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라는 방패 뒤에 숨은 2억 5천만 달러짜리 직무유기: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영화관이라는 공간은 본디 현실의 고단함을 잊고 스크린 속 환상에 빠져드는 도피처다. 특히 그것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간판을 달고 나온 블록버스터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관객이 쥐고 온 팝콘을 빼앗고, 그 자리에 억지 국화를 쥐여주며 2시간 40분 동안 상주 노릇을 강요한다. 주연 배우의 안타까운 비극은 십분 이해하나, 이 영화는 그 슬픔을 서사의 동력으로 삼는 선을 넘어 영화적 완성도의 처참함을 가리는 '면죄부'로 악용했다.
◾ 히어로 무비를 가장한 프로파간다와 억지 추모
영화는 오프닝부터 엔딩까지 "우리는 슬프다. 고로 너희도 엄숙하게 울어야 한다"며 관객의 멱살을 잡고 흔든다. 서사는 멈춰 있고, 캐릭터들은 번갈아 가며 눈물을 쥐어짠다. 오락 영화가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의무를 저버린 채, 추모라는 명분 아래 '가르치려 드는' 태도는 폭력에 가깝다. 흑인 사회의 연대와 제국주의 비판, 소수자 서사라는 정치적 올바름(PC)의 강요는 매끄럽게 녹아들지 못하고, 마치 위선적인 도덕 교과서를 스크린에 띄워놓은 듯한 불쾌감만 가중시킨다.
◾ 카리스마의 부재와 매력 없는 주인공의 탄생
채드윅 보즈먼의 빈자리를 채워야 했던 슈리는 영화 내내 겉돈다. 연구실에서 천재 공대생 기믹으로 감초 역할을 하던 캐릭터가 하루아침에 한 국가의 지도자이자 전사로 거듭나는 과정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얄팍한 체구로 슈트를 입고 비장하게 와칸다 포에버를 외치는 순간, 묵직함보다는 실소가 먼저 터져 나온다. 이는 배우의 역량 부족을 넘어, 억지로 서사를 덮어씌운 제작진의 오만이다.
◾ 총체적 난국인 액션과 디자인: 펄럭이는 빤스맨의 비애
새로운 빌런 '네이머'의 등장은 이 영화의 시각적 재앙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신비로운 해저 제국의 왕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는, 초록색 폴리에틸렌 수영복과 발목에 달린 앙증맞은 벌새 날개를 보는 순간 산산조각 난다. 80년 전 코믹스의 촌스러운 설정을 고집스럽게 실사화한 결과, 깃털 몇 번 펄럭이며 엄청난 기동성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네이머의 액션은 물리법칙을 철저히 무시하며 시각적 붕괴를 일으킨다.
특히 하이라이트가 되어야 할 후반부 사막화된 선상 전투씬은 처참함의 극치다. 엉성한 CG와 허우적거리는 액션 합은 이것이 2억 5천만 달러가 투입된 블록버스터인지, 2000년대 초반 삼류 B급 영화인지 의심케 한다. 전투 방식의 설득력은 상실된 지 오래고, 남은 것은 눈을 뜨고 보기 힘든 우스꽝스러운 난투극뿐이다.
◾ 상품 팔이를 위한 노골적인 불청객
여기에 디즈니+ 드라마 홍보를 위해 억지로 욱여넣은 '아이언하트(리리 윌리엄스)'의 존재는 엉성한 영화의 몰입도를 그나마 바닥까지 끌어내린다. 메인 서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 불청객은 오로지 향후 마블의 완구 수익과 구독자 유치를 위한 얄팍한 상술에 불과하다.
◾ 결론: 관객을 기만한 위선적인 비디오
<와칸다 포에버>는 훌륭한 영화도, 통쾌한 액션물도 아니다. 그저 고인에 대한 추모를 방패 삼아 빈약한 서사, 끔찍한 액션, 성의 없는 조잡한 디자인을 얼버무린 마블의 거대한 직무유기다. 관객은 마블에게 스펙터클한 오락을 기대했지, 비싼 돈을 내고 남의 장례식에서 2시간 40분짜리 훈화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마블은 자신들의 메시지와 슬픔에 취해 영화의 본질을 잊었고, 그 대가는 관객의 뼈아픈 외면과 혹평으로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