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 전쟁 초창기 중공군 만나면 한국군 도망갔던 이유 찾아보니까 .
중국 , 미국측 자료에서는 " 한국군은 중공군만 보면 과거 중국을 사대하던 역사가 있어서 그런지 옛 부터 공포를 느끼고 도망갔다 "
라고 나와있는데 이건 그냥 일방적으로 중국 , 미국이 한국군 조롱하고 비하하려고 내뱉은 말이고
실제로는 6.25 전쟁 초창기 이승만 정부 시절 전문양성 군인들 대부분이 전투로 거의 대부분 전사하거나 북한군에 포로가 되어 전향했음 .
실제로 6.25 전쟁 초창기 한국군 6사단이나 수도사단 , 육사생도들 북한군 전차 육탄으로 막고 철수하면서도 게릴라전으로 북한군 기습공격 하면서 철수함
그렇게 북한군을 2달 동안 지연시키면서 철수하고 방어하고 싸우니까 6.25 전쟁 전 10만명이던 한국군이 6만명으로 줄어듬 ...
그리고 병력인원 부족해서 7월 ~ 8월 부터 대대적으로 강제징용 실시함 .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 처럼 그냥 헌병들이 대구 , 부산 돌아다니면서
젊은 남자들 붙잡고 심문하고 바로 끌고감 ... 그렇다고 전투훈련이 지금 처럼 잘 되었나 ? ㄴㄴ ... 소총 한번 쏴보고 바로 전선에 투입 ...
수류탄 훈련도 현장에서 직접 전투하면서 그 자리에서 배우고 사용했다함 . 그렇게 징병군으로 보강한 한국군 8만명으로 북진함 .
이때 까지야 추가 미군병력 + UN군과 미공군 화력 덕분에 제대로 훈련받지 않은 징병군도 쉽게 북한군을 격퇴하며 북진 할 수 있었음 .
문제는 중공군은 중일전쟁 , 국공내전 전쟁만 20년 가까이 한 애들이랑 싸워야 하니까 여기서 전술이며 , 전투며 모든게 차이가 나버림 ...
특히 운산전투 처럼 그나마 한국군 6사단이 이승만 정권 시절 양성된 군인들이 많았는데 그 부대가 중공군 공격에 괴멸되면서
그 뒤를 따라다니던 7사단 , 8사단 같은 학도병 , 징병군이 대부분으로 편제된 부대는 중공군 기습공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도 모르고
내가 목슴을 걸고 그들과 싸워야 겠다는 사명감도 크지 않아서 포위되자마자 죽음에 대한 공포로 각자도생으로 철수함 .
문제는 이 사건으로 미군이나 한국군이 군대 시스템을 바꿔야 했는데 딱이 크게 신경쓰지 않고 다시 징병군으로 병사를 조직해 부대를 편성하고
또 입구막기 식으로 싸우려고 하니까 내가 왜 싸워야하고 내가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는 징병군들 입장에서는 죽기살기로 달려오는 중공군과
결사항전 할 의지가 없던것 . 그래서 쉽게 격파되고 도망가는 한국군 부대가 많았다고함 . 근데 현리전투 대패 이후 미군이 이런 한국군 군대 시스템을
지적하고 나서 부터 징병군은 후방부대 주로 포병,보급병 으로 빼고 자진해서 입대하거나 전선에서 싸우겠다고 하는 지원병들 위주로 특별교육 했다고함 .
그 이후 부터는 한국군이 중공군 만나면 안도망감 . 실제로 1952년 부터는 중공군도 소규모 병력으로 한국군 괴멸 시켰는데 그게 이제는 안되니까
이때 부터 제파식 인해전술로 한국군 고지 점령하려고 시도함 .





