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가 을지로인 이유가 중국인 거주 지역이라 

이 자들 제압한다는 의미로 수나라 군대 물리친 고구려 장군 을지문덕 이름에서 따온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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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에는 이곳을 구리개라고 불렀으나, 도성 내부 치고는 개발이 덜 된 편이었다.

조선 시대에 개발이 미진했을 때부터 개항 이후 서울 내 일본인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을지로 일대에 다수 거주하였다. 

한일합방조약으로 조선을 식민지화한 일본은 

1914년 조선 내 일본인들이 다수 거주하던 구리개를 고가네마치(黃金町, 황금정)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그리고 동시기에 조선총독부에서 일본인들이 다수 살았던 고가네마치를 가로지르는 도로를 개설했고 

이를 고가네마치도리(黄金町通り, 황금정통)이라 하였다.







그러다가 1945년 8.15 광복을 맞아 1946년에 일본식 가로명과 지명을 개정하면서

고가네마치와 고가네마치도리는 모두 을지문덕 장군의 성씨인 을지를 따다가 을지로로 개명하였다.

일본인뿐만 아니라 을지로 일대는 구한말부터 중국인(화교)들도 밀집해 차이나타운 상권을 형성했던 곳이라, 

중국인의 기세를 억누르기 위해 을지문덕 장군에서 따와 도로명을 바꾼 것이다. 

일본인 상권이 형성됐던 '혼마치(本町, 본정)'를 해방 이후 일본인의 기세를 억누르기 위해 

이순신 장군에서 따와 도로명을 바꾼 '충무로'와 같은 케이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