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글은 이윤섭 님의 페이스북에서 펌 )
 

* 강원룡 목사의 광주 사태 관련 사형수 구명 *
1981년 3월 31일 대법원은 피고인들의 상고를 기각,
군법회의에서 내란죄와 살인죄로 사형이 선고되었던 정동년, 배용주, 박노정 3인에게 사형을 확정했다.
이들의 가족은 이날 명동성당 저녁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들에게 미리 준비한 성명서를 나누어 주고,
미사 뒤에는 신자들에게 직접 호소했다. 이들은 4월 1일 명동성당 안에 있는
김수환 추기경의 집무실에서 농성을 벌이기까지 했다.

윤공희 대주교는 김수환 추기경과 상의해 전두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4월 1일 윤공희는 전두환과 면담하면서 “광주사태로 많은 희생자가 생겼는데
또다시 사람의 생명을 다치게 하면 안 된다. 모두 사면해 달라”고 요청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경찰을 죽인 사람까지 사면할 수 없다”고 했다.
윤 대주교는 작별 인사를 할 때, 다시 “극형은 없도록 해 달라”고 거듭 말했다.

강원룡 목사는 농성하는 이들을 찾았다가 4월 4일 토요일 아침에 사형이 집행된다는 말을 들었다.
곧장 전두환 대통령에게 면담을 신청했는데, 응락이 없자 비서관을 붙들고 사정을 했다.
”이건 국가의 존망이 달려 있는 문제요. 내게 단 5분만이라도 시간을 내주도록 어떻게 좀 해주시오.
시간이 촉박하니 무슨 일이 있어도 금요일까지는 대통령을 만나야 합니다.“
결국 4월 3일 오후 3시에 강 목사는 전두환을 만났다. 강원룡 목사가 회고하는 두 사람의 대화.

전두환 : 도대체 국가 존망과 관련된 일이라는 게 뭐요?
강원룡 : 이제 광주 사람을 하나라도 죽이면 나라가 망합니다.
전두환 : 목사님으로서 생명을 존중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 정동년이란 사람과 버스 운전사가 어떤 놈들인지 알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강원룡 : 네, 그 사람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께서는 제 얘기를 경청해 주십시오. 저는 지금 생명의 존엄성이니 뭐니 하는
그런 고답적인 얘기를 하러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이건 나라의 존폐가 걸린 현실적으로 중대한 문제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어떻게 알고 계신지 모르겠으나 광주 사태로 우리 정부에 대한 세계 여론은 매우 나쁩니다.
저는 세계교회 활동 관계로 외국에 나갈 기회가 많아 그런 사실을 여러 번 체험했습니다.
지난 여름 제네바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는 광주 사태 현장을
적나라하게 담은 필름이 참석자들을 향해 계속 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제 시간이 흘러 세계의 비난이 겨우 가라앉긴 했지만 그 불씨가 없어진 것은 결코 아니지요.
그런데 이제 광주 사태 주동자들을 사형에 처한다면 광주 사람들의 응어리는 더욱 굳어질 것이고
세계 여론도 다시 악화될 것입니다. 아마 세계 곳곳에서 다시 광주의 필름들이 돌아갈 것이고
인권 문제에 민감한 선진국들은 한국에 대해 경제적 제재까지 가하려 들 것입니다.

일례로 이미 독일의 겐셔 외무부장관은 한국에 대해 유럽 공동체가 경제 제재 조치를 취할 것을 들먹이고 있으며,
앞으로 미국의 노동조합 조직 같은 데서는 한미 간 경제 교역을 방해하려고 들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나라가 북미 지역뿐 아니라 유럽, 제3세계에서까지 여러 가지로 제재를 받는다면
우리의 국제적인 위신은 물론 경제 상황도 악화될 것입니다.
그 사람들 몇 명을 죽여서 도대체 우리 정부가 얻을 이익이 뭡니까? 절대로 그 사람들을 죽여서는 안됩니다.
어느 쪽이 정말 현명한 선택인지 잘 생각해 보십시오.

전두환은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했다. 강 목사는 표정을 읽어가며 감정에 호소했다.
대통령께서도 아시겠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는 권력을 잡기 위해 가까운 사람들,
심지어 가족까지도 죽이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렇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보면 사후에 유령으로 나타나서 복수를 하지 않습니까?
이미 죽은 광주 사람들도 많은데 이 사람들을 또 죽이면 후환이 따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의 원한을 사는 그런 일을 왜 하시려고 합니까?
약속한 5분이 한참 지난 것을 지각한 강원룡은 말을 마쳤다.

시간을 넘겨서 죄송합니다. 저는 대통령께서 듣든 듣지 않으시든
이 나라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얘기를 마친 강원룡이 전두환의 얼굴을 살펴보니 화난 기세가 많이 수그러져 있었다.
전두환이 입을 열려는 순간, 문이 열리더니 비서관이 들어와 말했다.
각하, 곧 회의가 시작됩니다.

이날 저녁 뉴스에 ”국무회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을 포함한
광주 사태 관련자 전원에 대해 특별 감형 및 사면 조치가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이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던 김이수는 36년 후인 2017년 6월 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배용주와 재회해서 사과했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배용주는 광주 사태 당시 시민군을 태운 버스를 몰고
경찰 저지선으로 돌진해 경찰 4명을 숨지게 했다. 김이수와 배용주는 이 자리에서 두 손을 마주 잡았다.

헌밥재판소장 후보자 김이수는 6월 7일의 청문회에서도
“제 판결로 지금까지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배용주는 5ㆍ18 특별법에 따라 열린 1998년 재심에서 ‘헌정 질서를 수호하려는 정당행위’로 인정받아 무죄판결을 받았다.
다음은 2022년에 죽을 때까지 전두환 처벌을 주장했던 정동년에 관한 기사이다.
[광주=뉴시스] 배상현 기자 = 1980년 `5·18 광주사태의 수괴'로 몰렸던
정동년(79)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24일 `5·18 학살 주범' 전두환씨 사망에 대해
" 끝내 사과도 참회도 없이 죽다니 나쁜 사람, 범죄행위를 명명백백히 밝혀 역사 정의를 세우겠다"고 밝혔다.

( 댓글 )

전두환 대통령이 그 때 강원룡 목사가 좌익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군에서 오래 근무해서 민간인의 정보까지 알기는 어려웠다고 봅니다. 

그 때 징계를 받아야 할 정동년과 그 무리들을 살려두었으니 나라가 종북좌파의 나라가 된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