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조선 국내거주 일본인의 수가 대략 80만명 정도임
80만명의 일본인이 조선전체의 부를 86%를 차지함
목욕탕을 지었는데 조선인은 출입이 불가함
그래서 해방후에 가장먼저 조선인들이 달려간곳이 목욕탕임
투표권이 없었음
병합 이후에는 조선인이 회사조차 만들지못함
나중에가서야 일본인들의 요구로 인해서 풀어줌 (조선인들한테 하청을 줘야했기때문에)
일본에의해서 노비가 해방되었다? 이것만큼 가짜뉴스도없음
실제로는 고종 1873년도에 노비에대한 세습자체를 없애버림 더이상 노비자식이라고해서 노비가 되지않음 물론 반쪽짜리일수도있음
이게 김옥균의 3일천하로 인해서 좀더 앞당겨짐 아예 노비해방을 해버림 (애초에 왕실이 노비제도 자체를 안좋아했음 세금을 안내니까..그렇기에 정조 승하직후 1800년이 되자마자 공노비 해방을 시켜버림 이로인해 66000명의 노비가 거리로 나앉음.. 국가로서는 노비가 많아지면 재정면에서 굉장히 취약해짐)
철도 의료 이런건 이미 병합이전 조선에 들어와있던것임 전기또한 마찬가지
한성전기주식회사의 대주주가 고종이었음
고종이 무능력한건맞는데 근대화 시도를 했다는것 또 한가지 고종때 잠시잠깐 전차를 들여왔다가 쓰지않았던적이있어
민비 무덤갈때 이용한다고 들여왔는데 이게 애가 치어서 죽음 그것때문에 고종이 애나 죽이고 그런다고 쓰지않았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