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에서 이어짐)

6·25 전선(戰線)에서 다시 증명된 반공(反共) 군인 박정희

1950년 6월 25일 새벽, 박정희가 그토록 경고했던 전면전이 현실이 되었다. 전쟁 발발 직후 군 수뇌부는 작전 능력이 뛰어난 그를 현역 소령으로 복직시켜 작전정보국 제1과장으로 보임했다. 이후 박정희는 제9사단 참모장, 제2·3군단 포병단장 등 전선의 작전 판단과 화력 운용을 책임지는 핵심 보직을 차례로 맡게 된다. 특히 제9사단 참모장(중령) 시절은 그의 군사적 실전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시기였다. 사단장의 재임이 두 달을 채 넘기기 어려울 만큼 지휘권이 자주 교체되던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박정희 중령은 사실상 사단 운영의 ‘연속성’을 책임지는 중심축으로서 작전·행정·병참을 통괄하며 지휘 공백을 메웠다. 1951년 3월 14일, 강원도 정선 송계리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는 그 역량이 실제 전과로 입증된 대표적 사례였다. 당시 9사단은 인민군 10사단 병력 약 2,000명과 치열한 산악 게릴라전을 벌인 끝에 적을 섬멸했다. 산악 기동에 능해 ‘걸어 다니는 공수부대’로 불리던 북한군 최정예 부대를 상대로 거둔 대승이었다. 이 승전은 9사단 창설 이후 처음으로 거둔 대규모 전과로 평가받았고, 박정희는 이 전투에 대한 공로로 4월 15일 대령으로 진급했다. 이후 박정희는 1953년 2월 제2군단 포병단장, 같은 해 5월 제3군단 포병단장으로 부임해 강원도 양구에서 휴전을 맞았으며, 휴전 직후인 1953년 11월 25일 준장으로 진급함으로써 마침내 대한민국 장군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원조 빨갱이”라는 자기모순

1950년 6월 25일 기습 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박정희는 주저 없이 전선으로 복귀했다. 그는 개전부터 휴전에 이르기까지 정보·작전·화력 지원 등 전쟁 수행의 중추 보직을 맡아 대한민국의 전선을 지켰고, 전투 과정에서 발휘된 그의 지휘와 작전 능력은 충무·화랑·을지 무공훈장을 포함한 총 7개의 무공훈장 수여로 이어졌다. 이 서훈 기록은 한때 그를 둘러쌌던 사상적 혐의가 완전히 불식되었음을 증명할 뿐 아니라, 그가 단지 형식적 ‘전향자’가 아니라 생사를 건 전장에서 공산주의와 맞서 싸운 반공 군인이었음을 국가가 공적으로 확인한 역사적 증표이다.

여기서 우리는 상식의 차원에서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박정희가 정말 공산주의자였다면, 왜 그는 자신이 충성했어야 할 북한 공산군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웠으며, 또한 박정희가 정말 ‘원조 빨갱이’였다면, 왜 평생을 자신의 적국이어야 할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헌신했는지를.

설령 비판자들의 주장대로 과거의 남로당 연루 정황을 사실로 전제하더라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 박정희가 전향 이후 평생을 북한 공산 체제와 맞서 싸웠고, 나아가 대한민국의 부국강병을 이룩하는 데 분투했다면, 그는 북한 정권과 남한의 종북 세력에게는 ‘배반자’로 불릴 수 있을지언정, 대한민국의 역사에서는 ‘위대한 전향자’이자 ‘구국의 영웅’으로 평가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역사적 상식이며, 한 인간의 생애를 과거의 한 장면이 아니라 전체의 방향 속에서 평가하는 공정한 기준이다.

역사는 이미 이러한 평가의 준거를 반복해서 제시해 왔다.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의 휘하 장수로 참전했으나 이후 조선에 귀화하여 왜군을 격퇴하는 데 큰 공(功)을 세운 김충선(일본명: 사야가) 장군 —그가 원래 조선을 침략한 왜군이었다고 해서 우리는 그를 '원조 쪽바리'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사야가 즉 김충선을 충의(忠義)로 조선을 지킨 위대한 장군으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당에 자진해 가입하고, 유대인 노동력을 착취했던 오스카 쉰들러 경우도 다르지 않다. 그가 개심(改心) 후 수많은 유대인을 가스실에서 구해냈을 때, 이스라엘과 세계는 그를 과거의 나치 당원 이력으로 가두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그를 '열방의 의인'으로 기렸고, 나치 당원 중 유일하게 유대인의 성지인 시온산 묘역에 안장하는 특별한 예우를 부여했다.
이들 사례가 가리키는 바는 분명하다. 역사적 평가를 가르는 것은 한 인물에게 덧씌워진 과거가 아니라, 공동체가 위기에 처한 순간 그가 내린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을 생애 전체로 떠받친 헌신과 성취라는 것이다.

본문 출처: 이재훈, 『박정희는 역사이다』, 281~283페이지

※ 이어지는 <누가 ‘진짜 빨갱이’인가?(5)> 편에서는 역사 속 실체적 '원조 좌익'의 본질과, 박정희에게 덧씌워진 정치적 프레임의 허구를 엄정한 사료를 통해 정면으로 직시합니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해 온 세력이 박정희라는 인물에게 덧씌운 기만적 주술을 걷어내고, 오직 역사적 사실과 객관적 기록 위에 진실을 바로 세우는 다음 연재 글에도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기대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