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순수하고 깨끗한 사람을 보면 꿀밤을 한 대 먹여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한 대 때리맥이고 울먹이는 표정을 보는 것을 즐겼다

내가 어렸고 내가 많이 맞아봐서 다른 얘들도 맞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내가 마음이 더럽고 싯을 수 없는 찌든 때에 파묻힌 채로 그렇게 해맑고 순수하고 깨끗하고 때가 묻어도 슥하고 닦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진자를 증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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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웃으면서 같이 어울리는 척을 하지만 옛날 같았으면 십자가에 매달고도 남았을 것이다​​​​​​

예전에는 학교가 없고 순수함을 더럽히지 않는 이념으로 아이들을 교회를 보냈다고 전해진다.

교회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아부하는 방법을 몰랐을 것이다.

말이 어눌하고 재미없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순수한 아이들은 곧 닥칠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살인을 하게 된다.

살인을 가르치는 곳이 군대이지만 군대에 있는 성인은 알고 있다.

군대는 깨끗한 마음을 수양하는 곳이 아니다.

그들이 성인이라는 것도 알고, 가족을 부양할 나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내가 그들에게 줄 고통이 꼭 나로 인해서 이루어져야 하는지 되물었다.

다른이가 고통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이런 인적 재앙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적 재앙은 고통에서 시작되고 그 크기는 고립없이 작아질 수 없다.

재앙을 막을 방법은 없다.

십자가에 매다는 것이 가장 큰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분명하다.

천사와 악마는 이런 관계라고 생각한다.

고통과 순수함.

그들의 얽혀있는 갈등이 인간에 마음에 잠들어서 모든 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 하나님을 길잃은 어린 양을 돌보고, 사랑하라고 기르친다.

그런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구리에 찌든 나의 주먹과 한번도 받아본 적 없는 위화감과 리더쉽.

그것은 너무 중독적이었고 나도 타락시켰다.

그것에서 벗어나기까지 많은 노력이 있었다.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아닌 나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중요했다.

딸딸이를 치며 여성들의 소중한 부위를 엄하게 가격하지 않아도 되었다.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과 사랑으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었다.

사회는 일련의 장애로부터 불안에 떨고 무엇에 열광하고 어떤 광기를 띄는지는 그 디테일에 있다.

길 잃은 어린양을 찾는 양치기가 되어 양아치들을 참교육하고 시련으로 사랑을 가르쳐 뼈에 새겨야 한다.

국수주의나 절대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떠나 이것은 종교적이고 신성한 절차다.

이런건 갠세이 치는 것이 아니라 어드밴티지 좀 더 줘서 빨리 끝내가 도와주는게 재앙을 막는 길인 것이다.


세줄요약.
좀 순수하게 좆같은 새끼들이 인싸질 하려고 앵기는거 보면 존나 때리고 싶고 사회계층과 아무 연관이 없다는것.
이런애들보면 내가 병신이란 것을 깨닫고 나를 이렇게 만든 개씨발새끼들을 깨끗하게 족칠 상황이 된다는 반증이다.
사회보험제도 같은건 이런 종교적인 것이기 때문에 건들면 같이 족치는게 맞고 법적인 족친걸로 처벌 하는건 눈에도 안들어온다 이기야.

이걸로 계층화해서 하극상 만드는 생각 하는 놈들이 있는거 같은데 한참 잘못 생각한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