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육영수 사별 후 '박정희 일기' 입수
"수줍은 아내 선한데 어찌 24년 밖에, 인상 무상 … 비석 설 줄이야 "
- 김상진 기자
- 뉴데일리 2026-10-01
영화 '암살자(들)'의 음모론과 판이일기 곳곳에 아내 그리움·사랑 가득
"남들은 일생 반려로 자손 축복 받으며 노후 즐기는데 …"
"당신이 사랑하는 조국 보살피고 바른 길 인도해주오"
사별 3년후 "오늘만은 그이와 같이 걷는다"

▲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함께 앉아 환하게 웃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육 여사가 세상을 떠난 뒤 남긴 일기와 시에서 아내와 함께했던 생전의 기억을
여러 차례 떠올렸다.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제공
- 영화 '암살자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내 살해 관여 가능성을 암시해 거센 역풍을 불러온 가운데,
- 박 전 대통령이 생전에 직접 남긴 일기에서 육영수 여사를 향한 절절한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것으로 확인됐다.
- 그는 아내 없이 맞은 결혼기념일에 함께한 시간이 너무 짧았다고 탄식했고,
- 사별한 지 수년이 지나서도 아내와 함께 살고 싶었던 시골집을 떠올리고 함께 걷던 꽃길을 찾았다.
- 1일 뉴데일리 취재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결혼 25주년인 1975년 12월 12일 자신의 일기에 먼저 떠난 아내를
- 그리워하는 마음을 남겼다. 그의 일기 중 '홀로 맞은 은혼일'로 소개된 기록이다.
그는 "오늘이 아내와 결혼한 지 만 25년이 되는 날이다. 아내가 있었다면 은혼식을 올리고 축배를 올렸을 터인데…"라고 썼다.
이어 "24년 만에 아내는 먼저 가고 말았다. - 남들은 은혼식 금혼식을 올리며, 일생의 반려로 자손들의 축복을 받으며 노후를 즐기는데 아내와 나와의 사이는 어
- 찌 24년밖에 시간을 주지 않았을까. 25년 전 오늘의, 그 착한 수줍어하던 아내의 모습이 아직도 선한데, 이제 25년이란
- 세월이 흐르고 아내와의 유(幽)와 명(明)을 달리하게 되었으니 인생이란 과시(果是) 무상하도다"라고 적었다.
육 여사는 1974년 8월 15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경축식에서 박 전 대통령을 저격하려던 문세광이 쏜 총에 - 맞아 그날 숨졌다. 결혼 25주년을 함께 맞기 약 1년 4개월 전이었다.
아내를 잃은 슬픔은 외교 일정을 마치고 묘소를 찾은 기록에도 남아 있다. - 일기 중 '아내 유택幽宅을 찾다'에서 박 전 대통령은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을 환송하고 돌아오는 길에 동작동에 들렀다고 썼다.
- 포드 대통령이 출국한 1974년 11월 23일을 기준으로 보면 육 여사가 숨진 지 100일이 지난 때다.
- 유택은 세상을 떠난 사람이 묻힌 곳을 뜻한다.
그는 "돌아오는 길에 동작동에 들러 아내 유택을 찾다. - 그저께 제막한 비석이 퍽도 깨끗하고 아담하게 서 있고 비문도 단정하고 맵시 있게 부각되어 있다"고 적었다.
미국 대통령을 배웅한 뒤 아내의 새 비석 앞에 선 박 전 대통령은 "당신이 여기에 묻혀 그 앞에 비석이 설 줄이야"라고 탄식했다. - 국가원수로서 외교 일정을 마친 뒤 남긴 일기에는 아내를 잃은 남편의 쓸쓸함이 이어졌다.
그는 "당신은 여기에 잠들어 풍우성상 춘하추동 가고 오고, 오고 가고 아는지 모르는지? 어찌 모를 리가 있으랴. - 당신이 사랑하는 이 조국과 겨레의 삶의 모습이 낱낱이 지켜보며 보살펴 주고 사랑해 주고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오. 아내가
- 그토록 정성 들여 애쓰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저 깜박거리는 네온 불빛이 동작동에서도 보이겠지"라고 적었다.

▲ 육영수 여사가 1969년 12월 16일 한글 궁체로 ‘민족중흥’을 쓴 뒤 환하게 웃고 있다
.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제공
- 사별한 지 수년이 지나서도 아내와 나눴던 소망은 박 전 대통령의 일상에 남아 있었다.
- 박 전 대통령은 1977년 3월 7일 오후 10시 10분 침대에서 KBS의 육영수 여사 전기 낭독을 들으며
- 아내가 바라던 노후를 떠올렸다. 육 여사가 숨진 지 약 2년 7개월이 지난 뒤였다.
그는 "아내는 남달리 자연을 좋아하고 아꼈다. - '이 다음에 이 자리 그만두거든 시골에 가서 조그만 집 하나 짓고 살아요.
- 그리곤 그 뒷산에는 바위가 있고, 바위 밑에는 맑은 물이 나오는 그런 곳에서 살아요
- .' 아내가 자주 하던 말이다"라며 육 여사의 생전 말을 일기에 옮겼다.
이어 "아내는 그것이 소원이었다. 그 조그마한 소원을 이루지도 못하고 그이는 갔다. - 지금도 지방에 다니다가 나무 있고 바위 있는 아담한 산이 있으면 나는 유심히 그 산을 보게 된다.
- 그이가 저런 곳에서 살기를 원했는데 하고, 그러나 이제는 누구와 같이 그런 곳에 가서 조용히 살까"라고 썼다.
대통령으로 지방을 다니는 중에도 아내가 원했던 풍경을 눈여겨본 것이다. - 작은 시골집에서 함께 살자는 소망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사별 뒤에도 일기에 남았다.
한 달여 뒤인 1977년 4월 12일에는 공관 뒤뜰의 벚꽃길을 걸었다. - 육 여사가 숨진 지 약 2년 8개월이 지난 봄이었다.
- 박 전 대통령은 1974년 4월 9일 아침 아내와 마지막으로 그 길을 거닐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는 "추억의 꽃길을 걸어간다. 낙화가 길을 덮고 있었다. - 영수의 우아한 한복 차림의 그림자가 내 옆에 내 뒤에 걸어가는 듯 같이 걷고 있다는 기분으로 걸어간다
- . 확실히 오늘만은 그이와 같이 걷고 있다. 매년 봄이면 이 길을 걷는 것이 나의 가장 즐겁고도 감상적인 시간이다"라고 적었다.

▲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가 세상을 떠난 뒤 직접 쓴 '잊어버리려고 다짐했건만'
친필 원고.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제공
- 육 여사를 향한 애정은 생전의 행복을 담은 시에서도 드러난다.
- '영수의 잠자는 모습을 바라보고'에서는 잠든 아내의 얼굴과 어진 성품을 찬미했다.
- 그는 "그대의 안면(安眠)의 모습을 바라보고 이 밤이 다 가고 새 날이 오도록 나는 그대 옆에서 그대를 보고 앉아
- 행복한 이 시간을 영원히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라며 아내를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존재로 표현했고,
- 곁에서 누리는 행복이 영원하기를 기원했다.
사별 뒤 쓴 시에는 집 안 곳곳에 남은 아내의 흔적이 등장한다. - 1974년 9월 4일자로 전해진 '잊어버리려고 다짐했건만'은 육 여사가 숨진 지 20일 뒤의 기록이다.
- 슬퍼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아내의 모습과 목소리가 떠오르고, 잊으려 할수록 기억이 더욱 선명해진다는 내용이다.
- 그는 "이제는 슬퍼하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건만 문득 떠오르는 당신의 영상"이라 표현했다.
- 또한 아내가 앉던 의자와 만지던 물건, 입던 옷과 신발뿐 아니라 자신을 부르던 말과 걸어오던 발자국 소리까지 되짚었다.
같은 달 30일자로 제시된 '당신이 그리우면'에서는 묘소에 잠든 아내에게 대화하듯 말을 건넸다. - 자신이 찾아왔는데도 왜 인사가 없느냐고 묻다가, 아내는 반갑게 인사했지만 자신들이 듣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그는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내 귀에 생생히 들리는 것 같아"라며
- 아내가 여전히 곁에 있다고 여기며 그리울 때마다 다시 찾아오겠다는 약속으로 이어진다.
육 여사의 첫 기일을 하루 앞둔 1975년 8월 14일자로 전해진 '임이 고이 잠든 곳에'에서는 돌아오는 계절과 - 돌아오지 않는 아내를 대비했다. 무궁화와 백일홍은 다시 피고 매미도 찾아오지만, 한 번 떠난 아내는 돌아오지 않는다.
- 시는 세월이 흘러도 남아 있는 사랑으로 끝을 맺는다.
박 전 대통령은 아내를 떠나보낸 지 5년 2개월 뒤인 1979년 10월 26일 서울 궁정동에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 총격으로 숨졌다. 아내와 시골집에서 함께 노후를 보내려던 소망은 끝내 이루지 못했다. 그가 생전에 남긴 시와 일기에는
- 둘이 함께 살고 싶었던 시골 풍경과 함께 걷던 길, 그리울 때마다 다시 찾아가겠다고 약속한 묘소가 남았다.
다음은 박 전 대통령이 육 여사를 그리워하며 남긴 시 '임이 고이 잠든 곳에' 전문이다.

▲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생전 함께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박정희대통령기념관 제공
- 임이 고이 잠든 곳에
임이 고이 잠든 곳에
방초(芳草)만 우거졌네
백일홍이 빵긋 웃고
매미 소리 우거진데
그대는 내가 온 줄
아는지 모르는지
무궁화도 백일홍도
제철이면 찾아오고
무심한 매미들도
여름이면 또 오는데
인생은 어찌하여
한번 가면 못 오는고
임이 잠든 무덤에는
방초만 우거지고
무궁화 백일홍도
제철 찾아 또 왔는데
임은 어찌 한번 가면
다시 올 줄 모르는고
해와 달이 뜨고 지니
세월은 흘러가고
강물이 흘러가니
인생도 오고 가네
모든 것이 다 가는데
사랑만은 두고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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