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논설고문의 칼럼은, 그냥 조선일보 계보의 정치인을 위한 붕당의 통문 정치 수준이라고 봐야 하지 않나요?
 
 
기사(記事)와 통문(通文): 전국의 유림에게 정국 상황을 알리고 동조를 구하기 위해 돌리던 집단적 문서 및 통지서”(구글 ai)
 
김대중 고문의 주장은, 적극적으로 노론 비공산파(한마디로 재벌 편중, 뉴이재명)와 노론 쪽 민족해방파가 갈라서라는 주문이다. 김대중 고문의 주장자체가, 결국 노론 비공산파 우주론이다. 이 중심으로 모든 것을 소모품, 소비품으로 본다.
 
세계를 봐도 양당제는 권위주의적 산물이고 대부분의 정치 선진국은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다. 공산 체제를 제외하고 양당제를 하는 나라는 미국, 영국, 캐나다 정도다. 내각제인 영국과 캐나다를 제외하면 민주 국가에서 양당제를 하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양당제는 세계적 추세에서 밀려 있다.”(김대중 칼럼, [김대중 칼럼] 한국 양당제, 한계에 왔다, 조선일보.)
 
조선 후기 서원은 특정 붕당의 이익을 대변하고 세금 면제 등의 특권을 누리며 국가 재정을 좀먹는 원인으로 지적받았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왕권 강화와 민생 안정을 위해 전국 600여 개의 서원 중 사액서원 47개만 남기고 모두 철폐하는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파적 이익만을 앞세우는 분열(붕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역사적으로 강하게 각인된 것은 사실입니다.”(구글ai)
 
서구의 다당제는 종교 개혁 이후 기독교 교파(신앙고백) 간의 치열한 교리 갈등과 사회적 균열을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발전한 반면, 한국의 다당제 및 정당 정치는 사상적 다양성보다는 성리학이라는 거대한 단일 이념 안에서 가문, 학벌, 지역을 중심으로 권력 투쟁을 벌이던 붕당 정치의 역사적 풍토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구글ai)
 
한국의 다당제는 군사독재 때 칼빈주의로 교회를 통일시켜도 장로교만 수백교단 되는 식이 될 것이다. 이는 군사독재와 다르면서 똑같게 민심파악에서 분열된 그들끼리의 붕당적 자아로 간다. 한국정치 칼럼에서 반복되는 다당제 예찬은 중국경전 근본주의 광신자 기준으로, 예악정치에서 참된 군주는 다양한 세력을 포괄해야 한다는 중국경전적 당위론 예찬이지, 서양의 민주주의 파악과는 어림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인 기준으로는, 조국혁신당-진보당-사회민주당-민주당의 차이가 그것이다. 그 내부 지지자들에게나 의미가 있다.
 
김대중 고문의 칼럼은 붕당의 통문정치로 보는 수준이면 딱딱 아귀가 맞지만, 적어도 공식매체의 정치경제와 한국사회를 위한 미래 문제는 이게 무슨 글인가? 싶어진다. 앞으로도, 조선일보와 조갑제닷컴은 신뢰를 복원하는 정상적 절차(잘못된 부분에 대한 대거 청산)없이는, 거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칼럼 자체에 거짓이 입에 베인 입장을 본다.

한국정치의 혁신은 불가능합니다. 미국도 베이비부머가 모든 권력을 다쥐었습니다. 한국은 팔십대 수준으로 귀족이자 금권권력을 다 가진, 어렸을 때 동성촌 생활을 했던 세대로 이어집니다. 군사독재 때 모든 가치관이 6.25 참전용사로 그들끼리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이어집니다. 지금은 모든 가치관이 그들끼리의 세계관과 가치관으로 이어집니다. , 군사독재는 반론통제, 지금은 국민 멍청화와 분열 논리. 군사정부는 기득권 숫자 늘리는게 국민에 죄악 아니냐? 김대중이 세운 체제는 기득권을 원없이 늘리고, 그 비용을 국민에 몰래 청구하는 구조입니다. 사실, 씨족적 자아로서 말이 안되는 한국정치논쟁이 많습니다. 군사정권 청산이 20-30년대생 참전용사 권력의 붕괴였듯이, 그에 상응하는 팔십대 권력이 끝이 나야지 뭔가 될 거 같습니다. 군사독재는 법치질서와 무관하게 권력끼리의 왕권제 유교 시스템입니다. 지금 ai가 참조하는 법치교과서와 무관하게..... 지금은 호남의 당파중심 유교시스템입니다. 이미, 지난 30여년 호남 유교에 서양민주주의 제도혁신 가능하다!! 그 속임수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젠, ‘불가능하다’...... 군사독재 청산이 법치실제와 현실을 맞추듯, 지금은 팔십대 중국경전 광신자(결국 동학지도자)청산은 법치실제와 현실의 맞춤이지 싶어요.--반론의 메시지. 호남유교에 맞춘 붕당연합에 시민민주주의라고 했던 것은 지난 30년의 관성화된 속임수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