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카이사레아의 유세비우스는 265년경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313년 자신의 고향인 카이사레아의 주교가 되었으며, 339년 또는 340년에 그곳에서 사망했습니다. 위대한 교회사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그는 기독교 변증가로서도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리스 철학, 특히 플라톤주의에 대한 그의 태도가 바로 이 변증적 관점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 철학자들의 오류나 여러 철학 학파 간의 모순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그리스 철학을 이교도 세계가 기독교를 받아들이기 위해 거치는 준비 과정으로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날카로운 비판을 하기도 했지만, 그의 전반적인 태도는 호의적이고 긍정적이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15권으로 구성된 그의 저서 『복음 준비(Praeparatio evangelica)』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포르피리오스의 기독교 공격에 대응하여 유세비우스가 썼던 25권 분량의 저작이 오늘날 전해지지 않는다는 점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명한 신플라톤주의자이자 플로티노스의 제자였던 포르피리오스에 대한 그의 반박문은 유세비우스의 철학적 사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복음 준비』만으로도 유세비우스가 유스티노스 순교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오리게네스와 같은 일반적인 관점을 공유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 문헌을 폭넓게 섭렵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그는 대단한 박식가였으며, 그의 저술은 오늘날 원전이 소실되어 버린 사상가들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선배들의 태도를 고려할 때, 유세비우스가 플라톤을 특히 높이 평가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실제로 그는 『복음 준비』의 세 권(제11~13권)을 플라톤주의를 다루는 데 할애하고 있습니다. 클레멘스는 플라톤을 '그리스어로 글을 쓴 모세'라고 칭한 바 있는데, 유세비우스도 이에 동의하며 플라톤과 모세의 사상이 일치한다고 보았고, 플라톤을 구원 경륜(economy of salvation)의 예언자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클레멘스나 오리게네스, 그리고 필론과 마찬가지로 유세비우스 또한 플라톤이 자신이 설파한 진리들을 구약성경에서 차용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플라톤이 스스로 진리를 발견했거나 신으로부터 깨우침을 받았을 가능성도 기꺼이 인정합니다. 어쨌든 플라톤은 신에 대한 관념에서 히브리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서간(Letters)에서 삼위일체 사상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 대목에서 유세비우스는 플라톤을 신플라톤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하며, 일자(One) 또는 선(Good), 누스(Nous) 또는 지성(Mind), 그리고 세계 영혼(World-Soul)이라는 세 가지 원리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이데아(Ideas)는 신과 로고스(Logos)의 관념이자 창조의 원형적 모범이며, 『티마이오스(Timaeus)』에 묘사된 창조의 모습은 『창세기』의 내용과 유사합니다. 또한 플라톤은 불멸에 관한 교리에서도 성경과 뜻을 같이하며, 『파이드로스(Phaedrus)』에 담긴 도덕적 가르침은 유세비우스로 하여금 성 바오로를 연상하게 합니다. 심지어 플라톤의 정치적 이상은 유대인의 신정(theocracy) 체제에서 그 실현을 보기도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