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가 막 시작되던 무렵 어느 날의 일이다. 무심코 카톡을 열었다가 조카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 순간 경악했다. 윤석열의 사진이었다.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상태 메시지를 열어보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님, 우리 2030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라고 쓰여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박정희와 전두환의 사진까지 줄줄이 올려놓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극우 이대남'은 남의 집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우리 가족은 모두 광주 출신이기 때문에 팔순의 엄마부터 우리 4남매까지 그동안 모두 진보적 견해를 갖고 살아왔다. 그런데 우리 집안에 극우라니, 박정희와 전두환 그리고 윤석열을 찬양하는 가족이 생기다니… 믿을 수 없었다.
차마 조카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 아이의 엄마인 내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한숨을 크게 내쉰 동생은 그동안 아들을 야단도 치고 설득도 해봤지만 별로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 노릇을 어째야 하나.
조카의 SNS 프로필 사진에서 받은 충격
고민 끝에 조카에게 편지를 썼다. 전화로 얘기하다가 자칫 조카와 대화가 통하지 않아 서로 감정이 상할 수도 있어서 차분하게 내 생각을 글로 정리해서 전달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지금의 극우 청년들이 대부분 갖고 있는 중국인에 대한 혐오 정서를 비롯해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적 시선, 소위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무비판적 신봉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근거 없는 악의적 소문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등이 왜 잘못된 것인지에 관해 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터넷에 떠도는 충격적인 가짜뉴스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반드시 공신력 있는 언론 매체들을 통해 '팩트 체크'를 해보라고 권했다. 그렇게 A4 2장 분량의 편지를 써서 동생 편에 조카에게 보냈지만 조카에게선 편지를 받았는지, 읽었는지 가타부타 답이 없었다. 나는 일단 조카를 자극하지 않고 내버려둔 채 지금의 청년 극우화 문제를 다룬 책들을 읽으며 그 실태와 원인, 대처 방법 등에 대해 나름대로 공부했다.
'극우 이대남' 현상을 공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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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카의 스마트폰 뒷면에 붙어 있던 사진 한 장. |
| ⓒ AI 생성이미지 |
그로부터 한 달여 정도 흘러 설날이 되었을 때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였다. 이날 나는 조카를 보고 또 한 번 기절할 뻔했다. 아이의 스마트폰 뒷면에 사진 한 장이 붙어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윤석열이었다!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조카와 단둘이 얘기할 시간만 노렸다. 무엇보다 일단 조카의 환심(?)을 사야 했다. 마침 조카가 그동안 편의점 알바해서 번 돈으로 한 달 후 체코 여행을 간다기에 프라하에서 드레스덴을 당일로 다녀오는 투어 패키지를 예매해 줬다.
그렇게 말을 꺼낼 기회만 엿보다가 다른 두 조카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마트에 간다기에 문제의 이대남 조카에게 '너도 바람이나 쐬러 같이 나가자'며 데리고 나갔다. 그리곤 두 조카가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는 동안 그 조카에게 물었다.
"이모가 보낸 편지 읽었니?"
"네, 읽었어요."
"그래, 네 생각은 어떠니?"
조카는 내 눈을 피하며 대답했다.
"가족끼리 정치 얘기는 하지 말죠. 각자 생각이 다른 데로 살면 되니까요."
조카는 단칼에 철벽을 칠 기세였다. 이거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말을 붙였다.
"너… 혹시 윤어게인 집회도 나가니?"
그런데, 조카가 머뭇거리며 즉답을 회피했다. 침묵은 곧 '그렇다'는 뜻이다. 아찔했다. 이대로 두면 정말 큰일 나겠다 싶어서 본격적으로 말을 꺼냈다.
"너, 윤석열을 왜 좋아하는 거니?"
"제가 윤석열을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그럼, 왜 윤어게인을 외치는 건데?"
"지금 우리나라에 중국 간첩들이 너무 많이 들어와 있어요. 이것들을 정리할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밖에 없어요."
그 뒤에 이어진, 중국과 이재명 대통령과 진보 진영에 대한 혐오에 가득 찬 조카의 말을 여기에 다 옮겨 적고 싶진 않다. 난 논리적으로 차분하게 대화하고 싶었다. 하지만 조카는 극우들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근거 없는 가짜뉴스를 목에 핏대를 세우며 토해냈다. 행인들이 모두 힐끔힐끔 조카를 쳐다보았다. 시선을 느낀 조카가 겨우 흥분을 가라앉혔을 때 결론적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내가 너한테 좌파가 되라고 하는 거 아냐. 중도여도 좋으니 균형 잡힌 시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곤 비교적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정치 시사 문제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 몇 개를 권했다. 그러자 뜻밖에도 조카가 채널명을 되물어보며 관심을 보였다. 됐다, 이 정도면 개선의 여지가 보인다 싶은 희망이 생겼다. 다음 날, 제 집에 돌아간 조카에게 유튜브 채널 몇 개의 링크를 보냈다. 그리고 덧붙였다.
"네가 이 영상들을 보는 동안 진보 진영에서 하는 주장이 불편할 수도 있을 거야. 그래도 참고 열린 마음으로 들어보기 바란다."
한참 후 조카는 장난 같은 답변을 보내왔다.
"알겠습니당."
조카와의 대화에서 발견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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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1월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 극우 시위에서 한 젊은 남성이 '중국인 투표권 박탈하라'는 피켓을 들고 가고 있다. |
| ⓒ 김성욱 |
조카와 다시 이 문제로 얘기를 나눈 것은, 지난 6월 지방선거 이후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올림픽공원 앞에 진을 치고 한창 시위하고 있을 때였다. 어떤 이유로 주말에 가족이 다시 모였다. 조카도 제 엄마와 함께 왔다. 다행히 올림픽공원 앞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일단 안심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아이의 스마트폰 뒷면에는 윤석열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당장 그 사진을 빼앗아서 찢어버리고 싶었다. 가슴 속에서 천불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애써 참고 무심한 투로 조카에게 물었다.
"너, 그 사진은 언제 뗄레?"
"탄핵이 취소되면요."
더 이상 이대로 두고 보면 안 되겠다 싶어서 안방에 들어가 조카와 작심하고 장시간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의외로 조카는 대화를 거부하지도 않았고 흥분하지도 않은 채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넌 윤석열의 계엄이 정당했다고 생각하니?"
그러자 조카는 계엄을 옹호하는 극우들이 늘어놓는 그 사유(민주당의 탄핵 남발, 검사 특활비 삭감 등)를 또 들먹였다. 그 말에 하나하나 논박했다. 민주당이 왜 검사 특활비를 삭감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윤석열 정부의 국무위원들을 탄핵했는지 등에 관해 차분하게 말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조카는 나의 논박에 재반박을 못 했다. 그러니까 조카는 깊이 들어가면 그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토대를 갖추지 못한 채 그저 인터넷에 떠도는 주장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아마 대부분의 극우들이 그럴 것이다).
조카는 말문이 막히자, 우리나라에 중국 간첩이 너무 많다, 그놈들이 우리나라를 공산화하려 한다는 극우 특유의 이상한 말을 또 늘어놓았다.
"너, 중국한테 먹힐 정도로 우리나라 자본주의 시스템이 그렇게 허약하다고 생각하니?"
조카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얘기는 흘러 흘러 박정희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럼, 이모는 박정희 정권이 다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건 아냐. 그 시절에 산업화를 이룬 공은 있지."
사실 엄밀히 따지면 산업화를 이룬 주역은 박정희가 아니라 노동자들이었다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조카의 주장을 무조건 찍어누르기만 하면 대화가 안 될 것 같아서 적당히 인정할 것은 인정해 가면서 대화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민주화를 부르짖었던 사람들이 너무 많이 피를 흘리고 죽었어."
그 외에도 조카와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눴는데 모두 다 쓰기엔 이 지면으로 모자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런 말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요즘 너희 세대가 공정 이슈에 굉장히 민감하다는 거 알아. 너희들이 치열하게 경쟁해 왔는데, 왜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을 약자라는 이유로 배려해 주느냐고 불만을 갖고 있는 것도 잘 알아. 그런데 우리 세대는 안 그랬어. 우리 사회의 약자, 소수자들을 우리가 좀 더 세금을 내서라도 도와주고 배려하는 것을 당연하게 알았지."
그러자 조카가 이렇게 대답했다.
"이모 세대가 청년이었을 때와 지금의 청년 세대가 처한 사회적인 조건이나 분위기가 많이 다르니까요."
"그래 맞아. 그래서 이모는 슬프다. 너희 일부 세대가 그런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연민을 덜 느낀다는 사실이... "
내 말에 조카는 왠지 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대화를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물었다.
"오늘 이모가 한 말 이해하겠니?"
그러자 조카가 선선하게 대답했다.
"네, 이해해요."
"그래, 나도 너희 세대들을 더 이해하도록 앞으로도 노력하마. 그리고 이모하고 약속 하나만 하자. 앞으로는 부디 조중동 뉴스는 그만 보고 가능한 YTN 뉴스를 봐라. MBC 뉴스를 보라고는 안 할게."
대화는 그렇게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조카에게선 논리적으로 차분히 대화하면 얼마든지 생각을 바꿀 수 있는 희망의 여지가 보였다.
그리고 지난 7월 말, 다시 가족 모임에서 만났을 때 조카의 스마트폰 뒷면에 더 이상 윤석열의 사진이 보이지 않았다.
웬만하면 3줄 요약 할려고 했는데 너무 웃겨서 통으로 읽어 보라고 전부 가져왔다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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