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밖으로 사라진 남자, D.B. 쿠퍼 실종 사건의 마지막 밤

1971년 11월 24일,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를 출발해 시애틀로 향하던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 305편에 한 남자가 탑승했다. 그는 검은색 계열의 정장과 넥타이를 착용했고, 승객 명단에는 ‘댄 쿠퍼’라는 이름을 적었다.
이륙 후 남자는 객실 승무원에게 쪽지를 건넸다. 승무원은 처음에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라고 생각해 쪽지를 바로 읽지 않았다. 그러자 남자는 조용히 자신에게 폭탄이 있다고 말했다. 가방 안에는 붉은색 원통과 전선처럼 보이는 물체가 들어 있었다.
남자가 요구한 것은 현금 20만 달러와 낙하산 네 개였다. 비행기가 시애틀에 착륙하자 승객들은 풀려났고, 요구한 돈과 낙하산이 기내로 들어왔다. 이후 비행기는 다시 어두운 하늘로 떠올랐다.
불이 꺼진 객실에 남은 한 사람
쿠퍼는 승무원들에게 조종실로 들어가 문을 닫으라고 지시했다. 비행기는 낮은 고도와 느린 속도로 남쪽을 향해 비행했다. 그날 밤 미국 북서부 지역에는 비와 강한 바람이 이어졌고, 지상에는 넓은 산림과 강이 펼쳐져 있었다.
기내 뒤편에는 쿠퍼 혼자 남았다. 승무원들이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그는 돈가방과 낙하산을 준비하고 있었다. 얼마 후 비행기 후방 계단을 작동했다는 경고등이 조종실에 들어왔다.
그 뒤로 비행기 내부의 압력과 움직임에 이상이 감지됐다. 누군가 계단을 밟고 기체 밖으로 나간 것처럼 비행기 꼬리 부분이 순간적으로 흔들렸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비행기가 네바다주 리노에 착륙했을 때 쿠퍼는 사라지고 없었다. 현금도 함께 없어졌다. 뒤쪽 출입문은 열려 있었고, 계단은 내려가 있었다.
그는 살아서 착지했을까
쿠퍼가 뛰어내린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은 정확히 특정되지 않았다. 비행기의 속도와 고도, 당시 풍향을 바탕으로 수색 범위가 설정됐지만 비바람과 울창한 숲 때문에 수색은 쉽지 않았다.
그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낙하산은 조종이 어려운 종류였으며, 뛰어내린 시각은 밤이었다. 남자는 정장 구두를 신고 있었고, 착지 지점에는 강과 산림, 급경사가 많은 지역이 포함돼 있었다.
이 때문에 쿠퍼가 추락하거나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반대로 그는 낙하산 사용 경험이 있었고 미리 탈출 경로를 계산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이어졌다.
하지만 어느 쪽도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시신도, 사용된 낙하산도, 돈가방도 발견되지 않았다.
강가에서 발견된 돈
사건 발생 약 9년 뒤인 1980년, 한 소년이 워싱턴주 컬럼비아강 인근 모래톱에서 낡은 지폐 묶음을 발견했다. 총액은 5,800달러였다.
지폐의 일련번호는 쿠퍼에게 전달된 몸값과 일치했다. 그러나 돈이 왜 그곳에 묻혀 있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쿠퍼가 착지 과정에서 돈을 떨어뜨렸을 가능성, 강물에 휩쓸렸을 가능성, 누군가 나중에 그 장소에 돈을 옮겼을 가능성 등이 제기됐다. 지폐가 발견된 위치는 쿠퍼의 추정 낙하 지점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아 미스터리를 더욱 키웠다.
발견된 돈은 그가 실제로 사망했다는 증거도, 살아남았다는 증거도 되지 못했다. 오히려 사건에서 유일하게 돌아온 물건이 사람의 흔적이 아니라 썩어가는 지폐였다는 점만 남겼다.
수많은 용의자와 사라진 정체
수사기관은 장기간에 걸쳐 수백 명의 용의자를 조사했다. 군 경력자, 낙하산 전문가, 범죄 전력이 있는 인물과 사건 이후 갑자기 행방이 묘연해진 사람들이 의심받았다.
그러나 어떤 인물도 지문과 증언, 이동기록을 모두 만족시키지 못했다. 당시 기내에서 회수된 넥타이와 일부 물품도 조사됐지만 쿠퍼의 신원을 확정할 만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D.B. 쿠퍼’라는 이름도 실제 범인이 사용한 이름이 아니었다. 그는 항공권에 ‘댄 쿠퍼’라고 적었지만, 언론 보도 과정에서 다른 이름이 섞이면서 D.B. 쿠퍼라는 명칭으로 널리 알려졌다.
결국 사람들은 얼굴도, 본명도 알 수 없는 남자를 잘못된 이름으로 기억하게 됐다.
사건이 공포로 남은 이유
D.B. 쿠퍼 사건에는 잔혹한 살인 장면도, 피로 얼룩진 범행 현장도 없다. 그는 승객을 풀어줬고 비행기를 폭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사건이 오랫동안 공포와 미스터리로 남은 이유는 한 사람이 수많은 사람의 눈앞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방식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는 차가운 비가 내리던 밤하늘로 뛰어내린 뒤 다시는 확인되지 않았다. 죽었다면 흔적이 남지 않았고, 살았다면 누구에게도 정체를 들키지 않은 채 남은 생을 보냈다.
어쩌면 그는 낙하 직후 숲속 어딘가에서 숨졌을 수 있다. 어쩌면 젖은 돈가방을 붙잡고 어둠 속을 빠져나왔을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단 하나다. 비행기가 착륙했을 때 그 남자는 없었다.
그리고 반세기가 넘도록 누구도 그가 어디로 갔는지 증명하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