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함께했다.

가난했던 시절도,
거리에서 쫓기던 시절도,
권력의 문 앞에서 수없이 좌절했던 시절도.

노현무와 문인재.

둘은 친구였고, 동지였고,
서로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권력은 이상했다.

잡기 전에는 둘을 하나로 만들었고,
잡은 뒤에는 둘 중 하나를 필요 없게 만들었다.
 

늦은 밤.

어두운 방 안에 문인재와 몇몇 사람들이 앉아 있다.

테이블 위에는 서류 몇 장이 놓여 있다.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는다.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서류를 밀어놓는다.

“이대로 가면… 우리 전부 끝입니다.”

문인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서류를 한 장씩 넘겨본다.

“한 사람만 책임지면 됩니다.”

긴 침묵.

문인재가 묻는다.

“현무는?”

“그분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설득은?”

“안 됩니다.”

문인재는 잠시 생각한다.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형수님은?”

“동의하셨습니다.”

문인재가 서류를 덮는다.

“그럼 됐네요.”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본다.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정말 하시겠습니까?”

문인재는 의자를 밀고 일어난다.

“우리도 살아야죠.”

그뿐이었다.


며칠 뒤.

이른 아침.

노현무는 평소처럼 집을 나선다.

산책을 따라나선 경호원 두 명이 뒤를 따른다.

“오늘은 위쪽까지 가시죠.”

노현무가 웃는다.

“아침부터 왜 이렇게 부지런해.”

세 사람은 천천히 산을 오른다.

새소리가 들리고,
멀리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노현무는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는다.

평생 자신을 지켜온 사람들이었으니까.


올빼미 바위.

노현무가 아래를 내려다본다.

“여긴 올 때마다 좋네.”

대답이 없다.

노현무가 뒤를 돌아본다.

경호원 두 명이 서 있다.

표정이 이상하다.

“왜?”

한 명이 시선을 피한다.

다른 한 명이 입을 연다.

“죄송합니다.”

노현무의 표정이 굳는다.

“…뭐가.”


잠시 후.

산 아래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새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른다.


얼마 뒤.

검은 승용차 한 대가 멈춘다.

문인재가 차에서 내린다.

뛰지도 않는다.

서두르지도 않는다.

경호원 한 명이 다가온다.

“…아직 숨이 붙어 있습니다.”

문인재는 아무 말 없이 걸어간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노현무.

눈이 희미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문인재를 알아본다.

“…인재야.”

문인재가 그 앞에 앉는다.

노현무가 힘겹게 묻는다.

“왜…”

문인재는 한동안 그를 바라본다.

눈물도 없다.

목소리도 흔들리지 않는다.

“형님.”

“……”

“우리 살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노현무의 눈빛이 흔들린다.

문인재가 말을 잇는다.

“그리고 형님도 생각하셔야죠.”

“……”

“형수님이랑 애들.”

노현무가 문인재를 바라본다.

마치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하지 못한 사람처럼.

“…권숙이가?”

문인재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 침묵만으로 충분했다.

노현무가 헛웃음을 흘린다.

“그래.”

숨을 힘겹게 들이마신다.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문인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노현무가 마지막 힘을 짜내듯 말한다.

“인재야.”

“예.”

“다음에는…”

잠깐의 침묵.

“네 차례일 수도 있다.”

문인재는 여전히 표정이 없다.

“그때는 그때 가서 생각하죠.”

잠시 후,

노현무의 움직임이 멈춘다.

문인재가 한동안 그를 바라본다.

그리고 조용히 일어난다.

“갑시다.”


노현무의 집.

아직 아무에게도 소식이 알려지지 않았다.

문인재는 혼자 서재로 들어간다.

책상 위에는 노현무의 노트북이 놓여 있다.

전원을 켠다.

바탕화면에 가족사진이 떠 있다.

젊은 시절의 노현무.

양권숙.

아이들.

문인재는 잠시 사진을 바라본다.

그리고 빈 문서를 연다.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다.

탁.

탁.

탁.

정적 속에서 타자 소리만 울린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문인재가 잠시 손을 멈춘다.

그리고 다시 친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다음 문장.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문인재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이 없다.

마지막 문장을 입력한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저장.

문서를 닫는다.

노트북 화면에 다시 가족사진이 나타난다.

뒤에서 양권숙의 목소리가 들린다.

“…끝났어요?”

문인재는 노트북을 바라본 채 대답한다.

“예.”

“사람들이 믿을까요?”

문인재가 노트북을 닫는다.

“믿겠죠.”

“만약 안 믿으면요?”

문인재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증명하라고 하면 됩니다.”


몇 시간 뒤.

속보가 전국을 뒤덮는다.

「노현무 전 대통령, 올빼미 바위에서 투신」

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다.

거리에는 국화가 쌓인다.

방송에서는 그의 생전 모습이 반복된다.

그리고,

영정 앞에 서 있는 문인재.

기자가 묻는다.

“고인과 평생을 함께하셨는데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

문인재는 영정을 바라본다.

오랫동안.

그러나 눈물은 없다.

마침내 짧게 대답한다.

“좋은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다.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진다.
 

화면 암전.

정적.

그리고 자막.

“그날의 진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몇 초 뒤.

한 줄이 더 나타난다.

“아니, 살아 있는 사람 중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