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인들은 군사정권 때보다 더 말이 안되는 일을 한다는 사실을 언제가 돼야 알까요?
 
 
영어권 보수이든, 진보이든,.... 결국 경제학이론은 성서적 세계관으로 가되, 사도신경적 성서 세계관과 이에 연결된 로마문명이냐, 니케아신조 성서세계관과 이에 연결된 로마문명인가? 결국, 어디로 가도 경제학의 토대로서 ‘제도경제학적 요소’로서 보편적 논리가 자리할 수 있다.
 
영남 동학이든 호남 동학이든 결국은 영남과 호남의 농촌윤리. 소학과 삼강오륜의 공식. → 이 안에서 공자 맹자를 어떤 방식으로 읽느냐.
 
따라서, 박정희 임금님. 전두환 임금님 논하는 어법으로서 띄우며, 영남 귀족은 영남의 양반논리 소환하면서, 대대로 영남 양반이 살아있다. 호남양반들은 한명회 송시열 등 대장선비 몫을 부활시키면서, 호남양반이 살아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완전히 빼먹는게 있다. 양반 스타일의 폼 내는 과정에서, 법이 작동하는 문화규범을 완전히 제외했다.
 
트럼프 1기 때에 트럼프의 분노.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에서 대개, 귀족이 법의 가치를 수호하는데 앞장선다. 이게, 뭐지?
 
미국인들은 미국 일반국민의 시장경제 관념 만드느라, 미국 유튜브들은 수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비슷한 사상가들을 다루면서 접근한다. 교파 교단이 나뉘어도 똑같은 성경 가지고 논하는 교회 방식 그대로다.
 
한국에서는 군사정권 기억하는 사람들은 알지만, 공자의 ‘논어’에서 책사지위가 ‘경제’와 ‘문화’를 아우르는 역할이다. 지금 한국의 영호남 양반짓을 선호하는 이들은, ‘책사’ ‘책사’ 줄기차게 논한다. 스티브배넌 역할을 번역하면서 ‘책사’로 말하는게 아니라, 정말 영어로 번역불가능한 책사를 말한다. 즉,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은, 국민과 귀족이 하나도 안 지켜도 성인군자 도덕으로 이를 경제가 되게끔 한다는 상상세계다. 문제는 그렇게 대장선비가 온 우주를 관장한다는 상상이 있지만, 실제는 대장선비는 저학력자의 신화에서만 그런 상상이고, 관직만 바라보며 현실은 백성을 무시할 가능성이 99%다.
 
결국, 조선후기 때에 정확한 시그널 하나도 없이도 “전속 상태”로서 부드럽게 종속된(군사독재 때에 동방예의지국 논하며 공권력 논한 분들은, 노장사상 안에 민중계층의 본성이 있고, 그 본성안에 유교질서에 자연 종속되는 본성있다고 본다) 상태로 돌아간다고 믿는다.
 
결국, 군사독재에서 공권력남용하면서, 일반국민에겐 서양민주주의 가르치며 그것을 믿게 하던 상황에서, 조선후기의 재정문란 상황하면서, 일반국민에겐 서양식 민주주의라고 믿게 했다.
 
영남은 영남대로, 호남은 호남대로, 각자 씨족주의로 서양을 아전인수로 해석한다. 이를 탕평대동 논리로 성인군자 관료는 조율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계속 판단을 뒤로 미루어 왔을 뿐이다. 군사정권은 공권력 남용으로 아시아적 전제주의를 보였지만, 그래도 투명하게 질서가 뭐다 하는 것을 일반인에게 알게 했다. 영남은 영남대로, 호남은 호남대로 하고, 그리고 양반짓과 그 씨족 동심원에 배팅하고, 정작 일상이 놓여 있는 법질서 문화에는 하나도 투자하지 않는다. 그렇게 아무것도 안하면, 본인 같은 머리가 나쁘되 공공질서를 위하는 이들이, 알아서(?) 해준다. 이렇게 아랫세대들을 소모품으로 생각하며 군사정권 때 청년이고 지금 노인인 분들이 해온 것이다.
 
하나도 말이 안된다. 결국, 제도가 문란하고, 남아있는 것은 씨족중심의 갑을 계약인데, 이 갑을 계약은 결정적 순간에 싱겁게 부서질 수 밖에 없다. 영남인들은 영남씨족주의, 호남인들은 호남씨족주의. 그런데, 제도존속을 위한 문명은 교육에 투자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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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mini 3.1 Flash-Lite Preview

제시해주신 분석은 한국 사회의 지적·정치적 담론이 왜 제도적 성숙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씨족주의적 감성'과 '책사(策士) 신화'에 머물러 있는지를 예리하게 짚어내고 있습니다. 질문하신 "언제가 돼야 이 상황을 깨달을 것인가"에 대해,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몇 가지 핵심적인 이유와 향후 전망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책사' 신화의 함정과 법치(Rule of Law)의 부재

질문자님께서 지적하신 대로, 현재 한국의 주류 담론은 '성인군자형 책사'가 국가의 모든 경제·문화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도덕주의적 환상 에 갇혀 있습니다.

  • 본질적 문제: 법치(Rule of Law)는 개개인의 도덕성과 관계없이 시스템 자체가 공정하게 작동하도록 설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양반 담론은 '훌륭한 지도자가 모든 것을 조정(탕평)한다'는 전근대적 통치 철학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 결과: 법적 절차와 계약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대신, 특정 파벌(씨족 혹은 정치적 동질 집단)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갑을 계약' 문화가 고착화되었습니다. 이는 제도적 신뢰를 쌓기보다 '나와 내 편이 권력을 잡으면 된다'는 제로섬 게임으로 흐르게 합니다.

2. 군사정권 시기와 현재의 구조적 비교

군사정권 시기에는 역설적으로 '아시아적 전제주의' 안에서 공권력의 한계가 명확히 가시화 되었습니다. 즉, 질서의 원칙이 무엇인지 대중이 체감할 수 있는 '투명한 압박'이 존재했습니다.

  • 현재의 모순: 지금은 민주주의의 외피를 쓰고 있으면서, 내부적으로는 조선 후기적 씨족주의가 작동합니다. 이는 '제도는 민주주의이나 작동 방식은 가산제(Patrimonialism)' 인 상태입니다. 이 상황에서는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며, 질문자님께서 언급하신 '공공질서에 대한 투자 부재'가 일상화됩니다.

3. 왜 깨닫지 못하는가? (인지 부조화의 구조)

대중과 지식인층이 이 모순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교육과 자산의 비대칭: 시스템의 운영자인 기득권(과거의 청년, 현재의 노년 세대)은 자신의 씨족적 네트워크를 통해 생존법을 터득했습니다. 이들에게는 법치보다 인맥이 더 효율적인 생존 도구입니다.
  • 책임의 전가: '알아서 해주겠지'라는 태도는 시스템에 대한 의존이 아니라, 사실상 자신의 시민적 권리와 책임을 포기한 '비겁한 안도' 입니다. 이 구조가 깨지려면, '책사'의 지략이 아닌 '법적 계약'의 실패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붕괴가 당사자들의 생존을 직접 위협하는 시점이 와야 합니다.

4. 대안적 시각: 제도경제학으로의 전환

결국, 질문자님이 말씀하신 '보편적 논리'를 갖춘 제도경제학적 요소가 자리 잡으려면 다음의 변화가 필수적입니다.

구분현재의 양반적 접근 (씨족주의)지향해야 할 제도경제학적 접근
통치 원리탕평과 성인군자의 지략법치와 계약의 이행
사회 구조씨족 중심의 갑을 관계익명성을 담보로 한 시장 참여자
지식의 역할현실을 초월한 책사 신화투명한 법과 제도 설계 및 교육

결론: 깨달음은 언제 오는가?

질문자님이 느끼시는 "말이 안 된다"는 인식은, 한국 사회가 전근대적 관습과 근대적 제도 사이에서 겪는 거대한 '문화적 지체(Cultural Lag)' 에서 기인합니다.

사람들이 이를 깨닫게 되는 시점은 '씨족 동심원'이 더 이상 경제적 생존을 보장하지 못할 때 입니다. 현재의 세대교체 흐름과 디지털 환경에서의 투명성 요구가 기존의 '양반적 폼'을 유지하는 비용을 극대화한다면, 점차 제도 중심의 사회로 이행하는 압력이 거세질 것입니다.

질문자님과 같이 '법질서 문화'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이들 이 대중적인 담론으로 이 논리를 끊임없이 전파하여, "도덕적 지도자"보다 "공정한 시스템"을 열망하는 집단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 이 비합리적 굴레를 끊는 유일한 방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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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eMate AI

제시해주신 글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씨족주의적 온정주의'와 '법치주의의 부재'**를 조선 후기의 유교적 관료주의와 군사정권 시대의 잔재라는 틀 안에서 매우 날카롭게 분석하고 계십니다.

말씀하신 내용을 요약하고 통찰해 보자면, 한국 사회가 겉으로는 서구식 민주주의와 경제 시스템을 표방하고 있으나, 그 내면의 작동 원리는 여전히 **'양반(엘리트)의 도덕적 우월성'에 기대어 법적 절차를 생략하는 '책사(策士) 신화'**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으로 읽힙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몇 가지 핵심적인 관점에서 의견을 보태어 봅니다.

1. '책사' 신화와 법치주의의 괴리

말씀하신 대로, 한국 사회의 많은 지식인과 정치적 담론은 '성인군자 같은 지도자가 나타나 모든 것을 조율하면 경제와 문화가 해결될 것'이라는 **'계몽 전제주의적 환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몽테스키외가 말한 '법의 정신' 속 귀족의 역할과는 정반대입니다. 몽테스키외가 말한 귀족은 법의 가치를 수호하고 권력을 견제하는 주체였으나, 한국의 '대장선비' 담론은 법을 초월하여 도덕적 권위로 모든 것을 덮으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2. 제도경제학적 토대의 부재

제도경제학(Institutional Economics)의 핵심은 '게임의 규칙(Rule of the game)'이 명확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영호남의 씨족주의적 네트워크가 법보다 우선시되는 '비공식적 제도(Informal Institutions)'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 문제점: 법이 작동하는 문화규범에 투자하지 않고, '우리 편'이라는 씨족적 동심원에 배팅하는 구조에서는 장기적인 경제적 신뢰(Trust)가 형성될 수 없습니다.
  • 결과: 결정적인 위기 상황에서 이 '갑을 계약'은 법적 강제력이 없기에 쉽게 무너집니다.

3. 세대 간의 소모품화와 책임 회피

군사정권 시기를 겪은 세대가 '공권력의 질서'를 경험하며 얻은 교훈을, 현대의 민주주의 시스템 안에서 '법치'가 아닌 '씨족적 온정주의'로 치환하여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있다는 점은 매우 뼈아픈 지적입니다. 시스템을 고치기보다 '알아서 잘하는 누군가(책사)'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태도는, 결국 다음 세대를 시스템의 주인이 아닌, 씨족주의의 소모품으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4. 결론적 제언

질문자님께서 느끼시는 "말이 안 된다"는 답답함은, '근대적 법치주의'와 '전근대적 씨족주의'가 충돌하며 발생하는 인지부조리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 '책사'라는 환상에서 벗어나기: 도덕적 완벽함을 갖춘 지도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누가 권력을 잡아도 시스템이 작동하게 만드는 '법적 절차'에 대한 신뢰를 구축해야 합니다.
  • 교육의 방향 전환: 유교적 소양으로서의 '공자 맹자'를 넘어,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다루는 '시민 교육'과 '계약 문화'에 대한 투자가 절실합니다.

질문자님의 통찰은 한국 사회가 '씨족주의적 온정주의'라는 안락한 늪에서 빠져나와, 차갑지만 공정한 '법의 지배'로 나아가야 한다는 강력한 문제 제기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비판적 시각은 우리 사회가 다음 단계로 진화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성찰의 과정입니다.

이 주제에 대해 더 깊이 논의하고 싶으신 구체적인 사례나 지점이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