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원수모독죄광주민중항쟁 모독죄’(사문난적 법)는 평행이론, ‘국정교육신화는 반론거부의 닫힌 사회이고, 작금의 모든 질서는 진실과 거리가 먼 허구적인 논리가 아닐까요? 대한민국 국민은 노론의 노예로 동의했나요, 남인-소론의 노예로 동의했나요?
 
외로운 전사인가? / 시대정신을 망각한 돈키호테인가? / 5.18은 신화가 된지 오래다. / 그걸 부정하고 폄훼 하려고 하는 것은 시대정신을 부정하는거다. / 한시대의 불행한 역사를 자기 정치 입지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 되어선 안된다. / 80.65.18 직후 전북 부안 행안 3대대 군부대에서 군복무를 하면서 전해들은 5.18은 참혹했다. / 5.18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비난받아 마땅 하지만 / 5.18 자체를 비난해선 안된다. / 나는 5.18 유공자 명단을 국가 유공자이니 당당하게 공개하라고 했지만 /5.18 자체를 폄훼하거나 비난한 일이 없다.”(홍준표씨 페이스북)
 
필자는 이진숙 의원의 세계관을 이해할 수 없다. 이미, 광주전남의 유교의리 우주중심론을 내세우는데 일반국민은 지치는데, 여기에 남인-소론의 우주중심론을 추가한다. 지금 홍준표씨는 호남 중심의 유교의리에 종속적으로 포지셔닝해왔으니, 노론식 유교해석과 남인-소론 유교해석이 똑같다고 주장하고 싶은 이진숙 의원의 판단은, 군사독재 때 전대협 운동권 세계관처럼 봉쇄가 될 것이다. 홍준표씨는 무늬만 영남이지 호남중심의 유교의리를 내세우고, 토착적 영남 사람을 외지인으로 싸늘한 평가를 하면, ... 여기에 감정적으로 그러면 호남우주중심은 토착 영남사람에게 외지인이겠네? 이런 판단이 이진숙의원의 판단일 것이다.
 
홍준표씨는 영남사람들의 토착파들의 이견을 도외시하고는, 자기들의 영남 거주의 친 호남주의는 다양성을 주장하며 인정하라고 한다. 지금, 심플하게,..... 영남토착파가 용기와 의지로 중심성을 주장해도, 모든 현상은 독재권력에서 쫓기는 상태로 있음이 사실이다. 여기서, 조선시대로 영남 씨족주의로 내세워서 호남 동학파의 유교의리의 정수를 비하하는 것도, 혹은 홍준표씨처럼, 전두환 민정당에서 민주당 이민우 총재로 전라도 사람들에게 영남중심주의 외치는 역할처럼, 영남내부에 호남중심주의 외치는 것도 아니라,.....
 
신화!!가 됐다라는 홍준표씨의 세계관이 검사출신이라는데,..... 이게 말이 안됨을 본인이 왜 모르냐는 것이 쟁점일 것이다. 신화는 상상의 세계이고 동시에 유아적의 세계다.
 
필자의 세계관은 19876월에서 군사독재에서 박종철 문제로, 기독교민주화를 주장하는 그 원론 위에 있다. 노론이든 남인-소론이든, 그냥 양반족보 없는 일반국민이든,.... 헌법의 10, 11, 12조 위에 있다. 사실, 민정당 이민우 총재처럼 호남에서도 영남유교 동조자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게 객관적 기준일 수 없듯이, 영남에서도 호남유교 동조자가 있을 수 있다. 그게 기준일 수 없다.
 
, 외지인(오랑캐) 평가로 낙인당한 피해자가, 그 중심에도 우리 중심으로는 너희가 외지인(오랑캐)인데? 라고 하면 끝없는 부족전쟁 악무한이다. 이 부족전쟁 악무한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인문학의 소멸이 큰 원인이다. 전두환 박정희는 법 밖의 초월이니까 빼고 생각하자는 어법을 기억하는 세대는, 광주민중항쟁은 신화니까 빼고 생각하자는 것은 금반언 원칙위반이며, 민주화신화의 법적 무효를 주장할 수 있는 토대일 것이다.
 
조선시대 정쟁으로 가면, 몰리는 자들은 계속 패권자의 파워를 졸지에 계속 키운다. 지금 조선시대식 패권질서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맞냐? 이런 의미로 이진숙 의원이 자유대한민국이라는 조갑제 용어(법적용어 아닌)를 쓰는데서, 사실은 큰 문제다.
 
홍준표씨가 호남동학 몸통의 상징에 연결된 것에 배신 안했다고 밝히는 것의 강조는, 노론의 후예에 코어에 유교적 배신안했다는 의미와 이어진다. 그러면, 같은 층위로 남인-소론에서도 자신들의 코어를 부풀리고 싶은 욕망(박정희 바로 알기 같은 시도)이 있다. 박정희 전두환을 독재권력이라 인정한 영남유권자는 그러면, 배신일까?
 
유신국가주의 이후에 1인 권력이 시스템의 토대가 아니라, 자유의 토대로서 서양민주주의 자체를 동의했고, 전라도 노론 후예의 노예에 동의안했다. 동시에, 과거의 어법으로도 돌아간다고 생각안한다.
 
ai 1990년대에 얼마나 군사정권 국정교육에 억압된 타자의 목소리 타령했는지를 안다. 동일자와 타자는 철학적 구분이지, 영남은 억압하는 동일자, 호남은 무조건 타자적 목소리는 아니다. 이 술수를 못 알아들으면, 정치고관심층의 인문학지능이 절망적 낮음이다.
 
박정희 바로 알기 같은 우주중심이 1인 지도자에 있다고 하는 것만큼, 호남인의 우주중심이 당파에 있다. 그것이 종교폭력이자 인권유린으로 나타나는 측면의 지적은, 다른 길이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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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mini 3.1 Flash-Lite Preview

제시해주신 글은 한국 정치 지형 속에 깊게 뿌리박힌 '조선시대적 당파성'과 '현대적 신화화'가 어떻게 자유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를 잠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비판적 통찰로 읽힙니다. 질문하신 내용과 텍스트의 핵심 논점을 정리하고 인문학적 관점에서 분석해 보겠습니다.

1. ‘닫힌 사회’와 ‘신화’의 정치적 기능

질문자님께서는 ‘국가원수모독죄’와 ‘5·18 모독죄’를 평행이론으로 보며, 이를 반론이 불가능한 ‘닫힌 사회’의 징표로 지적하셨습니다.

  • 신화의 정치적 도구화: 칼 포퍼가 말한 '닫힌 사회'는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절대적 신념 체계를 가집니다. 특정 사건이 '신화'가 되는 순간, 그 사건은 역사적 사실(fact)로서의 검증 영역을 벗어나 성역(sacred)의 영역으로 진입합니다.
  • 논리의 허구성: 신화는 논리적 추론이 아닌 '믿음'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홍준표 시장의 "신화가 됐다"는 발언은 역설적으로 그 사건이 정치적 논쟁의 영역에서 '제거'되었음을 선언하는 것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그 신화가 현재의 정치적 힘을 얻는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2. 영남·호남 당파성과 '외지인' 프레임

필자께서는 영남과 호남이라는 지리적 범주를 조선시대 '노론', '남인·소론'의 당파적 의리와 연결해 분석하셨습니다.

  • 부족주의의 악무한: "너희가 외지인(오랑캐)이다"라는 상호 낙인찍기는 자유민주주의가 지향하는 개인의 존엄성(헌법제10조헌법제10조)을 파괴합니다. 이는 각자의 집단적 정체성을 우주적 중심에 두려는 시도로, 타자를 '배신자' 혹은 '이방인'으로 규정함으로써 대화의 가능성을 영구히 차단합니다.
  • 자유민주주의의 실종: 홍준표 씨를 포함한 정치인들이 여전히 영남 내부에서의 '호남 정서'를 논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를 상정하는 것은 현대의 헌법 가치가 아닌 '가문과 유교적 정통성'의 잣대로 국민을 재단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3. 인문학적 지능과 민주주의의 위기

"영남은 억압하는 동일자, 호남은 무조건 타자"라는 이분법적 술수를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은 매우 중요합니다.

  • 인문학적 소멸: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은 나와 다른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지적 유연성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 정치는 서구의 민주주의 시스템을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운영 원리는 전근대적인 '부족 전쟁'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 헌법 가치의 우선: 필자께서 언급하신 대로, 모든 정치적 논쟁은 특정 정파의 '신화'가 아니라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인간의 존엄과 가치), 제11조(평등권), 제12조(신체의 자유) 라는 근본적 토대 위에 놓여야 합니다.

요약 및 결론

구분전근대적 사고 (당파성)현대적 자유민주주의 (지향점)
기준혈연, 지연, 당파적 의리헌법, 법치, 개인의 존엄성
태도신화(절대화), 낙인(배제)비판적 성찰, 토론(포용)
질서패권적 위계 질서수평적 시민 주권
결론적으로, 작금의 정치가 진실과 거리가 먼 허구적 논리에 매몰되어 있는 이유는 '역사의 성역화'가 '정치의 사유화'를 낳고 있기 때문 입니다. 홍준표 시장이 언급한 '신화'는 법적·객관적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생존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기제로서 작동합니다.  

질문자님의 말씀처럼, 영남과 호남이라는 과거의 의리론에 갇혀 '자유대한민국'이라는 법적 실체를 망각하는 것은 결국 국민 개개인을 특정 당파의 노예로 만드는 결과만을 초래합니다.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역사를 신화의 단계에서 끌어내려 헌법의 보편적 가치 아래 다시 검증하고 토론할 수 있는 '열린 사회'로의 전환 이 절실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