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욕, 또는 욕망으로부터의 분리됨은 상실이 아니라, 나라는 테두리의 상실에 따른 원래의 더 넓은 가능세계에의 포섭이다. 그러나 금욕 자체가 이미 '금지'라는 동사를 포함하므로 '금지를 하는 동안에만 한시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의존적인 존재'에서 시작함을 상정하고 있다는 한계에 주목해봐야 함.
말하자면, 물질세계에 대한 집착과 욕망으로부터 결코 완전히는 벗어날 수 없다는 거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욕이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절제의 연습임. 어떤 집착과 욕망으로부터 원하면 언제든 벗어날 수 있고 의존하지 않는 상태에서 그것에 다가가는 것과, 그것에 사로잡히고 자아의 완성이 그것에 의존적인 채 다가가는 것은
겉으로는 같은 액션같아보여도 실제로는 종속 여부를 구분하는 결정적인 차이임.
여기서 '사로잡히지 않고 의존하지도 않지만 다가감'이 결국 욕망의 실현이자 겉보기에는 종속의 증거와 구별불가능하므로 전부 세련된 정당화에 불과할 뿐이지 않나? 완전한 금지의 지속이 아닌 이상 그냥 예쁜 욕망 포장에 않나?' 하고 물을 수 있는데, 내 생각은 좀 달라. 완전한 금욕 의지는 오히려 그 자체로 종속임.
'절대로 다가가지 않고 이끌리지도 않는다'라는 것은 그 자체로 그것과의 완전한 분리를 집착하고 욕망하는 것이고, 그 정체성에 의존하게 되는 거임. 그래서 그 구분의 경계에서 중용에 따라, 집착하고 의존하여 사로잡히지 않으면서도, 물흐르듯 그것들을 경험하고 통과하는 느낌이 되는 것임.
이 차이를 구분하지 못 하면 욕망과 금욕이라는 이분법적 선악관, 좋고나쁨의 구분에 갖혀서 무한 루프의 양극단을 반복하게 될 뿐임. 왜냐면 세계는 언제나 운동하고, 그 흐름을 두 개의 양쪽 그릇에만 번갈아가며 옮겨담는다면 반드시 그 2개 내에서만 삥삥 돌기 때문임. 그러나 그 경계에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용적인 것 근처에서 흐르는 것 자체를 느끼고 연습하게 되면, 마치 파도를 타듯 무한에 가까운 자유로움 속에서 새로운 운동이 매 순간 다시 시작됨
이건 의지로써 욕망을 억제하고 참는 게 아님. 그건 에너지적으로 너무 비효율적임 저항이자 마찰이라서. 그게 아니라 에너지 흐름 자체에 올라타는 거임 파도와 한몸이 되듯이. '안 돼!'라고 스스로에게 명령하는 것 자체가 자아를 붙잡은 채로 스스로 자아를 누르는 거라서 더 크게 흔들릴 뿐임.
부처가 정말 대단한 게, 이런 전개 실험을 책이나 현실보다는 자아와 인식 바깥의 어떤 우주 전체 느낌?에
스스로 자아의식에의 집중과 그것으로부터의 분리라는 해체-재조립의 수단만을 주로 이용해서 자기 의식의 바운더리를 우주 전체에 가깝게 확장공사했다는 점임
요컨대 부처는 마치 시간이 흐르면서 세계가 변화하듯, 그 흐름을 오로지 자기 의식 내외에서 모방함으로써 세계와 유사한 과정으로서 존재했었음
부처는 어떤 고정된 사상이나 진리의 표상이라기보다는, 세계라는 변화 또는 흐름 그 자체이지 않나 싶음. 부처 자체가 하나의 흐름이고, 불교는 부처라는 어떤 '가르침'에 대한 yes/no의 진리판단이 아니라, 그 흐름에 올라타봄으로써 스스로 부처로서 이어지는 연속의 연습이 아닌가 싶
사실 나 부처잘모름
그냥 이런느낌의 것들을 뭔가 포획해서 전달하기가 애매해서 부처라는 개념을 빌려와서 대충 설명하는 것에 가까움
1시간?전에 트위터 장발왕궁디백인보추 흑인대물에 따먹히는거보면서 질투하다가 싼 직후 생각난 테마임
그거 북마크해둔 것들 전부 하나씩 지우면서 "내가 이것없이도 살수있는 존재다'라는 아직 증명되지 않은 명제를 의식하면서 틀어놓고
그 의식을 주축으로 그 장발왕궁디남자애가 흑인좆에 쑤컹쑤컹 따묵히는 그런 종류의 경험에 내가 어떤 식으로 분리되는지 경계 근처에서 계속 맴돌았음
완전히 그 성적행위의 모방욕구에 집착하지도, 분리되려는 고전적 금욕에도 집착하지 않으면서 그 근처를 계속 맴돌아봄
요컨대 포르노와 성적행위에 종속되는가 안 되는가 라는 T/F의 최종 확정이 목적이 아니라 그 중간의 애매모호한 연속적 흐름을 타봄
그렇게 붓다 플로우 카피하다보니깐 뭔가 눈앞의 왕궁디랑빅좆이 흐려지면서 재조립된 수많은 원형들이
눈앞에 형상이나 기호로 떠오르고 별의별 이상한 주제에 연계되면서 메모 ㅈㄴ적음 밤에에너지음료간만에빨아서그런것같기도하고
좀 새로운 경험이었음
지금 글은 성적인 것에 비유해놔서 좀 그렇긴한데, 그냥 현실세계의 어떤 욕망과 집착에도 실험해볼 수 있는 경계흐리기 전략이라고 생각함
부처는 진리라기보다는 그 점 하나만 떼어놓고 나머지 모든 흐르는 과정에 대한 얘기에 가깝고, 그가 (내 피상적인 이해로 볼 때) 진리라는 '것'을 말했다는 느낌은 안 듦
이것은 옳다 그것은 그르다 뭐 이런 느낌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음. 그냥 '이렇게 한번 봐보자. 그러면 이렇게 되더라.' 느낌인 것 같기도 하고
그걸 우리가 문장 자체를 우리 머릿속에 박제한 채 사는 것이 아니라 부처'처럼' 해보는 것, 요컨대 부처 느낌~의 흐름과 그 시도를 해보면서 그 이후에 내가 욕망과 집착들로부터 어떻게 분리되고 다시 결합되는지를 자아로부터 이렇게도 저렇게도 떨어져보며 관찰하는 것, 그 흐름과 변화.
잼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