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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어느 날이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 5시.

밖은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얗게 김이 나올 정도로 추웠고, 생활관 창문은 차갑게 얼어 있었다.

“야, 일어나.”

누군가 낮게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누구 하나 깨우기 힘들었을 시간인데, 이날만큼은 이상하게 다들 금방 일어났다.

전역 당일.

몇 년 동안 매일같이 듣던 기상 시간이었는데,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평소와 똑같은 생활관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침상에서 일어나 군복을 챙겨 입고, 동기들과 샤워장으로 향했다.

새벽의 샤워장은 사람이 많았다.

뜨거운 물이 쏟아지면서 샤워장 안은 금세 뿌옇게 김으로 가득 찼다.

누군가는 말없이 씻고 있었고, 누군가는 평소처럼 장난을 쳤다.

“야, 너 진짜 오늘 나가네.”

“그러게.”

“실감 나냐?”

잠깐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막상 대답하려니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실감은 잘 안 났다.

매일 보던 동기들인데 오늘부터는 서로 다른 곳에서 살아가게 된다.

샤워를 마치고 생활관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관물대를 정리했다.

몇 년 동안 입었던 군복, 군화, 개인 물품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입대 첫날에는 모든 게 낯설었다.

관물대 정리하는 법도 몰랐고, 군복을 입은 자기 모습도 어색했다.

그런데 지금은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이 공간을 떠난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침식사 시간이 됐다.

마지막으로 후임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동안 고생했다.”

“형님도 나가서 잘 사십시오.”

평소 같으면 별것 아닌 인사였을 텐데 이날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묘하게 오래 남았다.

누군가는 웃으면서 악수를 했고, 누군가는 장난스럽게 놀렸다.

“형님 사회 나가서 사고 치지 마십시오.”

“니들이나 잘 살아라.”

웃으면서 대답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이상했다.

같이 생활했던 사람들이었는데 이제 이곳에 남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으로 나뉘었다.

마지막으로 식판을 내려놓고 생활관을 한 번 돌아봤다.

그리고 부대를 나왔다.

부대 밖으로 나오니 공기가 달랐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춥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몇 년 동안 그렇게 나가고 싶었던 부대였는데,

막상 위병소를 지나고 나니 허전했다.

동기들과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 근처에는 군인들이 자주 가는 식당이 하나 있었다.

전역하는 날이라고 거창한 걸 먹을 것도 아니었다.

동기들과 들어가서 밥 한 끼를 먹었다.

“야, 이제 진짜 끝이다.”

“그러네.”

“다시는 여기 근처 올 일 없겠지?”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다들 웃었다.

하지만 아무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때는 정말 다시는 안 올 것 같았다.

밥을 다 먹고 터미널로 나왔다.

그리고 결국 각자의 버스를 탔다.

“연락해라.”

“너도.”

“잘 살아라.”

버스가 출발하면서 창밖을 봤다.

터미널에 남아 있는 동기들의 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손을 흔들다가 어느 순간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 동안 함께했던 사람들이 각자의 삶으로 흩어졌다.

버스 안에서는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창밖으로 겨울 풍경이 빠르게 지나갔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군부대에 있었는데,

지금은 민간인들 사이에 앉아 있었다.

군복을 입고 있지 않다는 게 아직 어색했다.

휴대폰을 보고, 창밖을 보고, 또 시간을 확인했다.

'진짜 끝났구나.'

그제야 조금 실감이 났다.

입대하기 전에는 정말 어린아이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고 집을 나섰고,

몇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전역인데 막상 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생각보다 큰 기쁨이 없었다.

오히려 공허했다.

'내가 그동안 뭘 한 거지?'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갔나?'

입대하던 날의 기억은 분명 얼마 전 같은데,

돌아보니 몇 년이 총알처럼 지나가 있었다.

버스가 집 근처에 도착했다.

짐을 들고 내렸다.

익숙한 동네였다.

똑같은 건물, 똑같은 도로, 똑같은 편의점.

그런데 내가 달라져 있었다.

입대하기 전의 내가 이 길을 걸었던 적이 분명히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아니었다.

집 문을 열었다.

“왔어?”

가족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그 한마디가 전부였다.

방에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았다.

침대에 앉았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정말 끝났다.

내일 아침에는 기상나팔이 울리지 않는다.

점호도 없다.

구보도 없다.

누가 깨우러 오지도 않는다.

아무도 나에게 오늘 뭘 하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게 바라던 자유인데,

막상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으니 오히려 낯설었다.

몇 년 동안 내 하루는 누군가가 정해줬다.

일어나고,

밥 먹고,

일하고,

쉬고,

자고.

그게 사라졌다.

전역이라는 건 단순히 군대에서 나오는 날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그날이 되어보니,

전역은 군대에서 나오는 것만이 아니었다.

입대하기 전의 어린 나와도 헤어지는 날이었다.

그동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새벽 5시의 차가운 생활관도,

김으로 가득했던 샤워장도,

마지막 아침식사도,

동기들과 터미널에서 먹었던 밥도,

버스 창밖으로 멀어지던 사람들도.

그날 하루는 이상할 정도로 평범하게 흘러갔다.

그런데 아마 평생 기억에 남을 하루가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몇 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전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