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자력갱생을 부르짖으며 편향된 서술들을 내세우곤 하다 보니 NL과 전교조를 비롯한 친북좌파들이 민족주의의 탈을 쓰고서 마치 국뽕러인 듯 한 애국자의 모습으로 비춰지곤 하고 무엇보다 거기에 선동된 사람들도 많듯이 흔히 중뽕/국뽕/일뽕이란 자아를 투영하는 수준의 진영논리에 입각하여 친중좌파 PD는 셰셰/중국이 분열되어야 한다/대일본제국의 은혜라는 단편적인 주장만 동어반복하곤 하는데 실제로 중화왕조가 번영할 때 한반도가 발전했던 것이 역사적 진실임.

 

대표적인 예시가 삼국의 발전과정과 통일신라인데 율령제를 실시하고 불교를 수용하여 왕권을 강화하면서 중앙집권을 이뤘다는 교과서적인 통설은 결국 중화의 역사상 문화적으로 가장 번영했던 당나라의 장안을 본따 건설된 헤이안쿄(교토)의 양식을 벤치마킹해 금성(경주) 유적을 복원하듯 마찬가지로 율령과 불교의 법전과 경전을 필사하는 사경(寫經)과 목판인쇄술이 발달하고 이것이 시·서·화의 융성으로 이어지니 그것이 집약된 당시(唐詩)를 바탕으로 와카와 향가도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을 뒷받침함.

 

마찬가지로 고려시대 초기의 발전양상이란 건 서방보다도 일찍이 산업혁명의 문턱까지 갔다던 송나라의 막대한 경제력에 영향을 받은 것이며 몽골제국의 침략에도 원나라의 부마국으로써 국체(國體)를 보전할 수 있었고 여말선초의 혼란은 원·명 교체기와 일치하는데다 조선초기 성종의 치세란 것도 홍치중흥(弘治中興)이라 하듯 명나라 전성기의 홍치제가 영명한 군주였기 때문인데 마찬가지로 "평양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에 개성상인을 국가발전의 예시로 드는 18세기 상공업의 발달과 박지원, 홍대용같은 실학자들이 언급되며 과학기술의 발전이란 식으로 서술하는 것은 결국 청나라 강희제-옹정제-건륭제로 이어지는 강건성세(康乾盛世)의 낙수효과에 불과함.

 

이후 중국이 서구열강에게 백년국치(百年國恥)를 겪게 되면서 조선도 자연스럽게 한일합방 이전까지 쇠퇴하게 되는데 카이로 회담을 비롯 중화민국-대만 국민당 장제스의 열렬한 지지를 바탕으로 한 광복 이후 이승만을 이은 박정희와 전두환이 주도한 60~80년대 대한민국의 산업화란 것은 물론 냉전시대 미국의 지원이 지대했지만 일본에서 스쿠알렌 밀수하고 홍콩에서 샥스핀 밀수하듯 이 마저도 중화(中華)의 영향권 안에서 이루어졌던 무역과 경제발전임을 부정할 수 없음에 조선인들은 역사를 이성이 아닌 감성의 영역으로 받아들이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