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앞에서 벌어진 인도의 '소신공양(분신)' 사건
기원전 19년경,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그리스 사모스섬에 머물고 있을 때, 인도 남부의 판디아 왕국에서 보낸 공식 외교 사절단이 황제를 알현하러 왔습니다. 이 사절단에는 로마인들이 '자르마노케가스(Zarmanochegas)'라고 부른 인도의 종교 수행자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1, 2, 3]
  • 충격적인 거사: 이 수행자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함께 아테네로 이동한 뒤, 황제와 로마 귀족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스스로 불속으로 걸어 들어가 목숨을 끊는 소신공양(분신)을 감행했습니다. [1, 2, 3]
  • 황제의 기억: 그는 죽기 직전까지 매우 평온하고 행복한 표정을 지어 옥타비아누스와 로마인들에게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안겼습니다. 그의 무덤 비문에는 수행자를 뜻하는 '슈라마나(Shramana, 사문)'라는 단어가 새겨졌는데, 이는 불교나 자이나교의 승려를 뜻하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1, 2]

2. 당시 로마인들의 인식: "신비로운 인도의 철학자들"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로마인들은 불교(Buddhism)와 힌두교, 자이나교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1]
  • 그들은 인도에서 온 수행자들을 묶어 '기모노소피스트(Gymnosophist, 벌거벗은 지혜자)'라고 불렀습니다.
  • 비록 "이것이 불교다"라는 종교적 개념으로 이해하진 못했으나, 옥타비아누스를 비롯한 로마의 지식인들은 *"동쪽 끝 인도에는 물질을 멀리하고 고행을 통하여 마음의 평정을 얻는 위대한 철학자들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뚜렷하게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1]

3. 부처의 '이름'이 유럽에 상륙한 시기
'부처(Buddha)'라는 구체적인 이름과 불교의 탄생 설화가 서양의 역사 기록에 공식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아우구스투스 사후인 서기 2세기~4세기경입니다. [1, 2]
  •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같은 신학자들이 기록을 남기면서 유럽 수뇌부도 부처의 존재를 학술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인 2022년에는 로마 제국령이었던 이집트 항구 유적에서 서기 2세기경에 만들어진 대리석 불상이 발견되어, 아우구스투스 황제 사후 로마 제국 내에 불교를 믿는 인도인 공동체가 실제로 활동했음이 고고학적으로 증명되기도 했습니다. [1, 2, 3]
결론적으로 옥타비아누스는 '부처'라는 이름은 몰랐을지언정,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며 불속으로 뛰어들던 인도 승려(사문)의 서슬 퍼런 낭만과 여유만큼은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목격담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1, 2]


불교가 정확히는 몰라도 불교 수행의 극 고난이도를 직접 눈으로 체험한

로마제국 창업자 옥타비우스 아우구스투스 ..

지금 9월인데 지난번 8월 (august)이 저 황제 태어난 날로 8월을 자기 이름 박은거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