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은 말이여 .... 그냥 인간들의 개돼지 근성 개떼 근성에 실망이다 ... 왜냐고 ? 이때 까지 용혜인 한테 찍소리 못하다가 . .. 찍소리 못했으니 용혜인이 지금 까지 온거지 ... 뭔가 . 용혜인이 . 공격 당한다 . 싶으니까 . 개떼처럼 달라 들어 물고 뜯고 난리 지랄 떠는게 . 이게 바로 ..... 집단 폭력이고 ... 이지메고 학교 폭력 같은 왕따 따돌림이여 .. 이런. 추악한 인간의 근성이 보이는게 .... 씁쓸하다 .. 웅크리고 있던 불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서 ..... 돌팔매 던지는 . 일종의 마녀 사냥 같은 군중 심리 . 이게 문제인거여 ..... 왜 이때까지 용혜인 놔 뒀냐 ? 그렇게 문제라면 .....형이 용혜인이 옳다 그르다를 판단 할려는 게 아니여 ..... 한 인간이 . 궁지에 몰리니 다른 인간들이 일제히 기어 나와서 돌을 던지는 이 상황이 개탄스러울 뿐이여 . 십새들아 .
내가 지금 특정 정치인(용혜인)의 과오가 옳다 그르다를 따지거나, 그녀를 맹목적으로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진정으로 역겨움을 느끼고 개탄하는 지점은, 한 인간이 벼랑 끝에 몰렸을 때 일제히 기어 나와 돌팔매질을 해대는 대중의 얄팍한 '군중심리(Mob mentality)'와 비겁한 '야수성' 그 자체다.
그토록 그녀의 행보가 큰 문제였다면, 대체 지금까지는 왜 쥐 죽은 듯 침묵했는가? 독일의 정치학자 노엘 노이만이 주창한 '침묵의 나선(Spiral of Silence)' 이론처럼, 그 권력과 기세가 시퍼렇게 살아있을 때는 주류의 눈치만 보며 웅크리고 있던 기회주의자들이, 타깃이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기 시작하자 그제야 정의로운 심판관이라도 된 양 등 뒤에서 칼을 꽂고 있다. 이것은 합리적 비판이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된 비겁함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지라르(René Girard)가 말한 '희생양 메커니즘(Scapegoat mechanism)'이 지금 이 상황에서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다. 대중은 그저 자신들의 내재된 불만과 공격성을 합법적으로 배설할 '안전한 제물'이 필요했을 뿐이다. 누군가 먼저 돌을 던져 "이제 저자는 마음껏 짓밟아도 안전하다"는 암묵적 신호가 떨어지자, 무리의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는 '몰개성화(Deindividuation)'된 군중이 이성의 끈을 놓고 집단 린치(Lynch)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학폭 가해자들이 약자를 구석에 몰아넣고 낄낄대는 이지메(따돌림)와 무엇이 다른가? 당신들은 스스로를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심판자라고 착각하겠지만, 실상은 다수의 익명성이라는 장막 뒤에 숨어 타인의 몰락을 즐기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타인의 불행에서 느끼는 쾌락)'에 잔뜩 취해 있을 뿐이다. 불만이 있었다면 그녀가 기세를 올릴 때 정면에서 당당하게 비판했어야 마땅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용혜인 개인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강자 앞에서는 비굴하게 입을 다물고 있다가, 한 인간이 틈을 보이고 궁지에 몰리자마자 개떼처럼 달려들어 피의 축제를 벌이는 이 천박하고 미개한 인간 군상들의 민낯이 너무나도 씁쓸할 뿐이다.
알량한 정의의 사도 행세는 이제 그만 집어치워라. 그저 안전한 곳에 숨어 다구리를 치며 저열한 우월감을 느끼는 군중의 폭력성을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지 마라. 당신들의 그 알량하고 비겁한 개떼 근성이 역겨울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