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너머의 새벽

 

나는 한때

내가 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다.

 

조금 더 선해지면,

조금 더 깨끗해지면,

조금 더 많은 것을 이루면

내 영혼의 깊은 곳에 드리운 어둠도

언젠가는 스스로 걷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 자신의 무덤에서

자기 힘으로 걸어 나올 수 없었다.

 

나는 넘어졌고,

또 넘어졌다.

 

내가 감추고 싶었던 죄들은

밤보다 검었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두려움은

내 이름보다 오래 나를 따라다녔다.

 

죽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매일 저녁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작고 조용한 그림자였다.

 

그때,

 

십자가 하나가

역사의 언덕 위에 서 있었다.

 

그곳에는

왕관을 쓴 왕이 아니라

가시관을 쓴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이 버린 사람,

세상이 조롱한 사람,

그러나 하늘은 끝내 버리지 않은 사람.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내가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지고

내가 걸어야 할 죽음의 길을

홀로 걸으셨다.

 

못이 손을 뚫고,

피가 땅에 떨어지고,

하늘마저 한낮의 빛을 거두었을 때,

 

나는 비로소 알았다.

 

구원은

내가 하나님께 올라가는 사다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

내가 쓰러진 곳까지 내려오신 사건이었다는 것을.

 

나는 그 십자가에

나의 자랑을 내려놓는다.

 

나의 의로움을 내려놓고,

나의 실패를 내려놓고,

나의 죄를 내려놓고,

끝내 나 자신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빈손으로

그분 앞에 선다.

 

주님,

 

나는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못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은

상처와 후회와

수없이 실패한 마음뿐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빈손으로 온 사람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나의 죄를 씻으시고,

 

죽음의 문 앞에서

나에게 생명의 문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사흘째 되는 날,

 

무덤은 비어 있었다.

 

돌은 옮겨졌고

죽음은 더 이상

마지막 문장이 아니었다.

 

새벽은

죽음을 지나서 왔다.

 

그 새벽에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믿음이란

내가 강하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나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붙드는 것임을.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십자가를 바라본다.

 

내 죄보다 큰 사랑을,

내 절망보다 깊은 은혜를,

내 죽음보다 강한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

 

당신은 나의 과거를 지우는

망각이 아니라,

 

나의 과거까지 품고

새로운 미래로 데려가는

구원이십니다.

 

당신 안에서

죄인은 용서받고,

상처 입은 자는 다시 일어나며,

절망한 자는 소망을 얻고,

죽음을 향해 걷던 사람은

생명의 길로 돌아섭니다.

 

언젠가 나의 숨이 멎고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지는 날에도

 

나는

나의 선행을 붙들지 않겠습니다.

 

나의 이름도,

나의 업적도,

내가 살아온 날들의 숫자도

붙들지 않겠습니다.

 

오직 한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예수.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를

마지막 숨처럼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믿습니다.

 

어둠의 끝에는

새벽이 있고,

 

무덤의 끝에는

부활이 있으며,

 

십자가의 끝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그러므로 주님,

 

오늘의 나를 받아주십시오.

 

완전하지 않은 나를,

여전히 흔들리는 나를,

때때로 넘어지는 나를.

 

내가 당신을 붙드는 것보다

당신이 나를 붙드시는 손이

더 강하다는 것을 믿습니다.

 

나의 구원은

나에게서 시작되지 않았고

나에게서 끝나지도 않습니다.

 

처음도 그리스도요,

마지막도 그리스도이며,

 

오늘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도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니 나는

십자가를 지나

새벽을 향해 걷겠습니다.

 

죽음이 뒤에서 나를 부르고

세상이 나를 잊는다 해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내 앞에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시간이 영원을 만나고

눈물이 더 이상 흐르지 않는 날,

 

나는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말하겠습니다.

 

주님,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제가 당신을 붙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께서 끝까지

저를 놓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나는 알게 될 것입니다.

 

구원이란

내가 하나님께 도착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끝내

나를 찾아오신 이야기였음을.

 

그리고 그 이야기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은혜.

 

부활.

 

그리고 영원한 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