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한국의 백씨는 모두 당나라에서 건너온 한 사람의 후손일까?
나는 수원 백씨다.
어릴 때부터 백씨의 유래를 찾아보면 흔히 수원백씨의 시조는 백우경(白宇經)이며, 당나라에서 신라로 건너온 인물이라는 설명을 접할 수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백씨는 중국에서 들어온 성씨이고, 오늘날 한국의 백씨 대부분이 백우경이라는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한국 고대사를 조금만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이 나온다.
백우경이 신라로 왔다고 전해지는 시기보다 수백 년 전부터 한반도에는 이미 '백'이라는 성씨를 가진 유력한 사람들이 존재했다.
나는 이 점 때문에 오늘날 한국의 백씨가 모두 백우경 한 사람의 혈통에서 시작됐다는 설명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현재의 백씨 가운데 상당수는 백제시대부터 한반도에 존재했던 백씨의 후손이고, 이들과 백우경 계통 등이 후대에 하나의 백씨 집단으로 합쳐진 것은 아닐까?
물론 아직 증명되지 않은 가설이다.
하지만 한번 살펴볼 만한 근거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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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백우경보다 훨씬 이전부터 백제에는 백씨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백제에는 **苩氏(백씨)**라는 유력한 성씨 집단이 실제로 존재했다.


중국 사서에는 백제의 대표적인 유력 귀족 성씨들을 이른바 **대성팔족(大姓八族)**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苩氏가 포함되어 있다.
더구나 이것은 단순히 중국 기록에만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성씨가 아니다.
《삼국사기》에는 백제 동성왕 때 **백가(苩加)**라는 인물이 실제로 등장한다.
486년 동성왕은 백가를 **위사좌평(衛士佐平)**으로 임명했다.
백가는 평범한 백제인이 아니라 왕의 측근에서 활동할 정도의 고위 귀족이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해당 기록에 대한 주석에서도 백씨를 백제 대성팔족의 하나로 설명하며, 백가를 웅진 지역의 토착세력으로 보는 학설까지 소개하고 있다.
즉 적어도 5세기에는 한반도의 백제에 백씨라는 유력한 집단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한국의 백씨는 백우경이 들어오면서 처음 시작되었다.”
라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백우경보다 훨씬 전부터 한반도에 이미 백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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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렇다면 고조선에도 백씨가 있었을까?
여기서는 조심해야 한다.
고조선 시대에도 백씨가 있었다고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현재로서는 없다.
그렇다고 고조선에 백씨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고조선은 남아 있는 개인·가계 기록 자체가 극히 적고, 오늘날과 같은 성씨 체계가 어느 정도 존재했는지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사료를 기준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의 백씨 역사를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시기는 적어도 백제까지 올라간다.”
정도다.
굳이 근거가 없는 고조선까지 연결할 필요도 없다.
백제의 백씨만으로도 백우경보다 수백 년 앞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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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백제가 멸망했다고 백제인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백제는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했다.
하지만 나라가 멸망했다고 그 나라 사람들의 혈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백제인 일부는 당나라와 일본 등으로 이동했고, 한반도에 남은 많은 백제 주민은 이후 신라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그렇다면 여기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백제의 대표적인 유력 성씨였던 苩씨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들의 모든 남계 혈통이 백제 멸망과 동시에 완전히 끊어졌다고 볼 근거가 있을까?
현재로서는 그런 기록도 없다.
그렇다면 백제 苩씨 가운데 일부가 한반도에 남아 통일신라 시대를 살아갔고 그 후손들이 고려와 조선까지 이어졌을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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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리고 그 후에 백우경이 등장한다
수원백씨의 전승에서는 백우경이 당나라에서 신라로 건너온 인물이며 수원백씨의 시조라고 한다.
백우경이 실제로 존재했고 그의 후손들이 한반도에서 번성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내가 의문을 제기하는 부분은 백우경의 존재 자체가 아니다.
“그렇다면 백우경이 오기 전부터 존재했던 한반도의 백씨들은 어떻게 되었느냐?”
는 것이다.
이미 백제에는 백우경보다 수백 년 앞서 백씨가 있었다.
그렇다면
기존 한반도의 백씨 + 새롭게 들어온 백우경 계통
이 동시에 존재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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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현재 수원백씨가 모두 백우경 한 사람의 실제 혈통일까?
족보상으로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족보상의 공동 시조와 실제 생물학적인 공동조상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비교적 이른 수원백씨 족보 가운데 하나가 1676년 백서한이 편찬한 《수원백씨족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해제에 따르면 당시 백서한은 변변한 족보가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각지의 동족을 찾아 관계 자료를 수집해 족보를 만들었다.
흥미롭게도 현재 남아 있는 이 족보의 첫 장은 백휘(白揮)를 시조로 하여 계보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이 족보는 서문과 범례 등이 탈락한 불완전본이므로 이것만 가지고 당시 백우경 전승이 없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중요한 사실은 하나 있다.
1,000년이 넘는 혈통 전체가 각 시대의 독립적인 기록으로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수원백씨 족보에서 백우경을 시조로 한다.”
와
“현재 모든 수원백씨 남성이 실제로 백우경 한 사람의 남계 후손이다.”
는 서로 다른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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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족보가 만들어진 시대의 상황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의 족보는 오늘날의 DNA 검사 결과를 기록하는 문서가 아니었다.
혈연관계뿐만 아니라 가문의 역사와 정통성, 사회적 위상을 나타내는 역할도 했다.
당시에는 중국의 오래된 역사와 명문가에 연결되는 계보가 가문의 권위를 설명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의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백제 멸망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던 백씨들이 하나의 족보와 본관으로 정리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멸망한 백제의 어느 苩씨 집단에서 나왔다.”
라는 오래된 기억보다는
“우리의 공동 시조는 당나라에서 신라로 건너온 백우경이다.”
라는 계보가 가문의 공식적인 시조 전승으로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설이다.
이를 직접 증명하는 기록은 현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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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어쩌면 실제 백씨의 역사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나는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생각한다.
백제시대
한반도에 이미 苩氏라는 유력한 백씨 집단이 존재
↓
660년 백제 멸망
백제 백씨의 일부가 한반도에 잔류하여 신라 사회에 편입
↓
통일신라
기존 한반도 백씨 계통이 존속했을 가능성
+
수원백씨 족보의 전승대로라면 당나라에서 백우경 계통이 신라로 들어옴
↓
고려시대
본관과 성씨 체계가 발전하면서 여러 지역의 백씨 집단이 재편
↓
조선시대
족보 편찬이 활발해지면서 서로 다른 지역과 계통의 백씨들이 공동 시조를 중심으로 하나의 성관집단으로 정리
↓
오늘날의 수원백씨를 비롯한 한국 백씨
실제 역사가 이런 과정이었다면 오늘날 백씨 가운데에는 백우경의 실제 후손뿐만 아니라 백우경보다 훨씬 이전부터 한반도에 살았던 백씨들의 후손 역시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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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나는 오히려 백제계 백씨 후손이 상당히 많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부터는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나의 가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오늘날 한국의 백씨 가운데 백우경 한 사람에게서 실제로 내려온 후손만 존재한다고 보기보다는, 백제시대부터 한반도에 존재했던 백씨들의 후손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실제 숫자로는 백우경의 직계후손보다 기존 한반도 백씨의 후손이 더 많을 수도 있다.
물론 현재로서는 어느 쪽이 더 많은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현재 한국 백씨 대부분이 백제계다.”
라고 역사적 사실로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반대로
“현재 한국 백씨는 모두 당나라에서 건너온 백우경 한 사람의 후손이다.”
라고 단정할 수 있는 역사적·유전학적 증거 역시 충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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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
나는 백우경을 수원백씨의 시조로 모시는 족보 전통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족보상의 시조와 실제 1,500년 동안 이어진 사람들의 혈통 역사는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분명하다.
백우경보다 수백 년 전부터 백제에는 이미 백씨가 존재했다.
그들은 백제의 유력 귀족 성씨였고 실제 역사 기록에도 등장한다.
그렇다면 이들의 후손이 백제 멸망과 동시에 모두 사라졌다고 가정하기보다는 일부가 신라·고려 사회에 살아남아 후대 백씨 집단의 일부가 되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연구해볼 만하다.
그래서 나는 한국 백씨의 기원을 단순하게
당나라 백우경 → 신라 → 수원백씨 → 오늘날 한국 백씨
라는 하나의 직선으로만 보기보다는,
백제시대부터 존재했던 한반도의 백씨
+
당나라에서 신라로 건너왔다고 전해지는 백우경 계통
+
그 밖의 여러 백씨 계통
↓
고려·조선을 거치며 여러 본관과 족보 체계 속에서 재편
↓
오늘날의 한국 백씨
라는 가능성도 함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한국 백씨의 역사는 훨씬 오래되었으며, 그 뿌리의 상당 부분은 당나라가 아니라 백제와 고대 한반도에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은 가설이다.
그러나 최소한 한 가지는 분명하다.
“한국의 백씨는 당나라에서 온 백우경으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간단하게 설명하기에는, 백씨는 이미 그보다 수백 년 전 백제의 역사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