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박정희 독립군 토벌설’이라는 날조된 서사는 언제,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나요?

이 황당한 이야기의 출발점은 북한의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였습니다. 다음은 1973년 8월 11일자 『로동신문』에 게재된 한응호의 기고문 「민족을 등진 자들에게 차례질 것은 비참한 종말밖에 없다」의 내용입니다.

"남조선의 한 집권자는 우리 인민이 일제 침략자들에 항거하여 싸울 때 혈서를 써서 '천황'의 '적자'가 될 것을 맹세한 후 '특등 일본인으로', '돌격대장'으로 '오까모도 중위'로서 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위하여 싸우는 애국적 인민들을 탄압하기 위한 이른바 '토벌'에 110여 회나 참가하였으며 조선동포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불을 지르고 불속에서 기어나오는 동포 어린이들과 늙은이들을 총창으로 마구 찔러 죽이고 생매장하는 몸서리치는 만행을 손가락 하나 떨지 않고 감행한 자이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후에도, 이자들은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인 일본군국주의를 ‘보호자’로 섬기면서 그들에게 남조선재침의 길을 활짝 열어줌으로써 남조선을 미일 침략자들의 2중의 식민지로 전락시켜오고 있다.”

이 기사에는 '오까모도(岡本)'라는 창씨명, '110여 회 토벌' 등 독립군 토벌설의 핵심 디테일이 모두 등장합니다. 주목할 점은 이런 구체적 내용이 1973년 이전 어떤 역사 기록이나 증언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독립군 토벌설'은 역사적 증언이나 학술적 연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북한의 대남선전 기관지 『로동신문』에서 창작된 정치 선전물이었던 것입니다.



Q. 이 북한발 선전물은 어떻게 대한민국 사회에 침투하게 되었나요?
그 통로 역할을 한 인물은 재미교포 언론인으로 활동한 문명자(文明子)였습니다. 그녀는 1990년 이후 10여 차례 방북 취재를 하면서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를 수차례 인터뷰할 정도로 북한 지도부와 밀착된 인물이었으며, 김일성을 “북한 주민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고 북한 사회라는 대가족의 숭앙받는 가장”이라고 표현하는 등 북한 대남공작 부서의 나팔수 노릇을 한 인물입니다.

문명자는 1999년 11월 출간한 회고록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워싱턴에서 벌어진 일들(월간 말)』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박정희와 정일권의 친일 전력에 대한 이야기 한 토막을 덧붙인다. 지난 72년 나는 도쿄에서 박정희의 만주 신경군관학교 동창생 두 명이 도쿄에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수소문 끝에 그들을 만난 일이 있다. 만주군관학교 시절 박정희의 창씨명은 '다카키 마사오'. 그곳을 졸업하고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편입했을 때 박정희는 창씨명을 완전히 일본 사람 이름 같아 보이는 '오카모토 미노루'로 바꾼다. 어렵사리 만난 박정희의 두 동창생은 만주군 시절의 박정희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박정희는 온종일 같이 있어도 말 한마디 없는 음침한 성격이었다. '내일 조센징 토벌 나간다.' 하는 명령만 떨어지면 그렇게 말이 없던 자가 갑자기 '요오시(좋다)! 토벌이다!' 하고 벽력같이 고함을 치곤 했다. 그래서 우리 일본 생도들은 '저거 좀 돈 놈 아닌가' 하고 쑥덕거렸던 기억이 난다.(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 66 페이지)“

문명자의 회고록은 1973년 로동신문 기사가 나온 지 26년이나 지난 후에 출간되었습니다. '오까모도(岡本)'라는 창씨명, '토벌' 이야기 등 핵심 내용이 로동신문 기사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다만 문명자는 여기에 "1972년 도쿄에서 만난 익명의 두 동창생"이라는 허구의 장치를 추가하고, "'말 한마디 없는 음침한 성격‘, '요오시! 토벌이다!'" 등의 생생한 묘사까지 덧붙임으로써, 북한의 정치 선전물을 마치 '실제 목격담'인 것처럼 위장하여 신빙성을 덧씌운 것입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이름이 문명자의 회고록에서 비로소 완성된 형태로 제시되었다는 점입니다. 『로동신문』에는 ‘오까모도(岡本)’라는 성(姓)만 등장할 뿐, ‘미노루(実)’라는 이름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명자는 여기에 ‘미노루’라는 이름을 덧붙여 ‘오카모토 미노루’라는 완전한 일본식 이름을 구성했고, 이를 바탕으로 박정희가 한국인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2차 창씨개명을 했다는 허구의 서사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결국 ‘박정희 독립군 토벌설’과 ‘오카모토 미노루'의 실체는 북한 『로동신문』이 작성하고, 친북 인사 ‘문명자’가 포장하여 유통시킨 전형적인 정치 선전물이었습니다.

나아가 그녀가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하고 북한 지도부와 밀접하게 접촉했던 인물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모든 ‘창작’ 과정이 과연 그녀 개인의 상상과 조작만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는지, 아니면 북한 대남공작 부서의 치밀한 ‘사전적 조율’과 '지령' 하에 이루어진 합작품이었는지는, 향후 반드시 규명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어찌 되었든 문명자는 ‘박정희가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거짓 신화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합니다. 그녀의 날조된 주장을 기반으로, 좌익 역사학자 최상천의 『알몸 박정희』, 민족문제연구소의 『만화 박정희』 등 그 왜곡과 조작의 수위가 더욱 심화된 아류작들이 잇따라 등장했고, 이것들이 좌익의 대중 매체 등을 통해 무분별하게 확산되면서, 대중들은 '박정희가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거짓 주장을 마치 기정사실화된 역사로 수용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본문 출처: 이재훈, 『박정희는 역사이다』, 45~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