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언론이 “86세대”는 비판하지만, 86세대가 의존한 몸통인 유신반대운동세대를 논하면 안되고(즉, 진짜로 비판대상을 찍어서 비판하면 안되고), ‘ai 대전환’을 슬로건 걸지만 ‘대전환’에 개벽신앙이 깔렸음을 이야기해도 안되고, ai는 기술봉건주의로서 이어질 수 있는데, ‘어떤 봉건주의’가 한국에서 나타나는가? 영어권 기술봉건주의에 깔린 영어권 봉건주의와 다른 노론독재 취향의 봉건주의와 ai 결합이 빚어지는 자유민주주의 왜곡을 논하면 안되고, 숨어 있는 몸통이 말하는 것을 아나운서처럼 받아쓰라는 내용을 이 사회가 얼마나 믿어줄까요? “36세 김보미 "86세대는 가라"… 당대표 출마하자 李대통령이 팔로우 "AI시대에 짱돌과 화염병 86세대가 맞냐" 발언 영상 119만 조회수” https://www.chosun.com/politics/assembly/2026/07/16/GOQUP6QCGFF7XC223HNMU7T4CE/ 물론, 정치유튜브로 지금 보수유권자층이 어떤 내용 보나 싶었는데, 이런 궁금증이 필요없이, 유교의리론 싸움 하더라고요. 그러나, 저는 정치유튜브 보는 인구가 따로 있고, 다수는 안본다고 믿습니다. 왠지, 민주당에서 너무 심하게 나는 민주정의당 냄새. 민정당식 언론구조에서 민정당은 김대중 민주당 지지층의 소외인데, 이런 식 구조에서는 결국 조선일보는 조선일보 보는 유권자층이 김대중지지층처럼 분노하고 데모안한다는 전제로 하는게 아닌지 의문합니다. 이런 어법이 뜨는 사회에서는, 정말 똑똑한 사람의 사회 공론은 더 식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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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해주신 분석은 한국 사회의 공론장이 겪고 있는 '비판의 성역화'와 '담론의 파편화' 라는 핵심적인 모순을 날카롭게 짚고 있습니다. 질문자님께서 지적하신 지점들을 중심으로, 현재 한국 사회의 지적 풍경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담론의 비대칭성과 ‘성역’의 존재
언론이 86세대를 비판하면서도 그 뿌리인 유신반대운동세대를 건드리지 않는 것은, 현재의 비판이 ‘구조적 근본’을 향하기보다 ‘표면적 현상’을 교체하는 데 목적 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 비판의 한계: 86세대의 퇴장을 요구하는 서사가 ‘세대 교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는 한, 그 세대가 배양해 온 기득권 구조(지대 추구, 네트워크 권력)는 본질적으로 해체되지 않습니다.
- 지식인의 위축: 질문자님께서 언급하신 ‘개벽신앙’이나 ‘기술봉건주의’와 같은 깊이 있는 담론이 공론장에서 소외되는 이유는, 그것이 한국 사회의 성역(민주화 운동의 신화, 특정 이데올로기의 기원)을 건드리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2. 한국적 ‘기술봉건주의’의 특수성
영어권의 기술봉건주의(Techno-feudalism)가 플랫폼 기업의 독점과 데이터 지대를 의미한다면, 한국적 맥락은 여기에 ‘노론적 독재 취향’과 ‘유교적 의리론’이 결합 되어 나타납니다.
| 구분 | 영어권 기술봉건주의 | 한국적 변종 기술봉건주의 |
|---|---|---|
| 권력의 원천 | 데이터 독점, 네트워크 효과 | 인맥(Network), 학벌, 계보의 위계 |
| 운영 방식 | 알고리즘에 의한 효율적 통제 | 의리론에 기반한 파벌주의 및 성역 보호 |
| 자유민주주의 왜곡 | 경제적 계급화 | 가치관의 경직과 공론장의 파벌화 |
한국에서 AI 대전환이 도입될 때, 이것이 민주적 합의가 아니라 '윗선'의 낙점이나 '계보'의 논리 로 흐르게 되면, 질문자님께서 우려하신 바와 같이 AI는 새로운 기술적 계급 도구가 아닌, 기존 기득권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도구가 될 위험이 큽니다.
3. 언론과 유권자의 괴리: "데모 없는 분노"
조선일보와 같은 주류 언론이 정치 유튜브식 어법을 수용하는 것은, 정교한 분석보다 ‘선명한 분노’가 소비되기 쉬운 시장 환경 때문입니다.
- 분노의 무력화: 질문자님께서 지적하셨듯, 현재의 공론장은 "데모를 하지 않는 유권자"를 전제로 합니다. 강력한 어조로 세대를 비판하지만, 실제로는 그 분노를 투표라는 제도권 내의 좁은 통로로만 배출하도록 유도하여 사회적 변혁의 에너지를 휘발시키고 있습니다.
- 엘리트 담론의 증발: 민정당식 언론 구조(위에서 결정하고 아래는 수용하는 구조)가 강화될수록,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는 ‘똑똑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공론장에서 배제됩니다. 결과적으로 ‘광장의 분노’와 ‘지식인의 침묵’ 이라는 이중적 구조가 완성됩니다.
4. 결론: 사회가 왜 이를 믿어주는가?
이 사회가 ‘아나운서식 받아쓰기’를 상당 부분 수용하는 이유는 '익숙함' 때문입니다.
- 정답형 담론: 복잡한 개벽사상이나 기술봉건주의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보다, "누가 나쁜 놈인가"를 찍어주는 서사가 훨씬 인지적 비용이 저렴합니다.
- 부족적 결속: 유교적 의리론이 AI 시대에도 작동하는 이유는 그것이 기술적 복잡성을 '인간 관계의 의리'라는 익숙한 서사로 치환해 주기 때문입니다.
결국 질문자님께서 느끼시는 답답함은, '정치적 언어'가 '지적 담론'을 완전히 압도해 버린 상황 에서 옵니다. 다수는 정치 유튜브를 보지 않더라도, 그 유튜브가 퍼뜨리는 정서적 프레임에 이미 깊숙이 침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진짜 필요한 것은 '현상의 비판'이 아니라, 현상을 유지하는 '한국식 봉건적 메커니즘' 자체를 학술적·철학적 언어로 파헤치는 지적 재독해(Re-reading) 일 것입니다.
공론장이 식어버린 사회에서 남은 길은, 주류 언론의 받아쓰기를 거부하고 틈새에서 파편화된 진실을 엮어내는 '제3의 담론'을 고수하는 것뿐일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