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신화를 의심하다: 역사, 인간의 선택, 그리고 문명의 취약성

 

존 그레이는 현대 문명이 과거보다 필연적으로 더 합리적이고 도덕적이며 진보한다고 보는 믿음을 비판한다. 그는 기술과 과학 지식은 어느 정도 누적될 수 있지만, 윤리와 정치의 발전은 쉽게 되돌아가며 전쟁과 혁명 이후에도 문명이 붕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화는 역사적 필연성과 인간의 행위 능력, 지리와 자원이 국제정치를 제약하는 방식, 그리고 인간이 의미를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신화와 서사의 양면성을 차례로 탐구한다. 결론적으로 그레이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구원이나 진보의 공식 대신, 인간의 실제 조건을 직시하고 제한된 범위 안에서 각자가 삶의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00:00 - 00:31 서론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 중국 문화대혁명 같은 거대한 재난을 겪고도 사람들은 인류가 과거의 성취와 동등하거나 그보다 더 뛰어난 문명 수준으로 계속 발전한다고 믿어왔다. 존 그레이는 이러한 믿음이 착각이자 근거 없는 속설이라고 지적하며, 현대 문명의 진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시작한다. 이어 진행자는 그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비관주의 철학자로 불린 쇼펜하우어에 비견되는 “현대 최고의 비관주의자”라고 소개하며, 그가 왜 비관주의자로 평가받는지 질문한다.

00:31 - 07:42 왜 그는 ‘현대의 가장 위대한 비관주의자’로 불리는가

그레이는 자신이 쇼펜하우어처럼 비관주의를 보편적인 형이상학적 세계관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쇼펜하우어는 플루트를 연주하고 작은 강아지를 키우는 등 개인적으로는 쾌활한 면모를 보였지만, 상속받은 소득 덕분에 그런 삶을 누릴 수 있었고 형이상학적인 이유에서 비관주의자가 되었다. 반면 그레이가 비관주의자로 불리는 이유는 현대 사회의 핵심 전제, 즉 현대가 과거의 어느 시대보다 더 문명화되고 합리적이며 계속해서 나아질 것이라는 진보 개념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그는 진보가 단순한 개선과 같지 않다고 강조한다. 마취를 이용한 치과 치료처럼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고통을 실제로 크게 줄였으며, 19세기 이전의 치통이 인간 고통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했다는 토머스 드 퀸시의 언급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술은 선한 목적과 악한 목적 모두에 사용될 수 있다. 기술과 과학 지식은 지난 수백 년 또는 수천 년 동안 축적되어 과거의 성취를 비교적 잘 보존해왔지만, 윤리와 정치의 발전은 몇 세대마다 쉽게 퇴보한다. 따라서 윤리적·정치적 진보가 누적적으로 지속된다는 생각은 신화에 가깝다.

그레이는 미래가 인류 전체나 특정 사회에 과거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으며, 오히려 현재의 성취조차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그는 20세기 대전쟁과 혁명 이후에도 사람들이 진보를 정상적인 현상으로 믿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공산주의 붕괴 직후인 1989~1990년 무렵에도 억눌린 영토·자원·종교·민족 갈등이 다시 표면화되어 “많은 괴물”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당시에는 지나치게 비관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말한 것은 역사가 예외적으로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처럼 반복된다는 뜻이었다.

그는 이러한 진보의 신화가 단지 틀린 믿음에 그치지 않고 해로운 정치적 프로젝트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기 1년 전부터 이를 비판했고, 전쟁 직전에는 이라크 국가의 분열과 대규모 유혈 사태를 예측했지만, ISIS의 등장과 야지디족 학살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이 충분히 비관적이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또한 『거짓된 여명: 세계 자본주의의 망상』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 약 100200개의 서평 가운데 우호적인 평가는 친구가 써준 단 하나뿐이었지만, 몇 년 뒤 러시아의 국가 부도와 미국의 대형 헤지펀드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의 붕괴가 발생했고, 이후 20072008년 금융위기까지 이어지면서 책의 경고가 재평가되었다고 회고한다.

07:42 - 11:58 인간의 역사에서 행위 능력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그레이는 역사가 동일한 방식으로 반복될지 묻는 가상의 상황, 즉 세계 대부분이 파괴되고 문명의 1%만 살아남아 그 문명이 3,000년 동안 이어지는 상황을 통해 인간의 선택과 역사적 제약을 설명한다. 그는 인간에게 행위 능력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범위는 제한적이라고 말한다. 모든 순간에 여러 선택지가 열려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특정한 역사적 시점에서는 이전에 발생한 사건과 축적된 조건 때문에 선택의 폭이 극도로 좁아질 수 있다.

진보주의자들은 의지만 충분하다면 사회가 언제든 점진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믿지만, 그레이는 사회와 문명이 점진적 발전에 필요한 조건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고 반박한다. 1914년 이전 유럽의 부르주아 문명은 제1차 세계대전과 그 후의 혼란 속에서 영국을 제외한 유럽 대부분에서 사실상 파괴되었다. 계급과 사회집단이 무너졌을 뿐 아니라, 진보가 무엇인지에 대한 공통된 합의도 사라졌다. 느리고 완만한 발전이 이루어지려면 사회의 여러 계층이 서로를 신뢰하고 발전의 방향에 대해 일정한 공통점을 공유해야 하지만, 전간기 유럽에는 그러한 기반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이 상황을 이해한 인물로 아서 쾨슬러를 언급한다. 쾨슬러는 1920년대 유럽이 민족주의자, 나치의 전조 세력,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등으로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점진적인 개혁은 불가능하고 혁명만이 사회를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스탈린주의 소련을 직접 여행하고 우크라이나 대기근을 목격한 뒤, 자신이 그 참상을 은폐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1940년경 공산주의를 버렸다. 스페인 내전에서 포로가 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다가 처형 5분 전에 사면된 경험까지 포함해, 쾨슬러는 자신의 신념이 현실과 충돌할 때 그것을 수정한 용감하지만 결코 완벽하지는 않은 사상가로 묘사된다.

그레이의 결론은 엄격한 역사적 결정론은 아니지만, 인간의 주체성이 과거의 결과에 의해 자주 제약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사람들에게 무력감을 주기 때문에 환영받지 못하지만, 행위 능력이 있다고 해서 언제나 원하는 역사적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시대에는 발전이 가능하지만, 역사상 많은 시기에는 이미 형성된 조건 때문에 발전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극도로 제한된다.

11:58 - 20:15 역사가 불가피하다면, 그 배후의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그레이는 역사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상황의 논리’와 ‘사건의 논리’를 제시한다. 이는 단일한 법칙이 아니라 여러 요인이 결합한 복잡한 구조이며, 그 상당 부분은 과거 인간이 내린 결정이나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결과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역사는 완전히 예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미 만들어진 조건들이 이후의 선택을 특정 방향으로 밀어붙인다.

그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 논리를 대표적인 사례로 든다. 후쿠야마는 냉전과 같은 근본적인 이념 대립이 끝나고 민주적 자본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보았지만, 실제로는 미국 내부에서조차 민주적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았다. 더 근본적인 오류는 이 주장이 ‘지리의 종말’까지 전제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국제분쟁의 핵심에는 여전히 자원과 자원 수송로의 통제가 있으며, 호르무즈 해협과 말라카 해협, 파나마 운하, 수에즈 운하 같은 좁은 통로가 세계 무역과 지정학을 좌우한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이 보유한 강력한 지정학적 무기로 설명된다. 그레이는 트럼프의 이란과의 전쟁 촉발이 역설적으로 이란 정권에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력을 확보할 명분과 위치를 제공했다고 본다. 이란은 이 해협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필요하다면 통행을 제한하거나 통행료를 달러가 아닌 위안화·암호화폐 등 다른 수단으로 요구할 수 있다. 육로 운송이나 국제협정으로 문제를 완화할 수는 있지만, 지리적 조건 자체를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지리학은 운명론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제약 조건이며, 역사적 갈등의 상당 부분은 지리와 자원에 의해 형성된다.

동시에 그레이는 인간의 선택이 실제로 역사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트럼프는 전쟁을 시작하지 않을 선택권이 있었고,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전쟁과 파괴, 이란의 해협 장악을 둘러싼 현재의 상황도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한 사람의 결정이 미래의 선택지를 차단하는 사례인 셈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나 윈스턴 처칠처럼 특정 인물이 역사적 흐름을 바꾼 사례도 언급하며,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정치에서 물러나는 것 역시 하나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그레이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특정한 정치적 구원론을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황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밝히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제한된 범위 안에서 정치적 프로젝트에 참여해 삶의 조건을 개선할 수도 있고, 수도원이나 종교적 삶, 아름다움, 심지어 쾌락에 헌신하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쾌락으로 가득한 영웅적 삶은 평범한 만족의 삶보다 더 어려울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5 - 26:29 인간의 진보에서 ‘선’은 무엇인가

진보에 대한 논의는 무엇을 선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정의와 분리될 수 없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지식의 축적을 선으로, 무지를 악으로 여길 수 있지만, 그레이는 최근 100년 동안 악을 단순한 오류나 잘못된 이해로 환원하는 관점이 피상적이라고 본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무관심한 악의’처럼 인간에게는 단순한 무지나 실수보다 더 나쁜 잔혹성과 타인을 해치려는 의지가 존재할 수 있다. 만성적으로 잔인한 사람이 단지 무엇인가를 이해하지 못해서 잔인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레이는 인간이 스스로 잘못임을 알면서도 행동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인간 본성이 자기 분열적이라는 기독교적 통찰과 닿아 있으며, 루시퍼나 악마의 개념도 인간이 규칙을 알면서도 그것을 깨뜨리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악마의 존재를 믿지는 않지만, 인간 내부의 지배욕과 파괴 의지를 설명하는 상징으로서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레이는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통해 인간의 가장 강력한 욕망에 관한 논의를 확장한다. 홉스는 인간에게 최고의 선인 ‘최고선’은 없을 수 있지만, 타인의 손에 의한 폭력적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최고악’은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레이는 자기 보존 욕구가 매우 강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모든 상황에서 인간의 가장 강력한 충동이라는 홉스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종교전쟁 시기의 많은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폭력적 죽음을 감수했으며, 단순히 살아남는 것보다 자신이 믿는 의미를 지키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인간이 의미를 추구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코끼리나 고양이도 다른 개체의 죽음을 인지할 수 있지만, 자신의 필멸성과 삶의 유한성을 지속적으로 개념화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제한된 시간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자신이 물려받았거나 선택했거나 직접 만든 의미가 위협받으면 타인을 죽이거나 자신이 죽는 것까지 감수할 수 있다. 이러한 성향은 폭정에 맞서는 고귀한 저항을 가능하게 하지만,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믿는다는 사실 때문에 끔찍한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신의 서사와 맞지 않는 타인의 서사를 제거하려는 유혹이 바로 신화와 정체성 정치의 위험이다.

26:29 - 32:14 신화와 이야기는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가

인간은 자신의 필멸성을 의식하기 때문에 이야기와 서사를 만들어내는 존재가 된다. 신화는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공동체를 결속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동시에 특정한 이야기나 진리를 절대화해 다른 관점을 억압하게 만들 수 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사회계약에 어느 정도의 신성함을 부여하는 일이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이 공유된 신성한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면 사회계약을 각자 편의에 따라 파기할 수 있고, 계약 자체가 유지되기 어려워진다.

이와 관련해 홉스는 왕권신수설이나 통치자의 지혜·덕성·철학적 능력에서 권위가 나온다는 생각을 모두 거부했다. 그에게 통치자의 정당성은 백성을 폭력적 죽음으로부터 보호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통치자가 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신민의 생명을 위협한다면 권위는 약화되며, 영국 내전 당시처럼 통치자가 실제로 살해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법적 계약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공동체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공유하고 어떤 집단을 이루는지에 대한 공통의 이야기나 개념을 가져야 한다.

그레이는 이러한 공동체를 국가 규모의 레비아탄에만 한정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지역적·지방적·제국적 레비아탄, 도시국가 형태의 레비아탄도 가능하며, 싱가포르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의 사례로 제시된다. 리콴유의 지도 아래 싱가포르는 다문화 사회라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구성원 모두가 보호받는다는 계약과 언약, 관습법에 대한 공통된 이해를 형성했다. 그러나 이런 질서가 어디서나 가능하다고 보기는 어렵고, 싱가포르나 드골 시대의 프랑스처럼 강력한 정치적 창건자가 필요할 수도 있다.

홉스의 논리는 현대의 징병 문제에도 적용된다. 국가가 시민을 생명을 위협하는 전쟁으로 강제 동원할 때, 특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에서 젊은 남성들이 전선으로 끌려가는 상황에서 개인이 저항하거나 국외로 탈출할 권리가 있는지가 문제가 된다. 홉스에게 양도할 수 없는 유일한 권리는 자기 생명을 보존할 권리이며, 주권자가 생명을 직접 위협하면 기존의 합의는 무효화될 수 있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이나 소련에서 수용소로 보내질 위기에 처한 반체제 작가라면 저항하거나 도망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심지어 군주 아래에서 굶주린 사람에게는 도둑질할 권리가 있다고 보았으며, 군주가 부유층의 말만 듣고 나머지 국민의 요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대화는 그레이가 진보의 필연성을 믿지 않지만 인간이 제한된 선택을 통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하며 끝난다. 진행자는 헤이 페스티벌에서의 대화에 감사를 표하고, 그레이는 모든 질문에 완벽히 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의미 있는 대화였다고 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