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창조한 예수

 

태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빛조차 자신의 이름을 몰랐고,

시간은 아직 흐르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며,

공간은 펼쳐질 꿈조차 갖지 못했다.

 

그때

말씀이 있었다.

 

말씀은 침묵을 가르고

어둠의 가장 깊은 곳에

첫 번째 빛을 놓았다.

 

그리고 별이 태어났다.

 

수십억 년의 고독을 건너

밤하늘에 하나씩 박힌 불꽃들—

그것들은 모두

그의 손에서 떨어진 작은 생각이었다.

 

은하는 그의 숨결을 따라 회전했고,

행성들은 보이지 않는 손가락을 따라

끝없는 궤도를 돌았다.

 

우주는

그가 한 번 내쉰 숨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거대한 창조주는

자신이 만든 우주보다 작은 곳으로 내려왔다.

 

별들의 왕이

한 사람의 심장 안으로.

 

천둥보다 강한 말씀이

어린아이의 울음으로 태어나고,

영원을 가진 자가

시간 속에서 늙어갔다.

 

하늘을 만든 손이

목수의 나무를 만졌고,

바다의 경계를 정한 손이

상처 입은 사람의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손에 못이 박혔다.

 

나는 그 장면 앞에서

우주보다 오래 침묵한다.

 

왜였을까.

 

왜 별을 만든 자가

십자가를 선택했을까.

 

왜 죽음을 명령할 수 있는 자가

죽음을 받아들였을까.

 

아마 사랑은

가장 높은 곳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가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골고다의 언덕 위에서

하늘은 잠시 어두워졌다.

 

태양은 얼굴을 가렸고,

땅은 떨었으며,

인간은 신을 죽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도 몰랐다.

 

그 순간

죽음이 처음으로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는 것을.

 

무덤은 그를 가두지 못했다.

 

돌문이 열리고

새벽이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그날 아침

부활한 것은 한 사람의 육체만이 아니었다.

 

절망 속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능성,

 

죄보다 용서가 클 수 있다는 가능성,

 

죽음보다 사랑이 오래갈 수 있다는 가능성—

 

그 모든 것이

무덤에서 함께 걸어 나왔다.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수없이 많은 별들이

말없이 빛난다.

 

나는 그 별들을 보며

한 가지 질문을 생각한다.

 

저 거대한 우주를 만든 이는

어째서 인간 하나를 사랑하기 위해

십자가까지 내려왔는가.

 

그리고 오래 생각한 끝에

나는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숙인다.

 

아마 우주의 크기는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주지만,

 

십자가의 크기는

그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태초에 빛이 있었다.

 

그리고 빛은

어둠 속으로 들어왔다.

 

우주를 창조한 예수여,

 

별보다 먼 곳에 계시면서

상처 입은 인간보다 가까이 계시는 이여,

 

우리가 언젠가

모든 별의 이름을 잊는다 해도,

 

우리의 이름을

당신이 기억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리라.

 

그리고 마지막 별이 꺼지는 날에도

 

사랑은

아직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