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吐)
1.
강민재가 처음 자신의 몸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린 건 스물아홉 살, 회사 워크숍에서였다.
회식 자리, 신입사원 소개 시간이었다. 마이크가 돌아가고, 한 사람씩 일어나 이름과 출신을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영업2팀 배정된 오윤서입니다. 광주에서 왔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민재는 명치 아래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위액이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감각. 그는 냅킨을 입에 대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동기들은 그가 술을 급하게 마셔서 그런 줄 알았다. 민재도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그날 밤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앉아, 그는 알았다. 자신이 마신 술의 양과 몸이 반응한 속도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그것은 취기가 아니라 훨씬 더 오래되고 훨씬 더 깊은 곳에서 올라온 무언가였다.
그 후로 그는 패턴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거래처 미팅에서 상대방이 전라도 사투리를 쓰면, 명함에 적힌 지사가 광주나 전주, 목포이면, 어김없이 속이 뒤집혔다. 심할 때는 실제로 토했고, 심하지 않을 때도 식은땀을 흘리며 화장실로 달려가 헛구역질을 했다. 그는 이 증상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할 수가 없었다. 말이 되는 순간, 그것은 이름을 갖게 될 것이고, 이름을 갖는 순간 그는 그 이름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2.
민재의 아버지 강태석은 경상북도 상주 출신으로, 젊은 시절 서울로 올라와 작은 철물 도매상을 운영했다. 사업이 크게 흥하지도, 완전히 망하지도 않는 그런 삶을 살았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열을 올리며 말하던 화제가 하나 있었다. 저녁 식탁에서, 뉴스를 보다가, 손님이 다녀간 후에, 아버지는 습관처럼 특정 지역 사람들에 대해 말하곤 했다. 그 말들은 언제나 구체적인 근거 없이, 마치 날씨 이야기를 하듯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그쪽 사람들은 원래 그래." "믿으면 안 돼." "겉으로는 웃어도 뒤로는 계산한다."
민재는 그 말들을 진리처럼 흡수하며 자랐다. 아이는 부모의 언어로 세상의 지도를 그린다. 민재에게 그 지도 위에는 안전한 땅과 위험한 땅이 있었고, 위험한 땅의 경계선은 아버지가 그어놓은 것이었다. 그는 그 경계선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그것은 공기처럼 당연했으니까.
대학에 가서, 사회에 나가서, 민재는 아버지 같은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시대가 바뀌었고, 그런 말을 대놓고 하는 사람은 촌스럽거나 위험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열린 사람이라고, 적어도 그렇게 티는 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몸은 그가 애써 감춘 것을 정직하게, 그리고 잔인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입은 침묵할 수 있어도 위장은 침묵하지 않았다.
## 3.
문제는 오윤서였다.
같은 팀은 아니었지만, 사내 프로젝트로 몇 달간 함께 일하게 되었다. 광주 출신, 전남대를 나와 서울로 올라온 지 오 년 차 대리. 일 처리가 꼼꼼하고, 회의에서 군더더기 없이 핵심만 짚는 사람이었다. 민재는 그녀와 마주칠 때마다 곤욕을 치렀다. 회의실에 들어가기 전 미리 소화제를 삼켰고, 그녀의 자리를 피해 먼 길로 돌아다녔고, 이메일로 대체할 수 있는 대화는 절대 대면으로 하지 않았다.
한번은 프로젝트 마감을 앞두고 야근을 하다가, 피할 수 없이 그녀와 단둘이 회의실에 남게 되었다. 자료를 정리하며 그녀가 무심코 물었다. "강민재 대리님, 혹시 저 불편하세요?" 그는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답했다. 그 대답을 하는 순간에도 속이 울렁거려서 그는 물컵을 들어 급하게 물을 삼켰다. 그녀는 더 캐묻지 않았지만, 그날 이후 민재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에는 옅은 거리가 생겼다. 사람은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밀려나고 있다는 걸 정확히 감지하는 법이다. 이유를 몰라도, 감각으로 안다.
프로젝트 발표를 앞둔 날, 두 사람이 함께 클라이언트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발표 삼십 분 전, 민재는 화장실에서 세 번째로 헛구역질을 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 밑은 퀭했다. 그는 그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이건 미쳤다, 라고 생각했다. 서른두 살 먹은 성인 남자가, 단지 어떤 사람의 출생지 때문에 이렇게 몸이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선명하게, 부끄럽게 다가왔다.
발표는 그럭저럭 끝났다. 그러나 그날 밤, 민재는 오랜만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4.
"아버지, 옛날에 그… 전라도 사람들 얘기, 그거 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전화 너머로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텔레비전 소리가 낮게 깔려 있었다.
"뭘 새삼스럽게."
"그냥 궁금해서요. 아버지가 직접 겪은 일이 있었어요? 누구한테 사기라도 당하셨어요?"
또 침묵. 이번엔 조금 더 길었다.
"…내가 겪은 건 아니고. 니 할아버지가 그랬지. 옛날에, 그 왜, 정치 때문에. 다들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냥 그런 줄 알았지."
"할아버지도 직접 겪으신 거예요?"
"몰라 그건. 다들 그러니까 그런 거지 뭐."
그 대답이 민재를 무너뜨렸다. 그가 삼십 년 넘게 몸속에 지니고 다닌 이 증오는, 근원을 따라 올라가 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할아버지도 직접 겪은 일이 아니었고,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그저 공기 중을 떠돌던 소문, 시대의 편견, 정치적 선동의 잔재가 3대에 걸쳐 아무런 검증 없이 유전병처럼 전해진 것이었다. 그는 근거 없는 증오를 위해 삼십 년간 위장을 혹사시켜 온 것이다.
전화를 끊고, 민재는 한참을 어두운 거실에 앉아 있었다.
## 5.
그다음 주, 민재는 회사 근처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진료실에서 그는 처음으로 이 증상을 소리 내어 말했다. 의사는 놀라지 않았다. "심인성 신체 증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정 자극에 대한 조건화된 반응이죠. 어릴 때 형성된 강한 정서적 각인이, 이후에 신체 증상으로 전환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의사는 그것을 병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저 "학습된 반응"이라고 했다. 학습된 것이라면, 다시 학습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민재는 매주 상담을 다니기 시작했다. 상담은 더뎠다. 어느 날은 나아진 것 같다가도, 어느 날은 지하철에서 우연히 들려온 사투리 한 마디에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는 이 과정이 스위치를 끄듯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배워갔다. 편견은 하루아침에 심어진 것이 아니었으므로, 하루아침에 뽑혀 나가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 복도에서 오윤서와 마주쳤다. 그녀는 다른 부서로 이동하게 되었다며, 짐을 나르고 있었다. 민재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다가가 상자를 하나 받아 들었다. 속이 울렁거리긴 했지만,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견딜 만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가 말했다. 진심이었다.
그녀는 잠깐 그를 바라보다가 옅게 웃었다. "대리님, 저 처음에 좀 서운했어요. 근데 요즘은 좀 다르신 것 같아서 다행이다 싶었어요."
민재는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사과의 말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는 아직 그 말을 온전히 꺼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상자를 그녀의 새 자리까지 옮겨다 주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그리고 가장 정직한 사과였다.
6.
그해 겨울, 민재는 혼자 광주행 기차표를 끊었다. 별다른 목적은 없었다. 그저 삼십 년 동안 자신의 몸이 거부해온 땅을 두 발로 직접 밟아보고 싶었다. 기차역에 내려 그는 낯선 거리를 걸었다. 시장에서 국밥을 한 그릇 시켜 먹었다. 주인 할머니가 사투리로 몇 마디를 건넸을 때, 그는 속이 조금 울렁거리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는 숟가락을 내려놓지 않았다. 국밥은 뜨거웠고, 짭짤했고, 평범하게 맛있었다.
그는 그 국밥집 창가에 앉아 오래도록 거리를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지나갔다. 웃고, 다투고, 흥정하고, 인사했다. 그저 사람들이었다. 삼십 년간 그의 몸이 그토록 거부해온 것이 결국 이토록 평범한 풍경이었다는 사실이, 그는 우습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가끔 속이 뒤틀렸고, 여전히 상담을 다녔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 울렁거림이 찾아올 때마다 그것에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검증되지 않은 채 대물림된 미움의 흔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더 이상 그것에 완전히 속지는 않는다는 뜻이었다.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민재는 창밖으로 지나가는 논밭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사람은 태어난 곳을 선택하지 못한다. 그러나 무엇을 미워할지는, 결국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