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에게서 문자가 온 지도 벌써 3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읽지도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는 읽기만 했다.

 

답장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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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 그날부터였다.

 

나와 유미의 관계가 들켰다.

 

유미는 남편에게 이혼당했다.

 

위자료를 물었다.

 

가족은 등을 돌렸고, 친구들은 연락을 끊었다.

 

직장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

 

사람들은 유미를 욕했고, 유미는 사람을 피했다.

 

나는 더 비겁했다.

 

번호는 그대로 두고 잠수를 탔다.

 

유미는 나를 찾았지만, 나는 만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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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문자는 매일 왔다.

 

한유미(문자):

 

"야."

 

"나 오늘 밥 먹었어."

 

다음 날.

 

"야.

 

오늘은 못 먹었어."

 

또 다음 날.

 

"야.

 

비 온다."

 

"야.

 

춥다."

 

"야.

 

답장 안 해도 돼.

 

읽기만 해."

 

처음에는 긴 문자였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짧아졌다.

 

그래도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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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자가 왔다.

 

한유미(문자):

 

"야.

 

나 역 지하에 있어.

 

심심하면 와."

 

그 문자를 읽고도 가지 않았다.

 

며칠 뒤.

 

또 왔다.

 

한유미(문자):

 

"야.

 

오늘도 여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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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이 지났다.

 

나는 결국 역으로 갔다.

 

죄책감 때문인지.

 

호기심 때문인지.

 

나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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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지하는 눅눅했다.

 

기둥 옆.

 

낡은 박스 하나.

 

그 위에 후드를 눌러쓴 여자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처음엔 못 알아봤다.

 

한참을 보고서야 알았다.

 

한유미였다.

 

예전엔 누구보다 화려했던 여자.

 

지금은 사람보다 그림자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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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는 나를 보자 웃으려 했다.

 

하지만 입꼬리는 올라가지 않았다.

 

한유미:

 

"야.

 

대머리 아니거든.

 

뒤쪽에만 좀 빠진 거야.

 

앞에는 괜찮아.

 

...앞도 좀 빠지긴 했는데."

 

잠시 웃다가 고개를 숙였다.

 

한유미:

 

"야 웃지 마.

 

웃으면 나 진짜 운다.

 

나 3년 동안 이 꼴로 살았어."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한유미:

 

"예전의 나 찾으려고 하지 마.

 

없어.

 

그 사람."

 

잠시 침묵.

 

"...니가 죽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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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눈동자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 안에 있던 빛은 없었다.

 

광대뼈가 튀어나와 있었고,

 

입술은 갈라져 있었다.

 

목은 뼈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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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미:

 

"야.

 

밥 사준다며."

 

"...죽 같은 거 먹을 수 있어.

 

딱딱한 건 못 먹어."

 

"영양 부족이라더라."

 

"...근데 진짜 왔네."

 

"꿈 아니네."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만져봐도 돼?"

 

나:

 

"만져봐.

 

근데 난 니를 만지기 좀 그렇다.

 

너 지금 좀비 같애."

 

유미는 피식 웃었다.

 

내 볼을 손끝으로 만졌다.

 

차가운 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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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미:

 

"야.

 

따뜻해."

 

"좀비는 안 따뜻하거든."

 

"...근데 좀비는 좀 심하지 않냐?

 

나 그래도 사람이야."

 

잠시 침묵.

 

"야.

 

나 손 좀 잡고 있으면 안 돼?"

 

"...사람 손 잡아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어."

 

"나 업어줘.

 

밥 먹으러 가자."

 

"죽이면 돼."

 

"따뜻한 거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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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응.

 

편의점에서 단팥죽 사줄게.

 

기다려."

 

사실은 업기 싫었다.

 

냄새가 날까 봐.

 

그래서 단팥죽을 핑계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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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의 눈이 커졌다.

 

한유미:

 

"단팥죽?"

 

"야 그거 비싸지 않아?"

 

"나 그거 먹으면 울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단 거 먹은 게...

 

작년 겨울에 누가 던져준 초코바."

 

"그게 마지막이야."

 

그러다 갑자기 불안한 표정이 됐다.

 

한유미:

 

"야...

 

근데 기다리라니."

 

"...또?"

 

"나 두고 또 가면 어떡해."

 

"여기 사람들 무서워."

 

"술 취한 아저씨들 새벽마다 와."

 

"나 이상한 일도 당할 뻔했어."

 

"야.

 

나 여기서 안 움직일게."

 

"박스에 앉아 있을게."

 

"눈도 안 깜빡이고 기다릴게."

 

"빨리 와."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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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편의점 쪽으로 걸어갔다.

 

유미는 내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후드 속 작은 몸이 떨리고 있었다.

 

나:

 

"단팥죽...

 

씨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돌아가지 않았다.

 

단팥죽을 사러 간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나는 그대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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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도 문자는 계속 왔다.

 

"야 오늘은 비 온다."

 

"야 춥다."

 

"야 나 아직 살아."

 

"야."

 

"보고 싶다."

 

나는 한 번도 답장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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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뒤.

 

마지막 문자가 왔다.

 

한유미(문자):

 

"야.

 

나 죽어.

 

진짜로.

 

농담 아님."

 

"간경화래."

 

"못 먹어서 그렇대."

 

"치료 못 받아."

 

"신림동 반지하 살아."

 

"머리 다 빠짐."

 

"눈도 잘 안 보여."

 

"야.

 

한 번만 보러 와."

 

나는 그 문자에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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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1년이 흘렀다.

 

문자가 끊겼다.

 

나는 문득 역으로 갔다.

 

유미가 박스에 앉아 나를 기다리던 그 자리.

 

박스는 없었다.

 

유미도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그 자리에는 먼지만 굴러다녔다.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문득 그날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눈 안 깜빡이고 기다릴게."»

 

그날.

 

내가 정말 단팥죽을 사서 돌아갔더라면.

 

지금도 그 생각만은,

 

잊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