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이후 독립기념관 철거부재공원의 조선총독부 건물 머릿돌(礎石)

첨탑 전시장 앞에는 건물의 정초석(定礎石)이 전시되어 있다. 1996년 11월초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초석의 밑돌에서 시멘트로 봉해져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의 건축기록격인 '타임캡슐’ (가로 19cm, 세로 14cm, 두께 7mm의 얇은 아연상자)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정초석과 관련해, 건물 해체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이던 정양모는 한 언론과 다음과 같은 인터뷰를 했니다.
일요서울 [정양모 교수의 ‘문화재 산책’] 조선총독부 철거소식에 일본인 관광객 몰려와 https://www.ilyoseoul.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8674

"총독부를 철거하라는 소식이 국내외에 퍼져 나가자 국립중앙박물관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의 수요가 갑자기 크게 늘었다. 일본인 남녀노소와 학생단체가 줄을 이었다. 모두가 총독부 건물 앞에서 으스대는 모습이었고, 아쉽고 애석하다는 표정이었다. 
 
일본인들은 총독부건물 앞부분의 동남쪽 모퉁이 밑 정초석(定礎石)에서까지 기념사진을 찍었다. 정초석은 관장실 앞과 옆의 모서리였다. 일본인들이 거기 와서 수 없이 사진을 찍는 것을 보면서 “왜 정중앙에서 찍지 아니하고 구석진 곳에 와서 찍는지 이상하다”고 물었다. 그랬더니 직원의 이야기가 “그곳에 정초석이 있습니다”라고 한다. 나가보니 박물관장도 모르는 정초석을 그들이 찾아내 그곳까지 와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수 없이 바라보는 감회는 남달랐다. "

 
저들에게 이 건물이 얼마나 자랑스러운데 허문다니 얼마나 아쉽고 안타까워 저렇게까지 열성적으로 극성스럽게 기념사진을 찍는 것일까 싶었다. 돌아가 모두에게 자랑하고 길이 남기려 하겠지 하는 생각에 잠기곤 했다.          

위 칼럼의 내용은 너무 터무니가 없어 하나씩 비판한다.
1. 어느 건물이나 정초석 위치는 찾기가 쉽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일본 관광객조차 쉽게 찾아내 기념사진을 찍을 정도인데,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이던 정양모가 이를 정말로 몰랐을까?
박물관장은 건물의 역사적 맥락과 주요 유물·기념물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야 하는 자리다. 그런데 건물의 정초석의 존재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오히려 박물관장 자신이 기본적인 관리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백으로 보인다.

2. 왜 건물의 정중앙에서 사진을 찍지 못했는가 하면 당시 건물 정면을 거대한 철거 현판으로 막아놨기 때문이다. 절대 정면에서 찍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현판을 피해 건물이 나오게 찍을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또한 정초석 바로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는것도 거짓으로 보인다. 박물관 건물은 크다. 그런식으로 사진을 찍으면 건물의 극히 일부만 사진에 찍힐 뿐이다. 건물의 모습까지 모두 보이게 찍으려면 촬영자가 더 멀리 가야하고 대신 사람이 개미새끼만하게 작아진다. 관광객들은 절대 그런식으로 사진을 찍지 않는다. 어느정도 건물과 떨어져 사람도 크게 나오고 건물도 함께 담기게끔 찍는게 가장 자연스럽고 상식중의 상식이다.

3. 정양모는 일본 관광객들이 정초석 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으스대는 모습이었고, 아쉽고 애석하다는 표정“, “그들에게 이 건물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존재였기에 허문다니 아쉽고 안타까워 저렇게까지 기념사진을 찍는 것일까”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박물관장의 개인적 추측일 뿐, 일본 관광객들의 실제 마음을 확인할 방법은 당연히 없다.
관광객의 표정이나 행동만으로 그들의 내면을 단정하는 것은 자기 멋대로의 근거없는 추측일 뿐이며, 평생 고고학자로서 증거에 기반한 객관성을 유지하던것이 몸에 배였어야 하는 사람이 취할 태도와 서술이 아니다.

 


▲위의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이 과거 제국주의 향수에 젖은 파시스트 집단으로 보임?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건물 철거를 전후하여 정부와 언론이 내세운 주요 주장들은 다음과 같다. 「일본인들이 철거되는 건물을 보며 아쉬워하거나 탄식했다」, 「일본인들이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대거 몰려들었다」, 그리고 「건물이 해방 이후에도 일본인들의 한국 관광 필수 코스로 활용되며 제국주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는 주장들이었다.

 

그러나 이는 모두 거짓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일본인 방한 관광은 이미 100만 명대를 훌쩍 넘어 지속적인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었다. 1990년대 초중반의 방한객 급증은 한국의 경제 성장, 엔화 강세, 관광 상품 개발 등 복합적이고 일반적인 요인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한국관광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1980년부터 1999년까지의 방한 일본인 전체 관광객 통계에서 1995년은 1,586,819명으로 집계되어, 전년 대비하여 특기할 만한 급증 없이 평이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연간 일본인 관람객 30만 명이라는 수치 역시 국립박물관의 1년 전체 방문 규모의 단순한 합산일 뿐, 철거가 시작된 1995년 3월 이후 특정 시기에 집중되어 「대거 몰려들었다」는 주장과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당시의 월별 통계 어디를 찾아보아도 비정상적인 급증이나 특이 동향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서술은 사실에 기반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대중의 원초적 감정을 자극하고 건물 철거 행위를 「상징적 승리」로 포장하기 위해 국가기관과 언론이 합작해 만들어낸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아쉬워하거나 탄식했다」,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했다」 같은 감정적 묘사에서는 객관적 증거를 찾아볼 수 없고, 순수한 일본인 관광객 전체를 제국주의 향수에 젖은 파시스트 집단으로 매도하는 선동 기법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허위 사실은 당시 위의 박물관장의 언론 인터뷰에 기반한 허구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독립기념관 등의 공식 기록에까지 스며들어 오늘날까지 이러한 공중파 방송의 프로그램이나 유튜브 등에서 끊임없이 잔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