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학교때 아빠가 도깨비시장서 양갈보한테 사오신
베이깐을 김치랑 달달볶아서 먹어보았다
서양음식이라곤 마가링에 밥비벼먹는게 다인 때라서
문화 번영의 맛이 참으로 감미로왔다
그 후에 부산에서 적산으로 불하받았지만
기술자나 원료가 없어서 그냥 비워둔 공장으로
일본사람 기술자가 와서 고무를 다시 만들기
시작하며 살림이 피기시작하였다
처음 만든거슨 수동빰뿌 피스톤에 끼우는 고무링구.
수세변기에 들어가는 방수링구... 그 외 수독꼭지 고무파킹구
박정희 대통령의 일한수교가 참으로 위대한 조치다.
첨가본 양식집이 스핑쿠쓰인데
그집은 요리가 스핑쿠쓰의 입에서 나왔다.
형은 동까쓰를 주로먹고 나는 오무라이스만 주구줄창 먹었다.
동까쓰 시키면 스푸도 주던데
나는 뱃속에 기생충이 기름진 고기는 싫어해서
나에게 달콤 시큼한 캇챠프맛나는 오무라이스를 먹으라고 요술한 것같다.
그 시기의 나는 고기를 절대 먹지아니하얏다.
내가 고기에 환장하게 된 거슨 나이 서른이 다 돼아서 내가 번돈으로
일년에 서너차례 강박에 걸린 듯이 약국서 바카스와 삐콤을 먹게된 후부터이다.
감자기 고기입이 터지니 매일마다 켄터키후랑크소세이지로 배를 채우게 되앗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