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한국에도 전남지역은 지금도 공권력이 미치지 못 하는 곳이고 경남지역은 촌동네란 이미지가 두드러지듯이 비교적 최근이란 조선시대에도 차령산맥 너머의 삼남(三南) 또는 하삼도(下三道)는 공간적으로 단절되어 있었는데 그 이전 고려나 통일신라는 물론 특히나 삼국시대엔 요동과 한반도 북부를 근거지로 한 고구려가 패권국이었으며 노령산맥 이남은 백제가 전성기는 물론 한강 유역을 상실하고 위례에서 웅진, 사비로 천도해 멸망할 때 까지도 지배력이 미치지 못 하는 곳이었듯 소백산맥 이남의 신라는 삼국 중에서 가장 후발주자였기에 불교수용과 율령제를 통한 왕권강화도 가장 늦었던 것이 역사적 진실인데 이런 후미진 한반도 남부에서 일본열도로 선진문물을 전수했다는 것은 국뽕일수록 거품 무는 임나일본부설이나 반도 일본어설이 아닌 이상 어불성설이며 실제로 일본은 국풍문화의 융성 이전 헤이안 시대 초기에도 견당사(遣唐使)를 통해 중국에서 문물을 직수입하고 장안을 본따서 헤이안쿄를 건설했다는 것이 더 명백한 역사적 진실임.

 

국가적 정체성을 위해 경주의 유적을 복원한다면서 교토의 문화재를 그대로 데드카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신라의 향가란 것도 결국 당시(唐詩)의 파쿠리 수준에 와카보다도 못 한 이유가 여기에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