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다시 쓰기는 어느 수준 이상의 사람은 모두가 가능하고 어느 정도는 알고 있지만,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본질적 이유가 해소돼야 합니다.
 
군사독재는 6.25 참전용사 중심의 이익보장을 위한 왕중심주의 고정을 위한 반론통제를 했습니다.
 
지금은 조선시대 노론독재 그 자체로, ‘노론에 어떻게 도전하느냐? 답답하지? 답답하지? 일제에 나라가 팔려도 군소 양반들은 한마디 못했습니다.
 
왕 국가주의든, 당파 국가주의든 결론은 심플한데요, 특정한 양반파벌이 관을 장악하는 이유입니다.
 
뒤집어 이야기해서, 이게 깨지면...... 역사 다시 쓰기가 가능할 겁니다. 카아의 [역사란 무엇인가] 안 읽은 사람 있나요? 90년대와 다르게 이젠 그 표현들이 서양철학을 87년 이후 쭉 대중화한 이후로 내면화된 가치가 있을 겁니다.
 
왕에 도전할 때 비애를 겪는것과,
 
조선시대 노론독재 때에서도 노론 지배패권에 도전하는 것이 비슷한 비애가 지금 사실상 나타나고 있고요. 저는 조선시대에서도 노론에 까내릴 정도로 도전하지 마라. 혼자 떠들어라. 이 상태까지는 지배층이 허락함을 알고, 혼자 떠드는 수준을 넘지 않고 있습니다.(저항적 표현을 빙자한, 혼자말 독백)
 
역사 다시 쓰기..... 몰라서 안할까요?
 
지금 대형 서점에 유시민책만 팔려요. 그러면, 개인이 출판사등록 자유요, 자기가 낸 출판사에 소량출판 인쇄. 이것도 돈 얼마 안들어요. , 유시민에 비판적인 책을 서점에 왜 못할까요? 아니, 왜 안할까요? 제가 제일 눈치 못 보는 머리나쁜 사람인데, 저에게도 이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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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짚은 문제의식은 왜 아무도 역사 다시 쓰기를 본격적으로 시도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으로 모입니다. 사실 많은 지식인이나 연구자들이 기존 민주화 서사, 군사독재 서사, 지역주의 서사를 비판적으로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체계적으로 다시 쓰는 작업은 거의 없었죠.
* 본질적 이유
출판·유통 구조의 장벽
개인이 출판사 등록하고 책을 내는 것은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대형 서점·언론·평론 네트워크가 특정 담론을 선호합니다. 유시민 같은 인물이 대표성을 갖는 이유는 단순히 글쓰기 실력 때문이 아니라, 그 담론이 시장성과 정치적 정당성을 동시에 확보했기 때문입니다. 비판적 책은 소량 출판은 가능해도 유통망에서 배제되기 쉽습니다.
지배 담론의 자기보호
조선시대 노론 패권처럼, 현대 한국에서도 특정 정치·지식 엘리트 집단이 민주화 신화를 정당성의 기둥으로 삼습니다. 이 신화를 깨는 작업은 곧 그들의 권위와 정당성을 흔드는 것이기에, 제도권 학계·언론에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사회적 비용과 비애
왕권에 도전하던 지식인이 비애를 겪었던 것처럼, 노론 패권에 도전하는 목소리도 사회적 고립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혼자 떠드는 수준에서 멈추고, 체계적 역사 다시 쓰기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 역사 다시 쓰기가 가능해지는 조건
지배 담론 균열: 민주화 신화가 더 이상 사회적 정당성을 유지하지 못할 때, 새로운 역사 서술이 등장할 수 있습니다.
대안적 유통망: 독립출판, 온라인 플랫폼, 유튜브·블로그 같은 채널이 기존 출판·서점 구조를 우회할 때, 비판적 담론이 확산될 수 있습니다.
보편적 가치의 내면화: 서양 철학·인문학이 대중화된 지금, 개인의 자유·권리라는 기준으로 역사를 다시 읽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결국,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비용과 구조적 장벽 때문에 못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균열이 생기면, 역사 다시 쓰기는 반드시 등장합니다.
* 흥미로운 지점은, 지금의 독립출판·온라인 담론 공간이 조선시대 사족의 서원처럼 새로운 공론장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만약 당신이 직접 역사 다시 쓰기를 시도한다면, 어떤 사건부터 새롭게 해석하고 싶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