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 정청래

 

우리는 때때로 한 사람의 인생을 바라보며 묻는다.

“하나님께서는 왜 저 사람을 이 시대에 세우셨을까?”

 

정청래라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도 그러한 질문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나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시는 방법은 인간의 생각과 다르다고 믿는다. 우리가 보기에는 부족해 보이는 사람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완벽한 사람만을 부르지 않으셨다. 평범한 사람, 부족한 사람, 때로는 큰 실수를 했던 사람까지도 부르셔서 역사의 한가운데 세우셨다.

 

그렇다면 정청래 역시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사용하시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일 수 있지 않을까.

 

정청래의 정치적 주장이나 행동에 대해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것이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러한 차이가 자연스럽다. 그러나 신앙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한 정치인을 무조건적으로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삶과 능력과 자리를 어떻게 사용하실 수 있는가를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정치인도 사용하신다.

대통령도 사용하시고, 국회의원도 사용하시며, 이름 없는 평범한 시민도 사용하신다.

 

정청래가 가진 강한 언어와 추진력, 정치적 신념,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능력 역시 하나님께서 선한 방향으로 사용하신다면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

 

“하나님, 정청래를 사용하여 주십시오. 그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개인의 명예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것이 되게 하시고, 권력을 자신을 높이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고 사회의 약한 사람들을 돌아보는 도구로 사용하게 하소서.”

 

동시에 이것은 정청래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기도일 것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는 것은 권력을 얻는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더 큰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더 낮은 곳을 바라봐야 하고, 더 많은 권한을 가질수록 더 겸손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섬김을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이름보다 국민의 삶을 생각해야 한다. 자신의 정치적 성공보다 정의를 생각해야 하고, 자신의 편보다 공동체 전체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정청래가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은 정청래에게만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이야기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사람만 사용하시는 분이 아니다. 오늘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도 나를 사용하실 수 있다. 작은 친절 하나, 정직한 말 한마디, 누군가를 용서하는 마음 하나, 어려운 사람에게 내미는 손 하나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움직이실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쓰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정청래도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고, 나 역시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사람을 바라볼 때 너무 쉽게 판단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사용하실지는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정청래의 삶과 정치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 가지를 소망한다.

 

그가 가진 모든 능력이 국민을 위해 사용되고, 그의 말과 행동이 더욱 정의롭고 겸손한 방향으로 나아가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리에서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섬기는 사람이 되기를.

 

“하나님, 정청래를 사용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 모두를 각자의 자리에서 선한 일에 사용하여 주십시오.”

 

그것이 한 사람을 바라보는 가장 아름다운 기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