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과 일본과는 다른 한국 무술의 특징. 그것은 바로 중앙집권!
땅이 넓은 중국, 봉건제 사회였던 일본과 달리 조선은 유교 탈레반 중앙집권 국가.
그렇기에 무술 좀 한다는 놈이면 무과를 준비해서 나랏돈으로 먹고사는 무관이 되기를 꿈꿨던 사회가 바로 조선.
이러한 기조는 우리가 수능 한 번 치겠다고 학창시절 12년을 갖다 박고, 공무원 되겠다고 노량진 고시텔에 들어가는 현재의 대한민국에도 충실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속담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지방에서 날리는 특유의 지역적 뭐시기보다는 서울.
정확히는 한양에 조선 팔도의 난다 긴다 하는 놈들이 모였을 것이기에 무술 또한 한양과 거기에 주둔한 군영을 중심으로 중앙집권적으로 발전되었다고 보는 것 합리적이다!
2. 그런데 시1바 왜 전해져 내려온다는 게 이 모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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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상식적으로다가 저딴 모습이 조선의 전통무술이었다고 하면
조선 왕조 600년이 유지가 되었을 리가 있겠냐고.”
3. 그렇다 한국 전통무술계의 3대 난제가 바로 이것이다.
애초에 무예도보통지와 같은 무기술은 제외한 조선의 전통무술이라는 게 제대로 존재하기는 했는가?
있다면 대체 그 무술의 형태는 어떤 것이었나?
그리고 만약 정말로 무술이 존재했다면, 왜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지 못했는가?

(그나마 무기술이라도 기록으로 남았으니 망정이지, 정조대왕님의 무예도보통지 편찬조차 없었으면 진짜 ㅈ될 뻔했다… 원종이들이 조선은 무술도 없는 국가라고 날뛸 생각을 하니 어휴...)
4. 한국 무술이 사라진 이유.
대한제국군의 강제 해산 이후 조선의 무인들은 대거 의병활동(정미의병)에 참전했고,

13도 창의군의 서울진공작전의 실패와 일제의 남한대토벌 이후 한반도 내에서의 항일독립전쟁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게 되면서
조선의 무인들은 압록, 두만강을 넘어 당시 조선인들이 상당수 거주하던 간도 지역으로 거점을 옮기게 된다.
우리가 잘 아는 청산리 대첩.
그리고 봉오동 전투가 이 당시 간도 지역으로까지 넘어가 무장독립투쟁을 전개해 가던 조선의 무인들이 피와 눈물로 이루어 낸 전과였다
그러나 역사의 물결은 더 없이 잔혹한 것이었으니
자유시 참변.
스탈린의 대숙청과 고려인 강제이주 등.
대한 독립을 위해 초개같이 몸을 던졌던 수많은 조선의 무인들은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이름 석자 남기지 못하고 피흘리며 죽어갔으나,
무정한 운명의 여신은 그들에게 두 번째 시련을 내리게 된다.

남북분단과 6.25 전쟁. 그리고 냉전.
역사상 다시 있어서는 안 될 민족의 비극과 그 후로 이어진 북한 내부의 끝없는 숙청 속에서 조선의 무술을 간직하던 무인들은 하나 둘 사라져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일제강점기와 6.25라는 2연타를 맞아 전 국토가 잿더미가 된 대한민국은 전통 무술을 챙길 만큼 여유로운 나라가 아니었고,
뒤늦게 다른 곳을 돌아볼 여력이 생겼을 즈음엔 구한말 최후의 택견꾼 송덕기 옹을 제외한 조선의 무인들은 전부 죽거나 사라진 뒤였다.

무려 고종 황제가 택견을 보급하기 위한 교본을 만들라고 자신의 측근에게 명령하였을 만큼 구한말 당시 실전성이 있는 무술로 명성이 높았던 택견마저도 이러했던 것이다.
그러니 다른 이름 모를 무술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5. 그럼 유일한 생존자인 택견은 대체 어떤 무술인데?
간단하게 말하면 조선 ver. MMA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 아래와 같은 반응이 돌아오는데
송덕기 옹의 채록, 송덕기 옹의 제자인 고용우 선생의 증언, 그리고 구한말-일제강점기 당시 택견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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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으로는 스텝, 가드, 스탠스, 펀치, 싸대기(장), 패링, 카운터, 카프킥, 로우킥, 미들킥, 하이킥, 오블리킥, 킥체크, 킥캐치, 스윕, 태클, 테이크다운, 서브미션, 포켓, 프레이밍, 써밍, 박치기, 꼬집기, 깨물기, 머리채잡기 등등
사실상 현대 MMA에서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기술과 개념, 그리고 수많은 반칙기들이 포함되어 있고,
당장 송덕기 옹만 하더라도 스승인 임호 선생께 택견을 배울 당시 저 인왕산을
이렇게 다리 한쪽을 끈으로 묶고 하루 종일 임호 선생이 시키는 대로 깽깽이발로 인왕산을 오르락 내리락 해야 했다(...)는 술회를 남길 만큼
고강도의 체력 훈련을 해야 했으며
개화기 이후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어오는 복싱, 유도와 적극적으로 기술 교류를 들어가는 등.
수박위변 각력위무 약금지택견이라는 17세기의 기록에서 드러나듯
택견은 애초에 타격 + 그래플링이 섞인 종합격투기였으니
6. 그럼 왜 지금 택견의 이미지는 박살이 났는가?
단체 | 협회장 | 송덕기 옹과의 수련기간 | 비고 |
문화재 택견 | 신한승 옹 | 만난 기간 길게 5년, 압축 3년 | 다만 택견의 문화재 등재 과정의 공 덕분에 리스펙 |
대한택견협회 | 이용복 총사 | 없음. | 그냥 사기꾼. 신한승 1-3개월, 송덕기 2주 인터뷰 |
결련택견협회 | 도기현 회장 | 4년 반 | 동아리에서 수련. 주 2~3일 수련 |
윗대태껸협회 | 고용우 선생 | 16년 (압축해도 13년) | 1985년 미국으로 이민 후 LA에서 택견을 전수해 옴 |
보이십니까 이 압도적인 수련 경력 차이가(...)
이 때문에 저 4개 협회의 택견 커리큘럼이 정말 ‘전부 다’ 다르며,
사실상 말만 택견이지 ‘전부 다 다른 무술을 하고 있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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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윗대태껸협회가 전면적으로 택견의 기술들을 인터넷이 풀어버리기 전까지
위와 같은 기술적 형태를 보여주는 모습이 나오지 못했던 이유도 결국 각 협회 협회장들의 수련기간의 차이가 가장 큰 원인이 되었던 것.
실제로 택견의 각 단체 수련생들을 다 같이 모아서 이야기를 나눠 보면
최악인 건 그래도 홍보를 하고 돈도 벌어야 하다 보니
저 5년도 안 되는 수련경력으로 커버가 안 되는 부분을 고갱님들^^ 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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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리플리 증후군의 결과물이 위의 두 움짤인 셈(...)
그리고 조금이라도 내가 점유한 파이를 건드리려고 하거나,
그 특유의 ‘세계관’을 흔들 수 있는 행동이 내부/외부에서 벌어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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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시발 내가 뭘 본 거죠….
참고로 저 운영진 아내분을 찾아가서 협박을 해서 활동을 그만두게 만든 사건을 만든 분은
라고(...)
아무튼 저 ㅈㄹ이 나서 택견의 이미지가 말 그대로 씹X이 난 셈이다.
7. 골 때리는 건 택견계 스스로가 자정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는 것
위에 언급된 고용우 선생 외에도 송덕기 옹께 택견을 배운 제자들은 여럿 있었고,
송덕기 옹의 수많은 택견의 기술이 담긴 서적 또한 시중에 출판 되어 찾으려고 하면 충분히 찾을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의지만 있었다면 리플리 증후군을 바탕으로 구성한 세계관을 깨버릴 수 있었다는 것!
하지만 이들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저 새로운 자료들을 갱신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하는 순간
그야말로 헬피엔딩 그 자체라 할 수 있겠다....
8. 결론
결론적으로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무조건 MMA에 나가서 싸우고, 웃음거리가 된 택견의 이미지를 정면으로 바꿀 수밖에 없다는 것.
??? : 그런데 좀 많이 늦은 거 아니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