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68년 1월 21일 북괴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 300m 지점까지 침투해 총격전을 벌였던 김신조 사건이 발생함.
2. 그리고 그 이틀 후인 1월 23일 미군의 정보 수집함 푸에블로 함이 공해상에서 소련 정보를 감청 도중 북괴에 나포당하는 사건이 발생.
![푸에블로호 피랍 55년] <1>조작된 사과문 – RFA 자유아시아방송](https://cloudfront-us-east-1.images.arcpublishing.com/radiofreeasia/4DAOU7F2MCNQAOP5W4XFTOLRGU.jpg)
3. 푸에블로함은 당시 최첨단 정보 감청 장비와 일급기밀 정보를 싣고 있었지만 일반 민간 함으로 위장한 탓에 무장이나 호위 함대가 없었음.
4. 당시 북괴에 푸에블로함이 나포되자마자 미국은 곧바로 핵항모를 포함한 미 7함대를 동해안 쪽으로 집결시켜 무력도발을 시작함.
5. 미국은 당시 8년만에 해군/공군 예비역을 소집시키고, 북한에 핵무기를 사용하는 옵션을 포함하는 작전계획까지 수립함.
6. 그러나 소련의 견제와 이 사건 후 일주일 뒤인 1월 30일 베트남의 구정 대공습으로 미군의 엄청난 피해가 발생함.
7. 베트남전에 50만명 이상이 참전한 미국은 북한과 전쟁을 치룰 여력이 없었음.
8. 결국 미국은 한국을 배제한 채 판문점에서 북한과 직접 협상을 시작.
9. 김신조 사건때는 별반응 없던 미국이 이처럼 엄청난 무력공세와 함께 한국을 패싱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매우 분노함.

10. 박대통령은 2월 1일 경부고속도로 기공식 연설에서 미국에 대한 비판.
11. 미국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한국을 버리고 북한과 손을 잡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함.
12. 당시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으로 베트남에 가장 큰 병력을 파병한 상태였음.
13. 미국이 한국을 패싱하고 북한과 계속해서 직접 회담을 계속하자 박대통령은 베트남에서 국군의 철수 검토를 지시함.
14. 갑자기 한국이 국군 철수를 검토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린드 존슨 대통령은 바짝 쫄기 시작함.
15. 안그래도 구정 공세로 미국의 전력 피해가 막심한대다 가장 큰 동맹의 철수는 베트남전의 패배를 의미했기 때문.
16. 존슨 대통령은 곧바로 한국에 특사를 파견해서 최규하 외무장관과 협상 끝에 통상 원조 외에 1억달러의 특별 군사 원조를 제공함.
17. 또 협상을 통해 각국의 군사 현안에 대해 협의를 거치도록 하는 현재의 한미안보협의회를 만들어냄.

18. 미국은 결국 북한에게 사과문을 쓰고 억류된 미군 81명을 송환 받음.
박대통령은 무작정 미국에 순응하거나 굴종하지 않고, 외교적 역량과 자국의 지렛대를 활용해
국력이 미약하던 그 당시에도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할 수 있는 위치를 구축해 왔다.
이것이 외교다. 재명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