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천만 관객 돌파 기록을 세웠던 ‘실미도’(감독 강우석)의 소설 원작자 백동호 작가(68)의 말이다. 그는 실미도 사건 53주기를 앞두고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2003년 영화 개봉 직후 여러 언론에 밝혔던 ‘실미도 공작원(훈련병) 생존설’을 거듭 주장했다. 20여년 전과 다른 점은, 그 생존자가 2006년 사망했음을 처음으로 밝혔다는 사실이다.

 

2006년에 사망했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조금 자세히 써보자면

실미도 원작소설가인 백동호는 1955년생이고

아버지는 노름판에서 칼맞아죽고

엄마는 애낳고 몸조리 못해 산후후유증으로 백씨가 5살때 사망

이후 아들없는집의 양자로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끔찍한 아동학대를 당해 13세에 서울로 가출 

그때부터 거친 밑바닥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백동호는 아이큐 150이 넘는 천재형 인물에

전성기 시절 한번에 푸샵을 1200개 하였고

당시 성인남자 두세명은 가볍게 상대할 정도의 주먹실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가 주먹 좀 쓰던 시절에 용산 놀이터의 전설로 불린 자가 있었는데

그 자는 용산에 있는 어느 놀이터에서 칼로 위협하는 불량배 13명을 혼자서 박살냈다는 것이었다

이 사람이 바로 영화에서 설경구가 연기한 강인찬이었다

둘의 만남은 십수년 후 감옥에서 우연히 이루어졌는데 상황은 이렇다

우연히 이감된 곳에서 유독 말이 없고 조용한 수감자가 있었다. 그는 비록 체구는 작고 볼품이 없었으나 몸이 건장했고 특히 눈빛에서 나오는 살기는 예사인물이 아님을 느끼게 했다.  백동호는 이 사람과 조금씩 친분을 쌓게 되었고 바로 그가 십수년전 용산 놀이터의 전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바로 당시 베일에 싸여있던 북파공작부대 실미도의 생존병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강인찬은 백동호에게 조각난 기억들을 전해주었고, 출소후 신분을 세탁후 미국으로 건너가 킬러맨으로 활동하다 2006년 사망하였다. 그는 내 기억으로 1947년생인가 그렇다.

 

한편 백동호는 1994년 출소후 자전소설 대도를 출간하여 베스트셀러 작가로 변신, 그후 1999년 실미도를 출간하여 오랜기간 묻혀있던 실미도 사건을 세간에 알리는데 기여한 바 있다

 

정부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입 모아 청와대로 향할때 탈출해 독자적 생존을 꾀한 자가 없다고 하였으나, 백동호씨는 처음부터 최소 두세명은 청와대로 가는것을 포기하고 제 살 길을 찾아 떠났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확실하게 나 LoveSux가 백씨의 주장이 맞다고 편 들어주는 이유는, 실제로 그 생존자중에 강인찬 말고 또다른 생존자 1명이 필리핀으로 밀입국하여 그곳의 갱단을 접수하고 대부노릇을 했다는 증언을 내가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최소 2명은 이탈후 독자적 생존을 했다는 말이된다 

 

출처 : 백동호 전문가인 LoveSux 직접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