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기자 피셜’ “좌우 상관없이 모든 언론이 한동훈 편에 섰다!”(조갑제TV2026-09-14 오후 12:43:00)는 말은, ‘민주화신화가 처음부터 가짜였다는 말로 해석돼야겠죠?
 
 
모든 언론이 박정희, 전두환 편에 섰던 시대의 풍경.
 
=제사장. 재벌- 왕의 宗家의 일부.
 
이견은 충성/반역과 국론총화단결로 봉쇄.
 
모든 언론이 한동훈 편(원불교 박지원-원불교 김무성 연합의 낙점)에 서는 시대의 풍경.
 
=제후 귀족연합의 分家의 낙점. 실세의 제사장은 제후귀족연합의 대장선비. 송시열, 한명회등의 역사. 재벌은 왕의 분가의 일부.
 
이견은 대동세상, 대동단결중심으로 내부총질 금지로 봉쇄.
 
<박지원-김무성 연합><김대중-김영삼 연합><장면-조병옥 연합>. 이는 시민적 연합이 아니라, 대장선비가 밑그림 그린 것에 민중의 물개박수 연합. 가장 극명하고 심플하게 이 논리가 드러나는 장면은 원불교 백낙청의 저술로, 서양인문학적 성찰의 결과보다는 성리학적 음양이론의 대장선비 포지션을 가진 서술을 드러냄.
 
박정희 전두환 때 재벌중심 성장은, 일제시대 소련마을 출신에 차별 배제의 전제.
 
그리고 지금의 통일전선적 대동단결에 종속된 재벌중심 성장은, 헌법 질서가 걸레가 되도록 하되, 재벌의 양적 수출만 늘리는 속에서 제도문란의 피해를 한미동맹파 보수세력에 전가.
 
실제는 처음부터 하나의 양반분파 내부의 파벌의 갈라섬(은닉행위)일 뿐인데, 이를 서양식 민주주의 연합(민법 108조 통정한 허위표시 가장행위)이라고 국민을 속여왔고, ....
 
특히, 원불교 김무성은 제왕적 대통령제 반대로 영남의 권력집중만 부정하고, 호남중심으로는 무제한을 넘어서는 무제한적 권력집중에 침묵을 한다. 모든 매체가 그 시점으로 줄 선다는 것은 객관적 가치를 향하는 크로스체킹과정을 안하겠다. , 지배귀족 연합의 잇권질서의 하수인으로서 새 픽업’(이재명은 뜨끔할 수 있는)인데, 일반국민은 이재명이든 한동훈이든.... 이게 도대체 무엇인가?
 
모든 언론이 결국 호남분파 양반이거나 영남내부의 친 호남분파이고, 그렇게 양반적 의지로서 담합카르텔을 보여주는 것을 당당히 선언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제왕적 대통령제 때 1인권력독점과 같으나, 원불교 김무성의 지론인 영남 권력집중은 안되지만, 호남의 권력집중은 된다는 내로남불의식이라고 해석된다.
 
모든 언론이 이유없이 1명에 집중한다는 것을 띄우는 것은, 박정희 전두환이 하늘 이라는 것에서, 원불교 박지원-원불교 김무성 연합의 의중이 미는 쪽이 하늘 이다.
 
왕중심주의와 이견봉쇄는, 대동단결위주에 기인한 공정한 기회훼손보다 얼마나 더 나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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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제기한 문제의식은 “언론이 특정 권력에 줄을 서는 구조”가 과연 민주주의적 가치와 어떻게 충돌하는가에 대한 역사적·철학적 성찰로 보입니다.

역사적 맥락

  • 박정희·전두환 시절에는 언론이 사실상 국가권력의 하수인으로 기능하며, 이견을 봉쇄하고 ‘국론통일’을 강제했습니다. 이는 권위주의 체제의 전형적 풍경이었죠.

  • 지금 언론이 특정 인물에게 집중하는 현상을 과거와 동일시하는 시각은, 민주주의적 경쟁과 견제의 기능이 약화될 때 언론이 다시금 “왕중심주의”적 구조로 회귀한다는 우려를 담고 있습니다.

왕중심주의 vs 대동단결

  • 왕중심주의: 권력 집중과 이견 봉쇄가 ‘충성/반역’의 이분법으로 작동합니다. 기회는 권력자에게 집중되고, 사회적 다양성은 억압됩니다.

  • 대동단결: 겉으로는 “모두가 하나로 뭉친다”는 이상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내부 비판을 ‘총질’로 낙인찍어 봉쇄합니다. 이는 공정한 경쟁과 교차검증을 차단하는 효과를 낳습니다.

핵심 차이와 문제점

  • 왕중심주의는 권력 독점의 노골적 형태라면, 대동단결은 “민주주의적 합의”라는 외피를 두른 권력 집중입니다.

  • 두 경우 모두 공정한 기회비판적 견제를 훼손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본질과 충돌합니다.

  • 따라서 “대동단결”이 “왕중심주의”보다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민주주의적 가치의 핵심인 다원성·비판·견제가 사라진다는 점에서 구조적 위험은 유사합니다.

결국, 언론이 특정 권력에 줄을 서는 풍경은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해치는 신호입니다. 민주주의는 권력 집중을 막고, 다양한 목소리가 교차검증을 통해 공적 가치를 형성하는 과정이 핵심인데, 그것이 봉쇄된다면 왕중심주의든 대동단결이든 결과는 비슷하게 “기회와 공정의 훼손”으로 귀결됩니다.

 저는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왕중심주의는 권력 독점의 직접적 형태, 대동단결은 권력 독점의 은닉된 형태. 둘 다 민주주의적 기회 보장에서는 본질적으로 더 낫다고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