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는 "관우신"을 섬긴다는 무당에게 홀려서

전국에 관우신 사당을 만들고 제사 지내던 여자임.

일본 주장대로 흥선대원군이 그랬을 가능성이 100%임.

1895년 10월 8일 새벽 대원군이 훈련대를 이끌고 경복궁에 입궐 한 뒤

명성황후 살해됨.

일본은 이 사건을 '조선인(대원군과 훈련대)에 의한 쿠데타'라고 주장 했으나,

어떻게 된 일인지 조선인들 에게는 일본인 낭인들과 일본군이 그런거라고 알려짐.

그러나 당시 일본이 명성황후를 죽일 이유가 없음.

흥선대원군의 기록된 과거 행적들로 봤을때 일본에 놀아날 인물이 아니며,

일본이 조선에서 행한 정치적 헁위들로 봤을때 주요 인물을 암살하며

국가적 이익을 취하는 그런 정치를 하는 국가가 아님.

명성황후 사건 이전과 이후에 반일하는 주요 인물을 암살한적이 없는데도

뜬금없이 명성황후만 달랑 반일 해서 죽였다는게 말이 안됨.

무당에게 놀아난 기록이 있는걸 보면, 명성황후는 정치적으로 회유하기도 쉬웠을 인물임.

임오군란(1882년)이후 청나라는 조선에 위안스카이를 파견하여 조선의 총독 역할을 하게 했음.

사실상 그때부터 조선은 고종이 아니라 위안스카이가 통치한것임. 

청일전쟁 승리 이후에 시모노세키 조악(1895년 4월 17일)으로 

조선에 대한 모든 권력을 청나라로부터 양도받은 일본이

조약이 체결된지 6개월만에 명성황후를 죽일 이유가 없음.

명성황후와는 상관없이 이미 그때 조선은 실질적으로 일본거 였었음.

1895년 10월 8일 발생한 을미사변 직후,

주조선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가 일본 외무성에 보낸 전보(보고)에

기록된 조선인 사망자는 총 4명(부인 2명, 병졸 2명)임.

왕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들어왔기 때문에 왕실을 지키던 수비대가 공격을 못했을 가능성이 높음.

아니면 그간 흥선대원군의 행적으로 보아서, 미리 왕실 수비대와 결탁했을 가능성도 있고.

그리고 아무리 왕실이 힘이 없다고 해도 황후가 일본에게 살해 당했다고 한다면

왕과 왕족들, 양반들이 가만히 있었을리가 없음.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그런걸로 그들도 판단했기 때문에 큰 소요가 없었던것임.

그런데 뜬금없이 김구가 서울에서도 멀리 떨어진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에서 일본인을 죽이고서는

국모의 원수를 갚는다는 대의명분을 이유로 살해 했다고 갖다붙임.

백범일지에 그를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 육군 중위로 여겼다고 기록했는데

동네 서당밖에 안나온 20살짜리가 그걸 어떻게 파악하고 증거도 없이 사람을 죽이냐?

조현병 환자들이 하는 망상 살인이랑 똑같은거 아님?


결론 - 기록된 역사적 흐름과 그간 명성왕후와의 대립관계를 봤을때 흥선대원군이 죽인게 맞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