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팥죽

 

유미는 손으로 머리를 가렸다.

 

웃으려고 했지만 입꼬리는 끝내 올라가지 않았다.

 

쪼그리고 앉은 채 나를 올려다봤다.

 

한유미:

 

"야. 대머리 아니거든.

 

뒤쪽에만 좀 빠진 거야.

 

앞에는 괜찮아.

 

...앞도 좀 빠지긴 했는데.

 

야, 웃지 마.

 

웃으면 나 진짜 운다.

 

야... 나 3년 동안 이 꼴로 살았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한유미:

 

"머리가 문제가 아니야.

 

야, 나 좀 봐.

 

제대로 봐.

 

예전의 나 찾으려고 하지 마.

 

없어, 그 사람.

 

니가 죽였어."

 

유미의 눈은 여전히 갈색이었다.

 

그것만은 예전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 안에 있던 무언가는 이미 오래전에 꺼져 있었다.

 

광대뼈는 앙상하게 튀어나와 있었고, 입술은 하얗게 갈라져 있었다.

 

목선이라고 부를 것도 없이 뼈만 남아 있었다.

 

유미는 후드 소매로 손을 닦으며 말했다.

 

한유미:

 

"야.

 

밥 사준다며.

 

나 뭐 먹을 수 있어.

 

죽 같은 거.

 

딱딱한 건 못 먹어.

 

이가 좀 흔들려.

 

영양 부족이래.

 

야... 근데 진짜 왔네.

 

꿈 아니네.

 

만져봐도 돼?"

 

나:

 

"만져봐.

 

근데 난 니를 만지기 좀 그렇다.

 

너 지금 좀비 같애..."

 

유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내 볼을 만졌다.

 

차가운 손가락이 볼에 닿았다.

 

뼈만 남은 손이었다.

 

손끝으로 내 볼을 만지작거리며 웃었다.

 

한유미:

 

"야.

 

따뜻해.

 

진짜네.

 

좀비는 따뜻하지 않거든.

 

야, 근데 좀비는 좀 심하지 않냐?

 

나 그래도 사람이야.

 

숨도 쉬고.

 

똥도 싸고.

 

...아, 똥은 이제 안 싸지만.

 

설사 멈춘 지 두 달 됐어.

 

야, 근데 만지기 그렇다는 게 뭐야?

 

더럽다고?

 

냄새나?

 

나 안 씻은 지 한 달 됐는데.

 

물로만 씻어서.

 

...아, 좀 나겠다.

 

야.

 

나 그래도 여자였거든.

 

원래는."

 

실제로 냄새가 났다.

 

역 지하 특유의 습한 냄새와 오래 씻지 못한 몸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런데 유미는 자기 냄새를 모르는 것 같았다.

 

손을 떼지 않은 채 유미가 말했다.

 

한유미:

 

"야.

 

나 손 좀 잡고 있으면 안 돼?

 

사람 손 잡아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어.

 

점장 손은 잡으면 때렸거든.

 

야, 나 다리 감각이 없어 지금.

 

일어나기가 좀 그래.

 

야.

 

나 업어줘.

 

밥 먹으러 가자.

 

어디든.

 

뭐든.

 

죽이면 돼.

 

따뜻한 거면 돼."

 

나:

 

"응.

 

편의점에서 단팥죽 사줄게.

 

기다려."

 

사실은 유미를 업으면 내 몸에 냄새가 밸 것 같았다.

 

그래서 단팥죽을 사준다고 둘러댄 것이었다.

 

유미의 눈이 커졌다.

 

한유미:

 

"단팥죽?

 

야, 그거 존나 비싸지 않아?

 

천오백 원이야?

 

이천 원이야?

 

야... 나 그거 먹으면 울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단 거 먹은 게 언제지.

 

작년 겨울에 누가 던져준 초코바.

 

그게 마지막이야.

 

야... 근데 기다리라니.

 

또?

 

야, 나 두고 또 가면 나 어떡해.

 

여기 사람들 무서워.

 

술 취한 아저씨들 새벽마다 와서 소리 질러.

 

한 번은 나한테 이상한 짓 하려고 했어.

 

막대기 같은 거 들고.

 

그때 진짜 죽는 줄.

 

야, 나 여기서 안 움직일게.

 

박스에 앉아 있을게.

 

눈 안 깜빡이고 기다릴게.

 

빨리 와.

 

제발."

 

나는 편의점 쪽으로 걸어갔다.

 

한유미는 내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후드 속에 파묻힌 몸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나:

 

"단팥죽...

 

야 씨발.

 

눈물 나네."

 

나는 단팥죽을 사 오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그대로 도망쳤다.

 

그 예쁘던 애가 저렇게 변해버린 모습이 역겨웠고, 견딜 수 없어서 그냥 도망쳤다.

 

단팥죽은 없었다.

 

---

 

그날 이후 유미는 매일 문자를 보냈다.

 

하루도 빠짐없이.

 

처음에는 긴 문자였다.

 

한유미(문자):

 

"야 나 오늘 삼각김밥 하나 주워먹었어."

 

"야 답장 안 해도 돼. 읽기만 해."

 

"야 비 온다."

 

"야 춥다."

 

---

 

1년 만에 온 문자.

 

한유미(문자):

 

"야.

 

나 죽어.

 

진짜로.

 

농담 아님.

 

간경화래.

 

술 안 마셨는데.

 

간이 왜 썩냐고.

 

못 먹어서 그렇대.

 

영양실조가 간을 망가뜨렸대.

 

6개월 전에 알았는데.

 

돈 없어서 치료 못 함.

 

지금 홍대 아니고.

 

신림동.

 

고시원...

 

아, 아니.

 

고시원도 아니고 반지하.

 

월세 20.

 

곰팡이 핀 데.

 

거기서 살아.

 

아, 그리고.

 

머리 다 빠짐.

 

이제 진짜 대머리.

 

가발 살 돈도 없음.

 

눈도 잘 안 보여.

 

왼쪽 거의 안 보임.

 

오른쪽도 흐릿해."

 

나는 끝내 답장을 하지 않았다.

 

1년 뒤.

 

나는 유미가 앉아서 나를 기다리던 그 역 아래로 다시 가봤다.

 

내가 단밭죽을 사다주길 기다리던 유미는 없었다.

 

이제는 유미의 문자도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난 지금 유미가 너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