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방의 계절
자유가 자기 인생을 처음 실패했다고 생각한 것은 스무 살 때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전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의 그는 대개 창가에 앉아 있었다. 봄이면 운동장 가장자리에 늘어선 나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연둣빛을 띠는 것을 바라보았고, 여름이면 창틀 너머에서 울어대는 매미 소리를 들었다. 교사의 목소리는 언제나 멀리 있었다. 칠판에는 수열과 미분과 낯선 영어 단어들이 줄지어 적혔지만, 그것들은 그에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는 죽은 기호처럼 보였다.
그는 공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놀지도 않았다.
친구들과 운동장을 뛰어다니지도 않았고,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하지도 않았으며, 반항할 만큼 삶에 관심이 있지도 않았다.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가 별것도 하지 않은 채 끄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저녁이 지나고 밤이 오면 자기가 하루 동안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날도 있었다.
어머니는 게으르다고 했다.
아버지는 정신을 차리라고 했다.
선생들은 머리가 나쁜 아이는 아닌데 의지가 없다고 말했다.
자유도 차츰 그 말을 믿었다.
나는 게으른 인간이다.
나는 중요한 순간에도 움직이지 못하는 인간이다.
남들은 저마다 어딘가를 향해 가는데, 나는 출발할 마음조차 갖지 못하는 사람이다.
어린 시절 사람은 어른들의 말을 신앙처럼 받아들인다.
자유에게는 그것이 최초의 신앙이었다.
자신은 본래 어딘가 잘못 만들어진 인간이라는 믿음.
졸업식 날, 친구들은 운동장에서 서로의 교복에 낙서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대학 이름과 자취방과 새로 살 노트북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자유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모두가 어떤 역에 도착해 짐을 챙겨 내리는데, 자기 혼자만 텅 빈 열차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때까지 그는 인생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는 준비 기간일 뿐이고, 진짜 인생은 언젠가 먼 훗날 시작될 것이라고.
그러나 그날 처음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인생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자신은 시작된 인생을 아무렇게나 흘려보낸 것인지도 몰랐다.
그 생각은 그를 두렵게 했다.
대학에 들어간 뒤 자유는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부가 구원처럼 느껴졌다.
아침 일찍 도서관에 들어가 저녁까지 앉아 있었다. 고등학교 때 외면했던 수학책을 다시 펼쳤다. 처음에는 한 페이지를 읽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이해되지 않는 문장을 몇 번이고 읽었고, 문제 하나를 붙들고 종이 한 장을 다 써버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것이 좋았다.
책 한 권을 끝낼 때마다 과거의 자신을 조금씩 뒤로 밀어내는 듯했다.
어제의 자신보다 오늘의 자신이 나아졌다는 감각.
그것은 자유가 처음으로 맛본 종류의 희열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자기 안에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음을 발견했다.
책상에 앉아 있으면서도 좀처럼 책을 읽지 못하는 날이 있었다.
다섯 줄을 읽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았다.
물을 마시러 일어났다.
창밖을 바라보았다.
방금 읽은 문장을 잊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머릿속에서는 언제나 여러 개의 목소리가 동시에 떠들었다.
해야 할 일을 너무 잘 알면서도 시작할 수 없었다.
어떤 날은 그것 때문에 자기 자신이 미칠 듯이 미웠다.
그러던 밤 그는 인터넷에서 ADHD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읽었다.
그러나 몇 줄을 내려갈수록 심장이 조금씩 빨라졌다.
집중하기 어려움.
충동성.
해야 할 일을 알면서도 착수하지 못함.
생각이 끊임없이 다른 곳으로 흩어짐.
그는 모니터 앞에서 오래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이 살아온 시간에 갑자기 다른 이름이 붙는 것 같았다.
게으른 것이 아니었다면?
의지가 약한 것이 아니었다면?
내가 나쁜 인간이었던 것이 아니라면?
그 생각은 이상하리만큼 달콤했다.
사람은 때로 자신의 고통에 이름이 붙는 것만으로도 구원받았다고 느낀다.
자유도 그랬다.
병원에서 처음 약을 받아온 날, 그는 흰 알약 하나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너무 작았다.
십 대의 몇 년을 설명하기에는.
부모와 싸운 수많은 밤을 설명하기에는.
자기가 자신을 미워했던 시간을 설명하기에는.
우습도록 작았다.
그는 물과 함께 그것을 삼켰다.
한 시간이 지나자 세상이 조용해졌다.
그동안 머릿속에서 서로 날개를 부딪치던 수십 마리의 새가 갑자기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책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한 페이지를 읽었다.
다음 페이지를 읽었다.
또 다음 페이지를 읽었다.
그날 자유는 아주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 있었다.
밤늦게 도서관을 나왔을 때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자유는 웃었다.
이제 됐다.
이제 나는 달라질 수 있다.
그날 그는 작은 알약 안에서 새로운 인생을 보았다.
약은 처음에는 도구였다.
그다음에는 습관이 되었고,
얼마 뒤에는 확신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 없이는 자신이 다시 옛날의 인간으로 돌아갈 것 같은 두려움이 되었다.
성적은 빠르게 올랐다.
교수들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학과 친구들은 그를 독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너 진짜 많이 변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자유는 기뻤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칭찬을 들을수록 마음 깊은 곳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변한 게 아니야.
약을 먹었을 뿐이야.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더욱 자신을 몰아붙였다.
친구들이 술을 마시러 나갈 때 도서관에 남았다.
생일 모임이 있어도 시험을 핑계로 가지 않았다.
누군가 만나자고 하면 할 일이 있다고 거절했다.
자유에게 시간은 점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용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쓸모없는 하루는 죄악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오후를 견딜 수 없었다.
한때 가까웠던 친구가 말했다.
“너 요즘 좀 이상하다.”
자유는 웃었다.
“정신 차린 거지.”
친구는 대답하지 않고 한동안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말했다.
“그게 정신 차린 건지는 모르겠다.”
그 말이 몹시 불쾌했다.
자유는 그 친구와 멀어졌다.
그 뒤에도 몇 사람이 더 사라졌다.
처음에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시절의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혼자가 되었다.
지금의 자신은 무언가가 되기 위해 혼자가 되는 것이었다.
자유는 그 차이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밤늦게 자취방 문을 열고 불을 켤 때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책상.
컴퓨터.
구겨진 침구.
벽에 기대어 놓은 가방.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방.
그 방은 고등학생 시절 자신의 방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사람은 장소를 떠날 수는 있어도 자기 자신에게서 그렇게 쉽게 떠나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아직 몰랐다.
졸업을 앞두고 자유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사에 합격했다.
합격이라는 두 글자를 보았을 때 그는 한동안 화면만 바라보았다.
기뻐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무 감정이 오지 않았다.
먼저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울었다.
아버지는 드디어 해냈다고 말했다.
친척들은 대단하다고 했고, 친구들은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휴대전화 화면에 수십 개의 붉은 알림이 떠 있었다.
자유는 그것들을 하나씩 읽었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들이었다.
잘했다.
대단하다.
고생했다.
이제 됐다.
그런데 그날 밤 자유에게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전혀 다른 한 문장이었다.
이게 끝인가?
그 질문은 아주 작은 구멍처럼 생겼다.
처음에는 손가락 하나 들어갈 만큼 작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구멍은 커졌다.
회사 생활은 처음 몇 달 동안은 제법 근사했다.
목에 사원증을 걸고 회사 건물에 들어가는 것이 좋았다.
처음 받은 월급도 좋았다.
회사 이름을 말했을 때 사람들의 눈빛이 조금 달라지는 것을 느끼는 것도 싫지 않았다.
자유는 자신이 마침내 세상의 한 자리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인간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모든 것에 익숙해진다.
출근.
메일.
회의.
보고.
점심.
커피.
퇴근.
월급.
그리고 다시 출근.
어느 날 아침, 지하철 창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바라보다가 자유는 오래전 고등학교 교실의 창가를 떠올렸다.
그때의 자신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지금은 잘 다려진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때는 성적표가 형편없었다.
지금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사에 다녔다.
그 사이에는 수많은 시험과 밤과 알약과 합격증이 있었다.
그런데 창문에 비친 두 사람의 표정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자유는 그 사실이 싫었다.
무엇보다 무서웠다.
그토록 멀리 왔는데 아무 데도 오지 못한 것 같았다.
약은 이제 공부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일을 해야 할 때 필요했다.
회의가 있는 날 필요했다.
머리가 흐린 아침 필요했다.
자기가 자기답지 않다고 느껴지는 날 필요했다.
그리고 점차 그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약을 먹은 내가 진짜 나인가.
먹지 않은 내가 진짜 나인가.
약을 먹지 않은 날에는 세상이 다시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
집중하기 어려웠고, 쉽게 지쳤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오래전의 소년이 돌아오는 듯했다.
창가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던 열일곱 살의 자유.
그 아이가 두려웠다.
자유는 그 아이를 자기 인생의 원수처럼 여겼다.
다시는 그 아이에게 몸을 내주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았다.
더 많은 것을 이루었다.
더 많은 것을 계획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열심히 살수록 삶은 점점 그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자신이라는 말을 움직이는 기수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그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이런 질문에는 대답할 수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가.
어디까지 가야 하는가.
그것만큼은 언제나 분명했다.
그 무렵 수진을 만났다.
수진은 자유가 오랫동안 잊고 살아온 세계의 사람처럼 보였다.
별 이유 없이 걷는 것을 좋아했다.
길가의 고양이를 보면 걸음을 멈췄다.
하늘이 예쁜 날이면 갑자기 사진을 찍었다.
주말 오후 카페에서 두 시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앉아 있을 수도 있었다.
처음 자유는 그런 그녀가 신기했다.
어느 날 물었다.
“이렇게 있어도 안 아까워?”
“뭐가?”
“시간.”
수진은 웃었다.
“왜 아까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잖아.”
수진은 컵을 내려놓고 자유를 바라보았다.
“우리 지금 같이 있잖아.”
그 말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우리 지금 같이 있잖아.
자유에게는 낯선 문장이었다.
그에게 시간은 늘 미래를 위해 저축하는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 자체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그는 해본 적이 없었다.
수진과 함께 있을 때 자유는 가끔 자신도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고.
아무 데도 도착하지 않고.
그저 한 사람 곁에 앉아 있는 것으로 충분한 삶.
그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정말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법과 사랑받는 법은 서로 다른 일이었다.
수진의 답장이 늦어지면 불안했다.
그녀가 혼자 있고 싶다고 하면 버림받는 기분이 들었다.
목소리가 조금 차가우면 마음속에서 수십 가지 이유를 만들어냈다.
자유는 사랑에서도 시험을 치렀다.
정답을 찾으려 했다.
확신을 요구했다.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를 끊임없이 확인하려 했다.
수진은 어느 날 지쳐 말했다.
“당신은 왜 모든 걸 그렇게까지 해?”
자유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공부도.
직장도.
사랑도.
자기 자신도.
그에게 삶은 언제나 손을 놓는 순간 추락하는 일이었다.
겨울밤이었다.
두 사람은 아주 사소한 일로 싸웠다.
대부분의 돌이킬 수 없는 싸움이 그렇듯 시작은 너무 사소해서, 며칠만 지나도 무엇 때문이었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할 종류의 일이었다.
하지만 자유 안에는 오래 묵은 말들이 너무 많았다.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느냐.
왜 내가 힘든 것을 모르느냐.
왜 나를 혼자 두느냐.
왜 나는 이렇게 필사적으로 살아야 하는데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느냐.
처음에는 수진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부모에게 하는 말이 되었고, 친구에게 하는 말이 되었고, 세상에게 하는 말이 되었으며,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 되었다.
수진도 울었다.
마침내 그녀가 소리쳤다.
“나는 당신을 구해줄 수 없어.”
그 순간 자유는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이 잔인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정확했기 때문이다.
그는 오랫동안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기를 기다렸는지도 몰랐다.
처음에는 좋은 성적이.
그다음에는 약이.
좋은 회사가.
사랑이.
언젠가는 자신 안의 공허한 곳을 완전히 채워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그 일을 해주지 않았다.
자유는 방을 나왔다.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눈은 붉었고 입술은 말라 있었다.
옷깃이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문득 오래전 도서관의 밤을 떠올렸다.
스무 살의 자신.
손바닥 위에 작은 알약 하나를 올려놓고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청년.
그때의 자신은 참으로 진지했다.
그리고 참으로 순진했다.
자유는 생각했다.
나는 정말 다른 사람이 되었던가.
성적을 얻었다.
회사를 얻었다.
돈을 벌었다.
사랑하는 사람도 얻었다.
그러나 왜 나는 아직도 그 방 안에 있는가.
왜 나는 여전히 열일곱 살인가.
왜 이토록 많은 것을 얻었는데도 내가 없는 것 같은가.
새벽의 도시는 차가웠다.
수천 개의 창문에 불이 켜져 있었다.
저 창문들 안에도 각자의 삶이 있을 것이었다.
잠든 아이가 있을 것이고,
늦은 저녁을 먹는 사람이 있을 것이며,
서로 등을 돌리고 누운 연인이 있을 것이고,
내일 출근하기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었다.
그 모든 평범함이 자유에게는 아주 멀리 있는 나라처럼 느껴졌다.
그는 높은 곳에 섰다.
아래를 오래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그 순간 어떤 장엄한 진리도 찾아오지 않았다.
삶이 무의미하다는 깨달음도 없었다.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확신도 없었다.
죽고 싶다는 하나의 깨끗한 생각조차 없었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어머니의 목소리.
아버지의 얼굴.
학교 운동장.
도서관의 형광등.
처음 받은 사원증.
수진의 웃음.
그리고 어느 오후의 말.
우리 지금 같이 있잖아.
마지막으로 떠오른 것은 이상하게도 열일곱 살의 자신이었다.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보던 소년.
자유는 그 소년을 오랫동안 미워했다.
게으르다고.
한심하다고.
자기 인생을 망쳤다고.
없애버려야 할 과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처음으로 그 아이가 다르게 보였다.
어쩌면 그 아이는 게으른 것이 아니었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저 혼란스러웠던 것인지도 몰랐다.
어쩌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질문 앞에서 너무 오래 혼자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무엇을 이루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나인가.
자유는 그 아이에게 한 번도 그런 질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저 일으켜 세우고,
달리게 하고,
잘못된 부분을 고치고,
뒤처진 시간을 따라잡게 했다.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채찍이 아니라 이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이상하게도 너무 늦게 도착하는 깨달음들이 있다.
자유는 그날 충동 속에서 몸을 던졌다.
그것은 결론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생각하여 얻은 답도 아니었다.
세상을 향한 선언도 아니었다.
오래 금이 가 있던 무엇인가가 한순간 더 버티지 못한 일이었다.
그리고 자유의 삶은 거기서 끝났다.
그 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말했다.
회사 때문이라고 했다.
약 때문이라고 했다.
여자친구와 싸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떤 이는 원래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너무 완벽하게 살려고 했다고 말했다.
모두 조금씩 옳았다.
그리고 그래서 모두 틀렸다.
한 인간이 수십 년 동안 자기 안에 쌓아온 밤들을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수진은 오랫동안 마지막 밤을 떠올렸다.
내가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문을 막았더라면.
뒤따라갔더라면.
전화를 한 번 더 했더라면.
그러나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 뒤에야 그녀는 겨우 이해했다.
그들의 싸움이 자유를 처음 무너뜨린 것은 아니었다.
자유의 싸움은 훨씬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고등학교 교실의 창가에서.
대학교 도서관에서.
손바닥 위의 작은 알약을 바라보던 밤에서.
그는 평생 자기 자신을 둘로 나누어 살아왔다.
살려야 하는 자신과 없애야 하는 자신.
성공한 자신과 실패한 자신.
집중하는 자신과 산만한 자신.
강한 자신과 약한 자신.
그는 나쁜 자신을 하나씩 잘라내고 나면 언젠가 마지막에 완전한 자신만 남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가 없애버리고 싶었던 것들도 모두 그였다.
창밖을 바라보던 아이도.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청년도.
불안해하던 연인도.
칭찬받고 싶어 하던 직장인도.
모두 한 사람의 생이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이름은 자유였다.
그는 평생 자유로워지려고 애썼다.
게으름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실패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불안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과거의 자신에게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서 자유로워지려고 할수록 그는 점점 더 단단히 자기 안에 갇혀갔다.
다음 해 봄, 수진은 우연히 한 고등학교 앞을 지나갔다.
수업 시간인지 운동장은 비어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운동장 가장자리의 어린 잎들이 흔들렸다.
햇빛을 받은 교실 창문 하나가 유난히 밝게 반짝였다.
수진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자유가 이야기했던 열일곱 살의 소년을 떠올렸다.
공부하지 않고 창밖만 바라보았다는 아이.
누군가 그 아이 곁에 앉아주었다면 어땠을까.
왜 공부하지 않느냐고 묻는 대신,
무엇을 바라보고 있느냐고 물었다면.
정신 차리라고 말하는 대신,
무엇이 그렇게 힘드냐고 물었다면.
그리고 한 번쯤 이렇게 말해주었다면.
무언가를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네 인생이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지금의 너를 없애야만 더 좋은 네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라고.
네가 미워하는 너까지 데리고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삶이라는 것이라고.
그 말을 들었다고 해서 모든 일이 달라졌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인간의 운명은 한마디로 구원될 만큼 단순하지 않다.
그래도 수진은 한동안 그 창문을 바라보았다.
봄바람이 불었다.
어린 잎들이 햇빛 속에서 흔들렸다.
어디선가 수업 종이 울렸다.
세상은 자유가 없어도 다시 봄이 되어 있었다.
그 사실은 잔인했다.
그리고 동시에 이상하게도 따뜻했다.
살아 있는 것들은 죽은 이를 잊어서가 아니라,
그들을 품은 채 다시 푸르러지는 것인지도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