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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구좌파, 이른바 민족-민주 투사들의 타락 때문 … 히틀러-스탈린 둘 다 불러들일 판

알타이21
0 2026-09-26 23:44:49

타락한 구좌파, 이른바 민족-민주 투사들의 타락 때문 …
히틀러-스탈린 둘 다 불러들일 판 09 26





 
  • 류근일 논설 고문 / 전 조선일보 
지유일보 2026
 
오웰-아렌트의 경고, 양 극단의 전체주의홍위병 된 고학력 중우(衆愚), 그들의 광기소크라테스-예수도 죽인 환장한 떼(군중)민주주의가 떼거리-패거리 정치로 추락





 
  • ▲ 《민주화 후의 민주주의》뒤, 또 다른 괴물이 나타났다. 이른바 민족-민주 투사들의 타락. 선동꾼으로 변신한 그들은《고학력 중우(衆愚)》를 선동, 홍위병으로 둔갑시켰다. 2천년전 소크라테스와 예수를 죽인 떼거리의 환장은 현대 한국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 삽화 = 챗GTP
     

    ▲ 《민주화 후의 민주주의》뒤, 또 다른 괴물이 나타났다. 이른바 민족-민주 투사들의
    타락. 선동꾼으로 변신한 그들은《고학력 중우(衆愚)》를 선동, 홍위병으로 둔갑시켰다. 2천년전 소크라테스와 예수를 죽인 떼거리의 환장은 현대 한국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 ⓒ 삽화 = 챗GTP



     
    2. [민주화 후의 민주주의] 무엇이 잘 못 됐나? 
     
    1편에서 나는 1987년에 이 땅에 찾아온 [해빙(解氷)의 새 아침]을 한껏 구가(歐歌)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13년 후. 
    나는 이런 글을 써야만 했습니다(조선일보 2003/02/26). 
    정년 퇴임에 맞춘 고별 칼럼이었습니다.  
     
     
  • ▲ 2003년 2월 26일자 조선일보. ⓒ 조선일보 DB
     

    ▲ 2003년 2월 26일자 조선일보. ⓒ 조선일보 DB


     
    《언론 35년, 조선일보 23년》
     
    민주화 10년에도 불구하고, 그 민주화 세력까지를 포함해, 이 시대 사람들이 하는 짓은 왜 그렇게 전과 똑같이 저질적이고 야비하고 악의적이며 너절하고 고약한가? 
    똑같은 마키아벨리즘, 똑같은 중상모략, 똑같은 타락, 똑같은 악다구니, 똑같은 잔꾀, 똑같은 해코지, 똑같은 복수극, 똑같은 숙청, 똑같은 싹쓸이, 똑같은 땅벌 떼, 그리고 똑같은 깡패짓과 똑같은 무지몽매….  
     
    지난날의 가해자와 피해자, 핍박한 쪽과 핍박당한 쪽이 결국은 모두가 똑같이 바닥치기로 닮아버린 꼴이다. 이제 정의(正義)는 아무 데도 없다.  
     
    아니 “내가 정의다”라는 허울 좋은 명분 뒤에 숨은 신판 독선주의, 신판 획일주의, 신판 전체주의의 흑백논리가 정의 그 자체를 무참하게 일그러뜨리고 있는 세상이다.  
    어떤 때는 민족주의의 이름으로, 어떤 때는 난폭한 민중주의의 모습으로, 오늘의 신판 컬트(cult, 사이비 종교)의 탁류는 이 나라를 총칼만 들지 않은 총체적인 내란 상태로 몰아넣는 데 성공했다. 
     
    김정일을 비판하면 전쟁하자는 거냐, 한-미 관계를 걱정하면 사대주의 하자는 거냐, 실패한 개혁을 나무라면 수구하자는 거냐 윽박지른다. 자기들은 남을 매도하면서 이쪽은 아예 입도 벙긋하지 못하게 한다. 
     
    이런 판은 그래서 제대로 된 민주주의-민족주의-공정사회 아닌, 그저 빙의(憑衣)된 망령들의 굿거리 한 판일 뿐이다.
                        - 조선일보 (2003/02/26)
     
    위 칼럼은 우리의《민주화 후 민주주의》에 대한 극심한 실망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됐나요? 
     
    나는 그것을《타락한 구좌파의 엽기적인 면모》란 말로 표현했습니다. 
     
     
  • ▲ 2005년 3월 31일자 조선일보. ⓒ 조선일보 DB
     

    ▲ 2005년 3월 31일자 조선일보. ⓒ 조선일보 DB


     
    《민족 민주 투사들의 타락》
      
    타락한 구좌파(NL)의 엽기적인 면모가 날이 갈수록 한낮의 태양 아래 발가벗은 알몸을 드러내고 있다. 세상의 정의와 진리는 온통 자기들이 독차지했다는 양 우쭐대던 일부 [민족-민주-민중 투사]들이 노는 가락을 보면 이건 아예 막가자는 투다.  
     
    환히 드러나는 자신의 비리를 두고서 거짓말과 말 바꿈을 떡 먹듯 하고, 남에 대해서는 100년 전 일도 샅샅이 뒤져 부관참시(剖棺斬屍)하겠다는 그들이, 자기들 구린 것에 대해서는 오리발과 함구로 내뻗는다.
     
    남의 할아버지가 식민지 법규와 제도에 맞춰 공생활 한 것만 친일이라고 잡아 족치면서, 제 아버지 악질 특무 노릇한 것은 털도 안 뽑은 채 독립운동가로 포장한 사례.  남의 부정부패에 대해서는 입에 거품을 물고 악다구니하다가도, 막상 자기들이 끗발을 잡고 난 다음에는 하루가 멀다고 권력형 비리 기사의 주인공이 되는 그들이다. 왕년에 군사정권을 [폭력]이라고 비난하던 그들이었건만, 그들 정권 아래서 그들의 홍위병, 탈레반들이 하는 짓거리는 황야의 무법자도 이런 무법자가 없다. 
     
    거리에서 주먹을 휘두르며 자본가를 매도하는 측의 탈선 역시, 이제는 그들이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특권 귀족]임을 드러냈다. 대법원이 이적단체로 규정한 단체장도 입북했다. 그들이 대한민국 법질서를 얼마나 우습게 여기는지 알 만하다.  
     
    이들은 왜 이렇게 됐나? 그들의 저주-증오의 철학, 선민(選民)의식, 독선-무식이 그들을 이렇게 타락시켰다. 그들이 그런 심정에 빠졌던 그간의 사연을 헤아리려 하다가도, 그것을 나라의 장래와 바꿀 수는 없다는 절박감에 사로잡힌다.  
     
    자기들이 악마라고 규정한 상대방을 쳐부수기 위해, 마치 그보다 더한 악마와 계약을 맺은 듯싶은 그들의 작태는, 그들이 기껏 고것밖엔 되지 않았음을 드러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일단 정권을 한번 잡은 것은 그런대로 정치사적 의미는 있었다. 그동안 그들에게 주눅 들었던 세상이 그들 [민족-민주-민중 투사]들에게 졌다고 생각한 빚을 이젠 다 갚은 셈이기에.  
     
    그들의 어쭙잖은 밑천 또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들에 대해 더 이상의 신비나 환상을 가질 이유도 없어졌다. 그들의 머리에 있던 아우라는 영구히 사라졌다.  
     
    그들을 뽑아준 세대와 골수 지지자들도 답해야 한다. 그들의 그런 선택 덕분에 취직도 더 잘 되고, 보너스도 더 잘 나오고, 재래시장 식당 미장원 목욕탕 이발소도 더 북적거리고, 시중자금도 더 잘 돌아가게 됐는가?  
     
    누가 집권해도 세상이 갑자기 좋아질 수는 없다. 그러나 말끝마다 [정의 투사]라던 친구들이 어떻게 저렇게 신속히 너절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민족-민주-민중] 운운이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어떻게 힘들게 만들고 있는지, 냉철하게 돌아봐야 할 때다.

     
                           - 조선일보 (2005/03/31)
     
     
    자 그렇다면 우리 정치사의 이런《반전(反轉)의 반전》앞에서 왕년의 학생운동 경력자 류근일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옳았겠습니까? 결론만 말합니다. 
     
    《한 번의 인생, 두 번의 싸움》그것이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 중년 이후에는 극좌 전체주의에 대한 저항. 
    나는 이 모델을 조지 오웰과 한나 아렌트에게서 발견했습니다. 
    나의 멘토들인 셈입니다. 
     
     
     
  • ▲ 조지 오웰의 대표적 소설,《1984》와《동물농장》한글 번역본 표지. ⓒ 민음사
     
    ▲ 조지 오웰의 대표적 소설,《1984》와《동물농장》한글 번역본 표지. ⓒ 민음사
    《조지 오웰의 [1984] [동물농장]》
     
    조지 오웰도 나처럼 46년이라는 짧은 생애에《한 번의 인생, 두 번의 싸움》을 했습니다. 
     
    첫 번째 싸움. 
    그는 가난한 귀족 가문에 태어나 이튼 고등학교에 다녔습니다. 
    미얀마로 건너가 제국 경찰로 근무했습니다. 
    이게 그가 살았던 ’주어진 삶‘이었습니다. 
     
    두 번째 싸움. 
    그는 이 주어진 틀을 과감히 단절했습니다. 
    제국 경찰이란 직업을 때려치우고 영국 빈민가에 들어가 무명 다큐멘터리 작가가 되었습니다.  
     
    저항자로서 조지 오웰은 급기야는 스페인 내전에까지 참전했습니다. 
    인민전선(Peoples Front) 편에 서서. 
     
    그러다 스탈린주의자(공산주의자) 들에게 배신당해, 아내의 도움으로 간신히 스페인에서 탈출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공산당 전체주의 일당독재의 위선 이 인간을 얼마나,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뼈아프게 절감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널리 전파했습니다. 
    소설《1984》《동물농장》의 필자로서. 
    이것이 그가 했던 두 번째 싸움이었습니다. 
      
    그는《스페인 내란 회상》에서 또 이렇게 말합니다. 
     
    “스페인 내란은 내 삶의 모든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그 후에 내가 쓰는 진지한 글들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전체주의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  
     
    양극단의 전체주의, 파시즘 과 공산주의 가 닭 한 마리를 삶아놓고 그것을 자기들만 뜯어먹는 판이라면, 거기 어떻게 [자유 우파] [민주 좌파]의 몫이 있겠습니까? 
    이래서 자유인들에겐《한 번의 인생, 여러 번의 싸움》일 수밖에 없습니다.  
     
     
     
  • ▲ 한나 아렌트의 주요 저서 한글 번역본들. 왼쪽부터《전체주의의 기원》1, 2, 그리고《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 한길사
     
    ▲ 한나 아렌트의 주요 저서 한글 번역본들. 왼쪽부터《전체주의의 기원》1, 2, 그리고《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 한길사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함]》
     
    조지 오웰이 극좌 스탈린 전체주의의 죄악 을 예리하게 파헤쳤다면,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극우 나치의 죄악 을 적나라하게 까발렸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라는 것 뒤에 대체 무엇이 있기에 그렇듯 끔찍한 세상이 오는가를 주의 깊게 관찰했습니다. 
    그녀 자신도 히틀러 전체주의 의 피해자였기에. 
     
    그녀는 그것을《악(惡)의 평범함(The Banality of Evil)》이라고 보았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유대인 학살에 복무한 나치 친위대 아이히만 이 보인 저《천연덕스러움, 예사로움, 무사유(無思惟, 생각 없음), 상부 명령에 따랐을 뿐》이란 태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당시 다수 독일 대중도 그런《무사유의 자세》로 살았습니다. 
    선악에 대한 대중의 [무심(無心)함] 이야말로 나치즘-파시즘-볼셰비즘의 공동정범(共同正犯) 이라 해 마땅할 할 것입니다. 
     
    심야의 광화문 광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반대를 외친 고졸-대졸 고학력 군중의 노는 모습 에서 우리는 그런《무사유(無思惟)》의 한 단면을 보았습니다. 
    전 세계인들이 먹는 미국산 쇠고기인데 말입니다. 
     
    그들《고학력 중우(衆愚)》는 자기들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에 대해서도 다 일가견이 있습니다. 
    누구도 자기를 가르칠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그런 그들이 한쪽으로 꽂히면 그땐 아무도 못 말립니다.  
    이들이 선동가-사이비 종교-교활한 정치꾼-편파적 미디어에 세뇌당하면? 
    그게 홍위병 입니다. 
    중국 문화혁명 때의 저 미친 10대들. 
     
    그런 광기(狂氣)의《떼》는 2000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아테네의 대중민주주의가 소크라테스를 죽였을 때, 로마가 지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을 때, 군중《떼》는 어김없이 거기 있었습니다. 
    환장하고 눈 뒤집힌 그 모습 으로. 
     
    한나 아렌트가 말한《악의 평범함》이란 결국, 개인이 져야 할 악의 몫마저 몽땅 구조(構造)가 한 것으로 떠넘기는 좀비 속성 입니다. 
    이런 속성은 보이스 피싱 조직에서 매일 같이 복무하면서도 죄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습니다. 
     
    투철한 개인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물론 모든 집합(集合)이 다 똑같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겠지요. 
    전체주의 음모꾼들의 선동에 놀아나는 히틀러 유겐트 가 위험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체주의 통치의 이상적인 신민(臣民)은 나치 확신범, 열성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사실과 허구, 진실과 거짓을 더 이상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전체주의 교육의 목적은 어떤 신념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신념을 형성하는 능력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다.“ 
     
     

  • ▲ 조지 오웰(왼쪽)과 한나 아렌트. ⓒ
     

    ▲ 조지 오웰(왼쪽)과 한나 아렌트. ⓒ


     
    《조지 오웰과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론.》
     
    내가 좌-우 못지않게, 자유의 체제냐 전체주의 체제 냐를 묻게 만든 결정적인 모티브였습니다.
     
    이것 없이 무조건 좌-우만 따졌다가는 히틀러 와 스탈린 을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그 둘을 한꺼번에 다.      (계속)
     
류근일 논설 고문 / 전 조선일보 주필
 

류근일 논설 고문 / 전 조선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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