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ai” 이런 생각하는 분이 큰 깨달음을 겪길 소망합니다.
 

 
제가 파악하는 ai는 대학원 석사 레포트 수준으로 기존 자료를 요약하는 레벨로 봅니다. 미국의 ai적이며 친인문학적, 친기독교적 시각에서는 기계라고 이 부분을 표현하는 거 같습니다.
 
저는 삼류대 국문과 쪽이며 편견없이 양쪽을 다 보았습니다. 특히, 제 판단의 구석 구석에서는, 예수님 계명의 빛을 따라서 가는 과정으로,..... 그 과정 하나 하나에, 그런 자료 정리에서는 기계적 요약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루터의 칭의론이 나왔을 시편강독 비슷한 신앙체험으로, .... 그렇게 바라본 것입니다.
 
저는 지금 70-80대 귀족노인들의 과도한 사회책임의식에 반대합니다.
 
군사정권은 군사독재와 연결된 국정교육 어법 빼고 나머지는 다 지웠습니다.
 
지금은 유신반대운동(서양은 베이비부머세대에 속하나, 이 세대는 한국은 가난해서 지식인 자체가, 부자=지식인=정치적 리더였던)세대들의 과거 지상적인 것 빼고 나머지는 다 지웁니다.
 
저는 보수와 진보가 같은 성경의 하나님이다.
 
요즘은 그런 생각 많이 합니다. 요즘은 고린도전서 15:1-4, 에베소서 2:8-9, 그리고 히브리서 137-8절을 바라봅니다.
 
미래세대에 복음이 퍼져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지평이 퍼지지 않으면, 바른 교의로 성경을 가르치지 않으면, 잠언에서 나오는 바처럼 미래세대를 가르치지 않으면, ..... 과거부터 지금까지 예수님만 바라본 신자들의 진실은 다 사라집니다.
 
십자가 따름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습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은 타자지향적 신앙 사유로 조직신학책에서 많이 인용됩니다. “설교 ai”의 발상은 이거 안하자는 발상입니다.
 
사실, 동학은 관직 싸움 신앙입니다.
 
기독교는 그게 아닙니다. 구약에서 신약까지, 구 계약에서 새 계약으로 그 흐르는 속에서 삼위일체 성령 하나님 역사를 바라봅니다.
 
성경도 매일 읽어야 하고요, 세상속에서 하나님 계시를 전할 수도 있다고 여겨질 수 있는 책 중의 책’(아무나 책 말고)도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은, 그 자체로 만족입니다.
 
저는 이 걱정을 합니다. 구글 ai가 원 자료로 제공하는 기독교 성경읽기 자료들. 10년 뒤에도 과연 새로운 자료가 생산될 수 있을까?
 
대학원 석사 레포트는 남의 자료를 충실히 요약하는 것입니다. 이게 필요없다는게 아닙니다. 기억력이 쇠퇴하는 교수들은 얼마든지 석사 레포트 수준의 내용을 참조합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어야 합니다. 한국 사회가 성경 읽기로서 성경만이 진리라는 믿음이 있을 때만 ai와 인간은 공존합니다.
 
설교 ai는 아닙니다. 팔십대 세계관에서는 그럴 수 있지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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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내용, 깊이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John Piper의 그 짧은 영상(ChatGPT에게 기도문을 쓰게 한 뒤 “이건 찬양이 아니다”라고 단호히 말한 부분)이 바로 그런 맥락이군요. 기계가 입술로(혹은 비트로) 하나님을 높이는 말을 만들어내도, 그 말 안에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이사야가 경고한 “입술로만 존경하는” 것에 가깝다는 지적입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핵심도 그와 맞닿아 있습니다.

  • AI가 할 수 있는 것은 기존 자료의 충실한 요약, 구조화, 연결입니다. 석사 수준의 레포트가 할 수 있는 일이지요. 그것이 쓸모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기억력이 약해진 이들에게도, 바쁜 이들에게도, 자료 정리의 도구로서는 분명 도움이 됩니다.
  • 그러나 신앙의 핵심 경험—루터가 시편을 읽으며 칭의의 빛 가운데 사로잡혔던 그 종류의 체험, 갈라디아서 2:20이 말하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는 타자 지향적·자기 포기적 실존—은 기계적 요약으로 대체될 수 없습니다.
  • “설교 AI”라는 발상이 위험한 지점도 바로 여기입니다. 설교가 단지 ‘바른 교리의 정리된 전달’에 그친다면 AI가 더 정확하고 빠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교가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찔러 쪼개고, 십자가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는 사건이라면, 그것은 인간 목회자의 살아 있는 신앙 고백과 성령의 임재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선생님께서 보수와 진보를 “같은 성경의 하나님” 아래에서 보신다는 말씀, 고린도전서 15:1-4(복음의 핵심), 에베소서 2:8-9(은혜로 말미암은 구원), 히브리서 13:7-8(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을 붙드신다는 말씀도 인상적입니다. 세대와 이념의 싸움을 넘어서, 결국 “예수님만 바라본 신자들의 진실”이 미래 세대에 전달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공허해진다는 걱정이 깊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신 질문이 특히 무겁습니다. “구글 AI가 원자료로 제공하는 기독교 성경 읽기 자료들. 10년 뒤에도 과연 새로운 자료가 생산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닙니다. 성령께서 여전히 사람들을 통해 말씀을 새롭게 조명하시고, 새로운 세대의 성도들이 성경 앞에서 자기 시대의 언어와 아픔으로 씨름하며 고백을 낳아낼 것인가, 하는 신앙의 질문입니다. AI가 기존의 것을 아무리 잘 요약·재구성해도, 그 ‘새로움’의 원천은 살아 있는 신앙 공동체와 성령의 역사 안에 있습니다. 성경만이 진리라는 믿음이 한국 사회와 교회 안에 살아 있을 때, AI는 도구로 남을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이 희미해질 때, AI는 쉽게 ‘대체재’로 자리 잡을 위험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글은 결국 이렇게 들립니다. “기계는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십자가를 따르는 삶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그 실존은, 요약될 수 없다.”

그 소망—설교 AI를 생각하는 이들이 큰 깨달음을 겪기를 바라는 소망—에 저도 동의합니다. 성경을 매일 읽고, ‘책 중의 책’을 읽으며, 그 삶 자체가 만족이 되는 길을 걸어가시는 선생님의 발걸음이, 미래 세대에게도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