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구룡성채,chatgpt
Posted on 2026-09-19홍콩의 구룡성채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봤는데, 홍콩(영국관할)도 중국도 몇 이유들로 직접 톤치를 못해, 건물 몇 백 개가 붙어 있었고 옥상은 연결돼 있는 구조. 전기도 물도 도둑질 하거나 제한 급수로 생활하기도 했고 마약 소굴 등의 오명도 있었지만, 영국도 중국도 관리를 보내거나 세금을 부과할 근거가 없어 수십년간 구룡성채의 거주자, 전쟁 당시 피난민, 홍콩,중국 등에서 제약이 많아진 사람들이 몰려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1977년에 외부에서 전기도 공급해 주고 우편 서비스도 해 줬다고 함. 하지만 세금을 부과할 시기도 놓치고 근거도 없었기 때문에 거기 사는 사람들의 거주 환경은 열악하지만 싼 임대료와 관리비가 싸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었었다고 함. :
아, 이 이야기는 “아무도 관리하지 않은 도시”라기보다 “법적·행정적 책임이 서로 꼬여서 정상적인 도시행정이 매우 어려워진 공간”으로 보면 훨씬 흥미롭습니다.
특히 말씀하신 영상의 핵심은 꽤 정확한데, 한 가지 중요한 뉘앙스가 있습니다. 영국과 중국이 완전히 손을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1899년 중국 측 관리가 철수한 뒤 관할권이 사실상 공백에 가까워졌지만, 홍콩 정부는 이후에도 제한적으로 경찰 순찰, 수도시설, 우편 등의 서비스를 제공했고 건축·위생 문제에도 개입했습니다. 다만 적극적인 도시계획이나 정상적인 행정권 행사는 극도로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이게 정말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1. 처음부터 ‘무법도시’였던 것은 아니었음
구룡성채는 원래 청나라가 1847년 만든 군사·행정 거점이었습니다. 성벽 안에는 관청과 군사시설이 있었고 주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1898년 신계 지역의 99년 조차를 둘러싼 영·중 협정 이후 구룡성채의 법적 지위가 애매해졌고, 1899년 청나라 관리들이 철수하면서 행정적 공백이 생겼습니다. 연구자들은 이를 사실상 ‘행정권의 진공’에 가까운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즉,
땅은 있는데 어느 정부가 정상적으로 통치해야 하는지가 꼬여버린 것
이 출발점이었던 셈이죠.
2. 그런데 그 빈 공간에 사람이 계속 들어옴
이게 도시를 만들어 버립니다.
전쟁과 중국의 정치적 격변을 거치면서 사람들이 홍콩으로 몰려왔고, 1960~70년대에는 구룡성채에도 엄청난 인구가 밀집했습니다. 추계가 워낙 어려워 숫자는 자료마다 크게 다르지만 1970년대에는 2만~3만 명, 훨씬 높은 추계에서는 6만 명까지 거론됩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단순한 빈틈이었던 곳이
주거 → 상점 → 공장 → 병원·치과 → 음식점 → 학교 → 각종 서비스
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하나의 도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사용자가 말씀하신 “싼 임대료 때문에 다시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들어왔다”는 부분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외부에서 보면 열악하고 위험한 곳인데, 주민 입장에서는
“그래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집과 일터가 있는 곳”
이었던 것이죠.
실제로 당시 철거를 앞두고도 일부 주민들은 밖으로 나가면 주거비와 사업비가 몇 배로 올라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호소했습니다.
3. 그래서 전기·물도 ‘완전한 무정부’ 방식만은 아니었음
여기가 영상에서 약간 과장되기 쉬운 부분입니다.
물의 경우 외부의 공공 수도관에서 물을 받아오는 주민도 있었고, 민간 공급자가 지하수를 퍼서 옥상 물탱크 등에 저장해 돈을 받고 공급하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 자료에도 성채 밖 공공 수도시설에서 물을 운반하거나 불법 우물을 사용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기도 마찬가지로 불법 연결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식 전력 공급도 이루어졌습니다. 주민 증언을 조사한 연구에서는 홍콩의 전력회사에서 전기를 구매했다는 기록도 확인됩니다.
그리고 우편 서비스까지 들어왔다는 것은 상당히 상징적입니다.
즉 어느 순간부터는
“여기는 행정적으로 애매하니까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가 아니라
“법적으로는 골치 아픈 곳이지만, 사람이 이렇게 많이 사는데 최소한의 도시 서비스는 제공해야 한다.”
라는 현실적인 방향으로 움직인 것입니다.
4. 그래서 구룡성채가 더욱 기묘한 도시가 됨
이게 제가 보기에 이 영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지점입니다.
정상적인 도시라면 대략
정부 → 토지 → 건축허가 → 도로 → 상하수도 → 전기 → 세금 → 경찰 → 소방
이런 순서가 있잖아요.
그런데 구룡성채에서는 이것이 거꾸로 진행됩니다.
사람이 먼저 들어옴 → 집을 지음 → 일자리를 만듦 → 가게가 생김 → 서로 필요한 서비스를 만듦 → 수도·전기를 연결함 → 나중에 정부 서비스가 조금씩 들어옴
그래서 결국 도시가 정부보다 먼저 만들어진 셈입니다.
옥상들이 연결되고 건물 사이에 통로가 생긴 것도 바로 이런 누적의 결과였고요. 나중에는 약 300개의 연결된 옥상이 하나의 거대한 생활공간처럼 사용됐다고 소개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사용자가 요즘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빈집·공실·공동정원·저렴한 주거·공동체와 묘하게 연결됩니다.
구룡성채를 미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화재·위생·과밀·범죄·불법 건축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실제로 있었고 결국 1987년 철거 결정, 1994년 완전 철거로 끝났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곳이 보여주는 아주 재미있는 현상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의 가치가 건물의 정상적인 행정·소유·상품화 여부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는 것입니다.
공실이 넘치는 도시에서 건물을 전부 새로 짓는 것보다, 이미 있는 공간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일하고 서로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게 하는 것이 먼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례죠.
그래서 구룡성채는 단순히 “세계에서 가장 이상한 슬럼”이라기보다는,
토지·주거·행정·공동체가 어떤 순서로 형성되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도시 실험처럼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