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모수' 까자! 중국 의심계정들일까?

설마 이번에도 외국 의심 계정들일까? 중국 요리가 최고다 하려고?
한국 와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폭로글에서 시작됐지만 외국계정에서 증폭시켰을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그 나라는 김치부터해서 흑백요리사 등에 강한 불만을 표출해왔기 때문이다. 어쨋든, 국내산이라고 생각해보고 글을 써 보자.

백종원이 논란에 휩싸이면 사람들이 몰려간다. 안성재와 모수가 도마에 오르면 또 몰려간다. 유명인이 실수 하나 하면 인터넷은 순식간에 법정이 된다. "사과해라." "실망이다." "원래 저럴 줄 알았다." "미슐랭이라고 다르냐?"

그런데 문득 궁금해진다. 그렇게 몰려가 욕하는 사람들은, 정말 그렇게 도덕적인 사람들일까.

첫째, 선행은 비싸고 욕은 공짜다.

착하게 사는 건 힘들다. 돈을 기부하거나 시간을 내야 하고, 몸을 움직여 봉사해야 하고, 어려운 사람을 직접 만나 감정노동까지 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아무도 안 알아준다. 투입 대비 산출이 최악인 게 선행이다.

반면 인터넷에서 누군가를 욕하는 건 어떤가. 돈도 안 들고, 몸을 움직일 필요도 없고, 몇 초면 끝난다. 그런데 얻는 건 똑같다. "나는 저런 인간은 아니야"라는 뿌듯함, "우리는 정의를 실현 중"이라는 소속감, 남을 밟을 때 나오는 쾌감까지. 기부는 만 원을 넣어야 만 원어치 뿌듯한데, 욕은 0원으로 무한대다.

심리학에는 이걸 가리키는 말이 있다. 도덕적 과시(moral grandstanding). 도덕적 발언을 진짜 옳은 걸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고 하는 것.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다. 착한 일을 해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나쁜 사람을 욕해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훨씬 싸고 쉽다.

사건을 비판하다가, 사람을 비난하고, 과거를 뒤지고, 가족을 건드리고, 외모를 비웃고, 사업 전체를 공격한다. 어느 순간부터 목적이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으로 바뀐다.
그 과정에서 실제로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거나 극단적 선택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둘째, 한국의 범죄자는 일본의 217배이다.

2017년 로열홀러웨이대의 태핀과 매케이 연구가 재밌다. 사람들은 지능·성실함·운전 실력 등 온갖 항목에서 자기가 평균 이상이라 믿는데, 그중에서도 도덕성에서의 자기 과대평가가 가장 비합리적으로 강했다. 얼마나 심하냐면, 교도소에 수감된 범죄자조차 자기가 평범한 준법 시민보다 더 도덕적이라고 답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 도덕성만은 근거 없이 부풀린다는 것이다.

다들 자기는 착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착한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는 숫자가 말해준다.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2010년 인구 10만 명당 고소당한 사람은 한국이 1,068.7명, 일본이 7.3명으로 146배 차이가 났다. 이 격차는 좁혀지기는커녕 더 벌어져, 2018년엔 한국 1,172.5명 대 일본 5.4명으로 217배까지 뛰었다. 두 나라 다 대륙법 체계로 제도가 비슷한데도 이렇다.

셋째, 한 번의 실수가 모든 것을 지운다.

이 사회엔 이상한 계산법이 있다. 좋은 일 백 번과 나쁜 일 한 번이 있으면, 그 한 번이 앞의 백 번을 전부 거짓으로 만든다.

안성재는 국내 유일의 미슐랭 3스타를 받았던 셰프다. 방송으로 요리에 대한 진심을 보여줬고 재개장하자마자 다시 2스타를 받았다. 그 모든 실력과 시간은, 와인 한 병이 바뀐 하루 앞에서 "원래 그럴 줄 알았다"로 정리된다. 십 년의 업적이 하루의 실수에 인질로 잡히는 것이다.

인간은 나쁜 정보를 좋은 정보보다 훨씬 무겁게 받아들인다. 칭찬 열 마디보다 욕 한 마디가 오래 남는다. 한 번 무너진 사람은 그동안 쌓은 선행과 업적이 통째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평생 정직했던 사람도 단 한 번의 실수로 "위선자"가 되고, 그 순간 인생 전체가 재심에 부쳐진다. 그러니 사람들은 남을 도우려 애쓰기보다 걸리지 않으려 몸을 사린다. 선행은 리스크가 되고 무난함이 미덕이 된다. 한 번의 실수로 전부를 잃는 사회에서 누가 선뜻 나서서 좋은 일을 하겠는가.

넷째,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성경의 유명한 말이다. 이 말의 핵심은 죄를 비판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남의 죄를 심판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에선 정반대가 된다. 자기 죄는 생각하지 않고 오직 남의 죄만 확대한다. 그리고 돌을 든다.
댓글이라는 돌, 좋아요라는 돌, 공유라는 돌, 캡처라는 돌을. 한 사람이 던지면 별일 아니지만, 수만 명이 동시에 던지면 그건 비판이 아니라 집단적 폭력이 된다.

개인적으로 욕하면 모욕죄이지만 집단적 언어폭력은 죄가 아닌가?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2010년 인구 10만 명당 고소당한 사람은 한국이 1,068.7명, 일본이 7.3명으로 146배 차이가 났다. 이 격차는 좁혀지기는커녕 더 벌어져, 2018년엔 한국 1,172.5명 대 일본 5.4명으로 217배까지 뛰었다. 이건 거의 뭐 합의금에 눈이 먼 정의의 좀비들 아닌가?

나보다 잘 되면 끌어내려라

유명하고 업적이 많은 사람을 비난할수록 자기는 그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인가?

샤덴프로이데 — 평소 우러러보던 대상일수록 몰락할 때 쾌감이 커진다. 미슐랭 3스타, 방송 스타처럼 높이 있던 사람이 무너질 때 사람들이 유독 신나서 몰려드는 이유다.

키 큰 양귀비 증후군 — 유독 크게 자란 꽃의 목을 쳐내듯, 두드러지게 성공한 사람을 집단이 끌어내리려 한다. "미슐랭이라고 다르냐"는 반응의 밑바닥에 깔린 심리다.

하향 사회 비교 — 잘나가던 사람을 끌어내리면 상대적으로 내 위치가 올라간 듯한 감각을 얻는다. 성공한 유명인을 깎아내릴수록 내가 도덕적으로 우월해지는 착각과 맞물린다.


한국정치인 비난 외국계정들 중국으로 보는 이유
전남광주 시승격 '악플' 3천 개 분석 결과
중국의 한국 분열공작! 일부러 댓글 안 막나?

출처 : 구글과 네이버에 '하예라 미스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