아요.
이를 노리고 기업들이 일부러 해지 단계를 복잡하게 만들기도 하고요(다크 패턴).

그런데 메타 뮤즈가 홍보하는 주요 기능 중 하나가 구독 해지 대행입니다.
카드 명세서와 서비스 사용 패턴을 모니터링한 뒤 “3개월간 한 번도 안 쓴 유료 구독 서비스가 있네요. 해지할까요?”라고 제안하는 거죠.
사용자가 이를 승인하면, 해지 절차는 알아서 처리해 줍니다. 사용자 입장에선 ‘AI 에이전트로 돈을 아꼈다’라고 체감할 수 있는 기능이죠.



쇼피파이가 문을 활짝 연 이유

물론 이런 AI 에이전트를 쓰는 사람은 당분간 소수일 거고요.
아직은 ‘AI한테 로그인 권한과 카드 결제 권한을 줘도 되나’라며 찜찜해하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아마 AI 에이전트가 뭔가 사고라도 한번 치면 갑자기 관심이 식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성큼 다가온 AI 에이전트 시대에 대비하긴 해야겠죠. 플랫폼 기업들의 고민이 커지는데요.

일단 아마존은 뮤즈의 접근을 차단했습니다.
‘뮤즈가 사전 승인 없이 자사 스토어에 접근했고, 사용자 자격 증명을 부적절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게 차단 이유였는데요.

하지만 모두가 다 알죠. 아마존은 고마진의 광고사업(연간 761억 달러 규모)을 지키기 위해서 AI 에이전트 접근을 막을 수밖에 없다는걸요.
소비자가 아마존 앱에 직접 들어와서 검색 결과를 스크롤 하지 않으면 광고 노출 효과가 사라질 테니까요.






 
쇼피파이 창업자 토비 뤼트케가 자신의 X에 올린 게시물. 쇼피파이 서비스가 메타 뮤즈와 연동됐다는 걸 알리고 있다. 뮤즈의 털복숭이 캐릭터가 쇼피파이 로고의 가방을 들고 있는 그림도 함께 올렸다.

쇼피파이 창업자 토비 뤼트케가 자신의 X에 올린 게시물. 쇼피파이 서비스가 메타 뮤즈와 연동됐다는 걸 알리고 있다.
뮤즈의 털복숭이 캐릭터가 쇼피파이 로고의 가방을 들고 있는 그림도 함께 올렸다.




그리고 이와 정반대 행보를 보인 게 쇼피파이입니다.

쇼피파이는 한국의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와 비슷하게 수많은 소상공인이 입점해 있는 플랫폼인데요.
얼마 전 메타의 뮤즈를 이용해 모든 쇼피파이 스토어에서 숍페이(자체 간편결제)로 결제할 수 있게 됐다고 발표했죠.
아마존이 AI 에이전트에 고객을 뺏길까 두려워 문을 닫았다면, 쇼피파이는 AI 에이전트가 새로운 고객을 몰고 올 거라며 문을 활짝 연 셈입니다.

둘 중 어느 전략이 맞을지는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AI 에이전트가 활성화되면, 전체적인 소비는 늘어날 거란 전망도 나오긴 하죠.
탐색의 번거로움이 사라지면, 일단 한번 ‘사야지’라고 생각했을 때 바로 사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연시간이 사라지면서 구매가 더 자주 일어날 수 있는 거죠.
또 AI 에이전트가 쓸데없는 유료 구독을 해지해 줘서 구독료를 아끼면, 사람들은 그 돈으로 다른 걸 사게 될 겁니다.
소비 패턴만 달라지는 거죠.

어떤가요. AI 에이전트가 재편할 미래 소비 시장, 기대되는 쪽인가요,
걱정스러운 입장인가요.
확실해 보이는 건 여기서 또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열리고 누군가는 승자로 올라설 거란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10월 2일(금요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고 이메일로 받아보세요.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
 

놓친 뉴스와 그 맥락까지, 종이신문으로 읽어보세요.

 

동아일보 구독 신청
 

딥다이브 >




 
“가장 싼 걸로 갈아타줘”…AI 에이전트와 ‘귀찮음 경제’의 종말[딥다이브]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