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그냥 자유보다 부자유 속의 자유를 더 좋아한다.

부자유가 자유의 증명을 매일 리필해주기 때문이다..

그냥 순수 자유에는 오히려 불안이 매 순간 문두들긴다

그 중간의 최적 균형을 찾는 것도 삶의 한 과정인 것 같다

일탈의 고수는 일부러 일상에 매번 구속된다

마치 불륜의 쾌락을 누리기 위해 일부러 결혼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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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타인은 끊임없이 미디어와 말로 불안과 두려움을 심는다. 걱정은 그들의 좋은 명분이자 스스로 완벽히 선한 의도라고 믿게 해주는 마법이다. 자신들의 새로운 질서(세계관) 및 규칙을 들이밀 명분을 위한 목적이 있는지도 몰라. 나도 어쩌면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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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을 원하는 사람은 불확실하고 예측불가능한 상대를 싫어한다.

반대로 짜릿한 놀이기구 같은 재미를 원하는 사람은 연애에서 그런 불확실하고 혼돈 같은 상대를 선호한다.

한편 나는 재미를 위해 새롭고 불확실한 자극을 좇는 뇌였지만

나이를 먹다보니 그 반대로 예측가능하지만 안정적이고 확실한 패턴의 인간을 선호하게 되는 것도 같다.

젊을 때의 연애관과 늙어가면서의 연애관의 차이랄까

꼭 연애 얘기는 아닌데 연애 잘 모르고..

 

그런데 여기서 나는 또 한 가지 제3의 관점을 제안해보고 싶다

혼돈 속에도 잘 보면 질서가 있고

질서 속에도 잘 보면 혼돈이 있다

애초에 혼돈은 질서들의 충공깽 파티에 가까우니깐.. 

그리고 질서도 혼돈 속에서 그냥 틀을 잡고 고정해둔 것이니깐 그 틀을 허물다보면 혼돈이 다시 나타난다

그래서 혼돈과 질서는 쌍둥이고, 딱히 분리된 것이 아니다

 

아무리 불확실하고 예측불가능해보이는 사람도 보다보면 일종의 패턴이 보이고, 규명이 되고, 질린다. 내가 그런 종류의 밑천 꼬질꼬질하고 화려한 치장만 샤샤샥하는 인격이기도하고.

반대로, 아무리 지루해보이고 뻔해보이고 평범해보이는 사람도 유심히 보다보면 매 순간 새로운 점이 보이고, 내 인식의 변화에 따라 그 사람을 가둬놓았던 틀도 변하면서 불확실성이 기분 좋은 놀람을 가져다주기에, 계속 알게되고 싶어진다.

 

내가 나와 정반대의 그런 안정감 있고 겉보기에 뻔해보이는 사람들에게 이끌리고 좋아하게 되는 건

내 불확실성과 불안정함을 제어해줄 안정제를 찾으려던 거였나 싶어서 좀 스스로 이기적이라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난 언제나 다시 재미를 위해 충동적으로 런치고 안정적인 삶에서 몸을 가만 못 두니깐 그것도 애매하고

아마도 그들의 질서와 평온함, 지루해보이는 모습을 유심히 보다보니 매번 새로운 면모가 보이고, 점점 더 알고싶어지게 됐기 때문일 수 있다.

애초에 난 공부든 사람이든 일이든 삶이든 질서를 내 인식으로 해체해서 혼돈으로 세분화한 뒤 매번 새롭게 바라보고 나도 배우고 시야가 바뀌고 그러는 걸 좋아했었으니깐

 

아무리 특별하고 새로워보이는 자극적인 사람도 보다보면 평범해보이고

반대로 아무리 평범해보이는 사람도 보다보면 늘 새롭다

내가 전자 같은 사람이어서, 사람들이 나한테 이끌렸다가 마지막에는 콩깍지가 벗겨지고 한심해보였던 건지도 모른다. 

후자 같은 사람들은 알면 알수록 양파 같은 구조라서 더 이끌린다. 그래서 나는 나이 (똥꼬로) 처먹으면서도 점점 후자 같은 사람들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지속가능성한 잔잔한 앎의 재미를 추구했던 걸까

 

그러니깐 평범함이고 특별함이고 나발이고

새로움이고 지루함이고

불확실함이고 확실함이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속에서 정반대의 속성을 언제든 볼 수 있다

인간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내 인식이 그들을 내가 보고싶어하는 틀로 고정할 뿐이다.

그래서 세상이 질리면 세상을 바꿀 게 아니라 내 눈까리를 뒤집어도 보고 그래야 했던 것 같더. 근데 그게 잘 안 된다. 원래의 나를 잃는 느낌이라서? 인간은 아무리 괴롭고 병든 자아라도 '나'라는 이유로 이끌리기 때문에 나는 지금의 내가 싫다면서도 그런 나를 붙잡고 끌고 다녔었다. 근데 막상 어쩌다보니 우연히 잃고 나면 늘 더 새롭다 세상이.

 

반 먹었는데 배부름 

 

 

첫번째 냥이가 너네임

두번째 냥이가 나다 아주 빠르지

마치우월한남자똥꼬에피스팅펀치날리듯..

 

하지만 사실 나는.. 나의 헛점을 들키기 싫어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던 거야. 나의 상처를 가리고자 빠르게 춤췄던 거야.
빈수레가 요란하다고.. 그게 나여.. 쉬~~불,,!!

 

네테로와 메르엠의 대결처럼..

결국 싸움의 승패보다 중요한 건 그것이 내게 무엇을 가르쳐주는가

네테로는 처음부터 자신이 질 것을 알고 있었고, 그 대결은 단순히 새로운 도전과 부딪힘의 자극을 간만에 느끼기 위한 유희였다.

그리고 네테로는 예정대로 심장의 핵 방아쇠를 당겼다.. 승패라는 체스판에 갖혀있던 메르엠의 패배였지.. 후후.. 배부르다 산책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