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찢어지게 가난한 정도는 아니지만? 전혀 유복하게 크지도 않았다 어렸을 때는 진짜 노무노무 가난해서 지금 돈으로 한달 1만 원도 안 했을 학습지도 배달시켜 보지 못했고 우유 한잔 고기 한점 먹는 것도 어려웠고(그래서 내 키가 160인지도?) 중고딩 때 과외는커녕 학원 하나 제대로 다니기도 어려웠고(우리 때도 학원은 대부분 다녔고 과외 받는 애들도 꽤 있었다) 나도 고딩 때 수학 과외 받고 싶었는데 집에 여유가 없어서 말도 꺼내보지 못했고 재수 아닌 재수할 때 고향의 재수학원 한달 다니고 집에다 학원비 달라고 말씀드리기 어려워서 생독학으로 재수시절을 보냈고( 결과물은 공부 안해도 원서만 넣으면 누구나 합격 가능한 지잡대)  26개월 군생활 마친 후 4학년 1학기까지 학교 고시원에 있었지만 니중에 사버법시험 합격한 당시 친했던 후배처럼 나도 학교 인근에 아파트 전세라도 얻어서 고시원 나가고 싶었지만 돈 때문에 학교 고시원에서 7학기 개기다가 고시공부도 망했고(복학하던 해 기준 사법시험 합격자 딱 두명 나왔던 지잡대라 그런지 학교 고시원 분위기가 속된 말로 개판 오분전이어서 니도 진짜 고시원 나가서 방 하나 얻고 싶었지만 집에다 말씀을 드릴 수 없어서 학교 고시원에서 인생 말아 먹었다? 물론 당시 고시원에 같이 있었던 친구 및 선후배들 사람은 다들 노무노무 좋았지 그중에 고시공부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게 문제였을 뿐) 신림동 고시촌 올라 가서도 당시 고시원 잠만 자는 방 최소 13만 원 이상 보통 20~30만 원 내외 할 때 진성고시원이라고 신림동 고시촌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있던 곳에 12층 10만 3층 7만 그랬는데 나는 3층 7만 방 하나 잡아서 34월 개기다가 5월이 되니 날이 더워지기 시작해서 당시 최저가 독서실 유림독서실이라고 있는데 거긴 5만 원 최저가 독서실 다니고(당시 독서실 보통 최소 9만 원부터 시작했다) 월식 11만 석달 째부터 10만 5천하던 최자기 월식당 이용하고 학원은 안 다니고 중고서점에서 강의 테잎 구해서 듣고 2004년 11월 낙향 후 지금까지 22년 동안 유료 독서실이나 스터디카페 한번도 안 가고 늘 무료 도서관(대학 및 공공)만 다니고 대학도서관에서도 학식 한번 안 사 먹고 셀프도시락 싸 들고 올라가서 끼니.해결하고 정 배고프면 도서관 쓰레기통에서 학생들이 먹다 남긴 빵 과자 음료수 등등 음쓰 주워 먹으며 허기 면하고 도서관에서 내려갈 때 학생들이 버린 배달음식 주워다 먹고 정부에서 지원금 나왔을 때 제외하곤 외식 배달음식 한번도 안 먹고 살았고 옷 신발 가방 등등은 학생들이.버린 거 주워서 재활용 하거나 나랑 체형이 비슷한 외삼촌한테 얻어다 입었고(내가 이.나이 먹도록 옷 사본 적은 딱 두번밖에 없다) 2005년 10월 명동 cgv에서 전도연 황정민 주연 너는 내 운명 서울 사는 누나가 보여준 뒤로 지금까지 cgv에서 영회 한번도 못 보고 도서관에서 무료로 틀어주던 영화로 대체했고 공무원 학원 한번도 다닌 적 없고 유료인강도 한번도 인 들었고(전한길 같은 강사가 무료로 올려주는 것만 좀 봤음) 도서관 오가면서 공병 폐지 박스 주우며 다녔고ing 결론은 어렸을 때 찢어지게 가난하게 컸지만 절대로 유복한 한경에서 여유있게 성장하지 않은 바 금수저는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