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비키가 성행한 이유는 당시 일본이 동북아시아 국가들 가운데서 세율이 가장 높았기 때문에 일본 백성들이 대부분 새로운 생명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경제력이 부족해서였다.[14] 당시 일본의 세율은 무려 생산량의 50~70%에 달했다. 옆나라 조선의 경우에는 덕치를 표방한다는 이유로 공식 세율이 10%를 넘는 경우가 드물었고, 명나라·청나라도 조선보다는 세율이 높았을지언정 은본위제를 바탕으로 경제가 개편되고 숨어있는 인구를 호적에 올리기 위해 일조편법이나 지정은제 등 기존의 세금제도를 폐지하는 방식을 통해 세금을 많이 감면해 주었다. 물론 학자들마다 의견 차이도 있고 정확한 최종 세율은 어느 정도였는지 아직 미지수지만, 그래도 일본과 비교하면 아주 많이 적은 편이었다는 것은 공통된 의견이다. 에도 시대의 쌀 생산량을 보면(참고) 1700년의 농지 면적은 282만 헥타르였다.
60%가 논이라고 한다면 논의 면적은 169만 2천 헥타르, 인구는 28,287,200명, 인구 1인당 경지면적은 0.598反(탄), 에도 시대 단위 면적당 쌀 생산량 190kg/反을 고려하면 1인당 0.758石(코쿠), 세금 50%를 공제하면 1인당 0.379石. 1인당 0.38石로 1石 기준 144kg로 보았을때 1인당 144kg×0.38=54.72kg다.
육류 보급이 확대되고 쌀을 제외한 밀과 감자, 옥수수 등의 기타 양식으로 인해 쌀을 적게 먹게 된 현대 한국인도 1인당 연간 60kg 이상을 소비하는데, '육식 금지령'까지 걸린 에도 시대의 일반 백성들은 이렇게 극도로 식량이 제한되는 삶을 영위하기 힘들었다.[15] 다만 일본은 가마쿠라 시대부터 교토 인근 지역에서 쌀 - 보리 - 메밀의 1년 3작을 시작하고 에도 시대 말까지 규슈와 토호쿠까지 1년 2작, 또는 1년 3작이 확대되기 때문에 식량까지 극도로 제한받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결국 쌀로 세금을 내야 했기에 쌀만 생산했다고 가정하면 이러한 잡곡도 쌀로 환전하여 세금을 내야하기에 의료, 종자 마련, 생필품 구비 등, 농민에게는 필수적인 소비까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물론 당시 농민들은 부업으로 공예품이나 직물을 생산해서 판매하기도 했기 때문에 모든 일본의 농민들이 극도의 기아 상태에 있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오류를 범할 수 있지만 '마비키'는 그 존재만으로도 일본의 세율이 지나칠 정도로 높아 일본 농민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던 것은 사실임을 명백히 증명한다.
물론 이 추정 60%의 논이 아닌 40%의 고구마나 감자 등을 재배했을 밭을 지닌 농부들도 있었겠지만, 세금의 기준이 쌀인 만큼 농민에 대한 조세부담은 공평했다.
그래서 한국에는 십시일반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지만, 에도 시대의 일본 백성들은 십시일반을 하면 모두 굶어죽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가정에 새 생명이 태어나면 경사스러운 일이겠지만, 당시 가난한 일본 백성들에게는 오히려 가족의 생사가 걸린 문제였다. 결국 마비키는 그런 암울한 빈곤 속에서 만들어진 전 가족이 굶어죽지 않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였던 것이다.
3. 에도 시대 때 얼마 만큼의 아이들이 '마비키'로 목숨을 잃었나?
관련 자료들마다 차이는 일부 있지만, 에도 시대 당대의 학자, 사토 노부히로(佐藤信淵)의 저서 「草木六部耕種法」이나 「경제 요록」에 의하면, 가즈사 국(上総国)[16]에는 약 10만의 농가가 있었지만, 거기서 살해당하는 아이의 수는 해마다 3~4만명에 달했으며, 또 무츠 국,[17] 데와 국[18]에서는 솎아냄(마비키) 하는 수가 해마다 7, 8만에 달했다고 한다.[19]
솎아냄(마비키)은 콘돔을 사용한 피임 같은 인구 조절의 수단이 별로 없었던 당시로서는 필요악이었다[20]는 것이다. 즉, 그 당시에는 '솎아냄(마비키)'을 별로 '잘못된 행동'이나 '영아 살해' 같은 흉악한 범죄가 아니라 그저 아이를 신에게 다시 돌려주는 일에 불과하며, 자기 아이로 하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했다.[21]
이렇게 많은 아이들을 마비키로 계속 살해한 결과 에도 시대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인구조사를 한 교호(亨保) 11년(1726년)부터 그 이후 막부 붕괴, 메이지 유신 때까지도 에도 시대 일본 열도의 인구는 거의 증가하지 않고, 대부분 2,700만명 선에서 항상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출처-https://m.blog.naver.com/ss920527/2223438197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